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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취재파일] 아들 안전사고로 떠나보낸 아빠의 간절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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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0여일 전인 지난 16일 오후 6시쯤 부산의 마린시티에 있는 한 초고층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옵니다.

아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즐겁게 놉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아이는 엄마와 함께 35층에서 엘리베이터에 내려 아파트 복도 오른쪽으로 사라집니다. CCTV에서 본 아이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 순식간에 사라진 아이…아래층 바닥으로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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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집은 엘리베이터 왼쪽편이지만 평소와 달리 오른쪽 복도로 갔습니다. 엄마와 한 두차례 가본 적 있는 공중정원으로 간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엄마보다 1m정도 앞서 뛰어가던 아이는 공중정원 입구를 지나 오른쪽 모퉁이를 꺾는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엄마는 순간 놀라 공중정원 바닥에 설치된 비상탈출용 수직비상구 덮개가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래로 내려다봤습니다. 아이는 3.3m 아래 34층 비상구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놀란 엄마는 집에 있던 아빠를 불렀고 달려온 아빠는 비상구로 내려가 아이를 흔들어 보았으나 의식이 없어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사흘 뒤 사경을 헤매다 뇌출혈로 숨졌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 공중정원을 피난안전구역으로 활용…평소 개방·출입 자유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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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높이인 80층인 이 아파트는 3개 층 마다 꽤 넓은 공중정원이 있고 전 층에 수직 비상구가 연결돼 있습니다. 화재 등 긴급 상황 시 입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치된 겁니다.

초고층 특별법에 따라 법적 소방대피 시설인 피난안전 구역이 31층과 56층에 설치돼 있었지만 이와 별도로 3개층 마다 주민 휴식 공간 겸 간이 대피시설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곳에는 제연시설과 자동 방화문, 스프링 쿨러, 비상유도등, 방송시설 등과 함께 바닥에는 수직 비상사다리를 연결해 위층이나 아래층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꽤 좋은 시설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인근 또 다른 초고층아파트와 비교해 보아도 대피공간으로 꽤 괜찮은 시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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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곳에 숨은 악마가 있었습니다. 법적 대피시설은 출입구에 잠금장치를 할 수 없습니다. 비상시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그렇더라도 대피공간은 화재 등 비상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이용돼야 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간이 피난 안전구역은 별다른 출입 통제 없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뛰어 노는 장소이기도 했고 전망이 좋아 어른들도 한번 씩 이용하는 휴식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건축법상 ‘공중정원’ 으로 분류되다 보니 별다른 소방법 적용도 받지 않고 관리 점검대상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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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또 다른 초고층 아파트의 경우 피난 안전구역의 2중 출입문이 닫혀 있고 평소 출입을 통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 바닥에 설치돼 있는 수직비상구 열려 있는 경우도 많아…위치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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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문제는 바닥에 설치된 수직비상구였습니다. 철제 사다리로 연결된 비상구는 잠금장치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안전사고에 대비해 항상 닫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번 씩 열려 있기도 했다고 입주민들은 말합니다.

한 입주민은 “손주가 한 번씩 복도를 왔다 갔다 하니까 피난안전구역으로 데려 간 적이 있는데 수직피난구가 열려 있어서 저거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고가 난 그날도 피해 아이의 부모는 “분명 비상구 덮개가 열려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아이 아빠는 제게 5장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4장의 사진은 사고가 난 다음날인 17일 새벽 6시 45분에 찍은 건데 33층부터 36층까지 수직 비상구 덮개가 열려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 아빠는 아이 장례를 치르고 난 21일 오후 5시 4분에 다시 가보니 37층 수직 비상구 덮개가 열려 있었다고 제게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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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비상구 위치도 문제였습니다. 피난안전구역 입구로 들어와 오른쪽 모퉁이로 꺾이는 지점에 설치돼 있다 보니 쉽게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덮개가 열려 있으면 아이들이 장난치다가 열려 있는 줄 모르고 뛰어가면 사고를 당하기 십상이었습니다. 더구나 수직비상구는 바닥에서 10 cm 정도 튀어 올라와 있어 아이나 노약자들이 걸려 넘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 역시 관리가 문제…제대로 된 관리 있었나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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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사무소측은 “평소 수직 비상구 덮개가 잘 덮여 있는 지 수시로 체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파트 관리 보안요원이나 환경미화원들이 자주 드나들며 체크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고가 난 당일도 환경미화원이 퇴근하는 오후 4시 전인 3시 반쯤에 덮개가 닫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고가 난 6시쯤에는 덮개가 열려 있었고 사고는 났습니다.

피해아이 아빠는 관리사무소측이 책임 회피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고가 난 다음날도 또 6일 뒤에도 가보니 덮개가 안 덮인 수직피난구가 여전히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사고가 난 지 10일이 지났지만 ‘위험’ 문구 조차 한 장 붙여 놓지 않았다고 관리사무소 측의 안전 불감증을 질타했습니다. 인터뷰에 어렵게 응한 아이 아빠는 “우리 아이는 갔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문제제기를 할 뿐”이라며 대책마련을 촉구했습니다.

● 단속 사각지대…관할 행정의 적극적 지도 감독도 필요

이번에 사고가 난 피난안전구역은 '초고층 특별법'에 의거한 법적 소방시설이 아닙니다. 건축법상 '공중 정원'으로 분류돼 주민 휴식공간의 개념이 강합니다.

하지만 긴급 상황에 대비한 간이 소방시설로 활용되는 곳입니다. 소방법상 관리 대상이 아니다 보니 관할 소방서에서도 별다른 감독이나 지도를 하지 않고 건축법상 지도 점검 대상이 아니다 보니 관할 구청에서도 지도 대상이 아닌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오직 아파트 관리업체에서 지정한 소방점검 용역업체에 맡겨져 있을 뿐이지만 이제까지 수직비상구의 안전이나 관리 허점에 대한 지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차제에 이에 대한 방안 마련이 필요합니다.

▶ 사람 잡은 아파트 피난시설…초등학생 추락사

[송성준 기자 sjso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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