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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노동자 울리는 ‘노동법 심판들’]대법관이 입주민대표 때 ‘부당 근로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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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2013년 체결한 ‘경비업무 용역계약서’ 단독 입수

연차휴가 없이 격일 17시간 근무 등 담겨 ‘노동권 보호’에 심각 결함

월 108만원, 최저임금·근로기준법 위반… 박 “인사청문 때 이미 해명”

박상옥 신임 대법관(59·사진)이 아파트 입주민대표를 맡아 경비노동자에게 연차휴가도 없이 하루 17시간씩 연중 격일 근무하게 하고, 매달 100만원만 지급해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 대법관은 경비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위탁 사업주나 프리랜서들에게 적용하는 ‘용역계약’을 체결해 4대보험료도 지급하지 않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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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대법관이 2013년 5월 서울 이촌동 ㅈ빌라 입주민대표로 경비노동자와 체결한 계약서. 박 대법관이 직접 자필서명한 계약서는 근로계약이 아닌 용역계약 형식을 띠고 있었고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내용들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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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7일 박 대법관이 법무법인 도연 대표변호사이던 2013년 5월 서울 이촌동 ㅈ빌라 입주민대표로 서명한 ‘경비업무 용역계약서’를 단독입수해 분석한 결과 박 대법관은 노동권 보호와 인식에서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다. ㅈ빌라에서 15년간 경비로 근무해온 ㄱ씨(75)는 “2012년부터 입주민들이 직접 아파트 관리업무를 맡으면서 건강보험과 연차휴가가 없어지고 한 달에 100만원만 받고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수사검사로서 사건 축소·은폐 의혹에 시달렸던 그로선 국민기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관으로서도 자질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용역계약서를 보면 ㄱ씨는 일종의 프리랜서 경비로 간주돼 노동자에게 보장된 대부분의 권리가 무시됐다. 격일제(24시간)로 새벽 6시에 맞교대 근무하면서 휴식시간은 7시간(하루 17시간 근무)에 불과했고 연차휴가는 없었다. 주휴수당도 없고, 심지어 결근 시엔 자신의 비용으로 대체인력을 충원하도록 했다. 실근로시간(월 258.5시간) 기준으로 ㄱ씨가 받아야 할 월 최저임금(올해 시급 5580원)은 주휴수당까지 포함해 163만원이다. 하지만 ㄱ씨에게 지급된 보수는 월 100만원으로, 1년에 50만원씩 두 차례 지급되는 상여금을 합해도 월평균 급여는 108만원에 불과하다. 한 달에 최저임금보다 55만원이나 적은 보수를 지급해온 셈이다.

박 대법관 측은 ‘최저임금법 위반 사실을 인정하느냐’는 경향신문 서면질의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미 서면으로 답변한 사항”이라며 상세해명을 거부 했다. 대법원 측은 “입주민이 공동 결정한 것으로 예전 용역업체에서 월 90만원 주던 것을 100만원으로 올려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ㄱ씨는 “용역업체 소속일 때는 직장건강보험료를 내줬지만 지금은 지역건강보험료(월 14만원)를 직접 내야 해 보험료를 제하면 실제 보수(86만원)는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너무 급여가 적어서 2년 전 얘기했더니 (박 대법관이) ‘질서가 잡히면 어떻게 해볼게요’라고 했는데 달라진 게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월 100만원에 하루 17시간 연중 격일제로 근무시킨 것은 노동법에 대한 무지 이전에 노동 감수성의 문제”라며 “박 대법관 같은 분이 참여한 노동사건 판결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강진구 노동전문기자(공인노무사)·구교형 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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