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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망자의 흔적을 지웠다, 사랑의 기억만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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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정리사 김새별씨

한국일보

충남 보령 살인사건이 일어난 한 가정에서 바이오해저드 직원이 소독을 하고 있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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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충남 보령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공장 겸 단독주택. ‘출입금지 폴리스 라인 수사 중’이라 쓰인 노란 테이프가 출입구마다 둘러쳐 있었다. 김새별(40)씨와 임영민(35)씨가 1톤 트럭에서 특수청소양품, 소독방역장비, 공구박스를 차례로 내렸다. 이곳은 전날 40대 여성이 안방에서 살해된 사건 현장으로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의 김 대표와 직원 임씨는 범죄현장을 청소하기 위해 여기를 찾았다.

“피 묻은 옷가지나 물품은 버려주세요. 깨끗하게 될 수 있을까요?” 유가족의 질문에 김 대표가 “네. 깨끗하게 될 겁니다”라고 답하며 청소를 시작했다. 거실과 안방을 소독가스로 순식간에 소독한 다음 혈흔이 묻은 쓰레기를 버릴 의료폐기물 전용 박스, 큰 검정 비닐봉지를 펼쳤다. 이후 소독제를 연신 뿌려가며 바닥부터 닦았다. 피가 묻은 옷가지와 물품들은 20여분 만에 7개의 봉투에 담겼다. 피가 묻은 매트리스를 칼로 도려내고 침대, 옷장, 벽지, 천장에 말라붙은 혈흔을 혈흔 제거제와 스팀으로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범죄 현장뿐 아니라 피해자에 관한 추억과 연관 있는 물품들을 없앱니다. 피해자 가족이 살아야 하는 공간이니까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는 있지만 범죄가 일어났던 집에서 살고 싶진 않겠죠. 피해자 가족들은 대체로 이사를 갑니다.”

청소를 하던 중 피해자가 키웠던 흰색 새끼 고양이가 공장 쪽에서 발견됐다.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서슴없이 다가서는 고양이에게 김 대표는 밥과 물을 챙겨줬다. 그는 혈흔을 제거한 뒤 부엌에 남겨진 설거지를 하고 식탁, 거실에 남겨진 옷가지를 정리한 다음 살균기로 2차, 3차 소독을 마쳤다. 청소를 완료하는 데 걸린 시간은 2시간 20분. 검정 봉지들은 1톤 트럭에 실렸고 폐기물 처리됐다.

김 대표는 최근 장례지도사 12년, 유품정리사 8년간의 경험을 담은 책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냈다. 그는“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실천해야 한다”며 “사랑했던 사람들과 추억을 남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장례지도사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20대 초반 가장 친했던 친구의 죽음이었다.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친구의 장례를 도운 장례지도사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례지도사로 활동하던 중 우연히 유품 정리를 도우면서 2007년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를 설립했고, 현재는 유품정리뿐 아니라 고독사부터 범죄 현장, 비둘기 퇴치·배설물 청소까지 맡고 있다. 2013년부터는 ‘강력범죄 현장 청소 지원사업’대상 업체로 선정돼 법무부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2013년 34곳, 지난해 44곳 등 강력범죄 현장에서 흔적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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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별 바이오해저드 대표는 본보와 인터뷰에서 "안부 전화 한 통,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독사, 자살 범죄로 인한 사망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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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피해를 도와주는 청소업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담당 형사도 피해자도 모른 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범죄 현장을 다시 보는 것 조차 힘든 이들을 위해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가 지난 20여년간 장례 관련 업무를 하면서 다루는 업무도 변화했다고 한다. 그는 “예전부터 노인 고독사가 많았는데 최근에야 수면 위로 떠오른 느낌이 든다. 또 미래에 대한 불확실, 이성문제로 젊은이들 자살도 늘었다”며 “범죄는 더 대담해진 경향이 있다”고 했다.

아직까지 죽음의 현장을 다루는 직업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고 한다. 부르는 단어들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죽음을 금기시하고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큰 만큼 관련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따갑다는 것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이 들지만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이것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점이다.

“1,000여명이 넘는 죽음의 현장을 정리하면서 다양한 상황들을 겪어왔지만 여전히 현장에 나가면 가슴이 무겁고 답답해집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누구든 돈도 직장도 결국 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이죠. 정말로 남는 것은 소중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 받았던 기억뿐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보령=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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