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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뻔뻔한IT]'무폰증'에 종일 바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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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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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자, IT 없이 24시간 살아보기
약속장소엔 불안감 때문에 더 일찍 가
전화기 안보니 머리 쓸 수밖에


"아~ 괜한 시도를 했습니다." 바야흐로 무르익은 21세기, '정보화 시대'라는 말도 이제 식상한 이 시대에 '24시간 정보기술(IT) 없이 살아 보기'라니요. 지면 개편으로 새로 잡힌 IT면에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아이템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보라기에 별 생각 없이 던졌던 얘긴데 덜컥 채택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어이없는 시도를 마무리한 지금 이에 대해 한줄평을 하자면 '불편했고, 불편했으며, 불편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이제 IT의 힘을 빌어 살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IT가 생활이 돼 버린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굳이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산에는 나무가 있고 바닷물은 짜다'와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눈뜨면서부터 불편함이 훅 끼쳐오다= 사실은 그 전날부터입니다. 늘 스마트폰 알람 5개에 의지해 살다가 이 시도를 하게 된 지난 주말 혹여나 깨지 못할까 멈춰 있던 알람시계 건전지를 사러 한밤중에 안 가도 될 편의점을 들렀으니까요.

평소 알람은 스마트폰 하나입니다. 단 총 5개를 맞춰둡니다. 첫 번째 알람이 울리면서부터 '오늘은 그냥 씻지 말고 나갈까' '하루 안 씻는다고 티가 날까' '어젯밤에 갑자기 급체가 와 오늘 출근이 힘들다고 할까' '지금껏 그런 적 없으니까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등등 별의별 생각을 다 하다가 '이제 일어나지 않으면 너는 망한다'라고 노래하는 것 같은 술탄오브더디스코의 오리엔탈 디스코 특급, 즉 마지막 알람이 울리면 꾸역꾸역 일어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말에는 귓전을 때리는 '따르르르릉' 소리, 탁상시계 알람 소리에 한 방에 벌떡 일어났습니다. 평소 평화로운 스마트폰 알람은 단계별로 커지면서 은근한 기상을 유도하는데 이번 시도는 저를 굳이 주말에 너무 놀라 심장이 마구 뛰는 상태로 기상하게 했네요.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기상하자마자 불편함은 훅 끼쳐왔습니다. 평소라면 전날 잠든 후부터 새벽 사이 카카오톡 메시지가 온 건 없는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팔로잉한 이들은 밤새 안녕한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소식을 들었는지 등을 확인하겠지만 이날은 평소 숨 쉬듯 하던 일을 할 수 없게 돼 멍하게 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다 한 주 동안 입고 다녀 회색이 되려고 하는 흰색 가디건을 발견, 급작스레 손빨래를 시작했습니다. 폰이 손에 있었다면 같은 시간 의미 없이 카톡과 포털 뉴스, SNS를 한 바퀴 돌면서 시간을 죽였겠지요. 괜히 뿌듯했습니다.

◆'든든한 비서를 잃은 기분' 약속 장소엔 더 빨리= 그러나 흐뭇한 기분도 잠깐, TV도 틀고 싶고 아이패드에 받아둔 영화도 생각났습니다. 특히 IT 없는 삶에서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스마트폰이었는데요. 스마트폰은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많은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메신저로 실시간 친구들과 엄지를 통해 쉴 새 없이 떠들다가 엄지를 가만히 둬야 하는 상황이 되자 입이 움직였습니다. "자, 이제 청소도 끝났고, 나가 볼까"라며 듣는 이도 없는데 입 밖으로 말을 내뱉으며 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 장소는 버스 한 정거장 거리였기 때문에 그냥 걸어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스마트폰 시계의 알리심에 따라 1분 단위까지 생각해 정말 나가지 않으면 안 될 때 배수의 진을 치고 정각 도착을 계산해 나갔을 텐데. 스마트폰 대신 손목시계를 차자 뭔가 든든한 비서를 잃은 기분에 더욱 서두르게 됐습니다.

친구와 먹은 점심값을 치르기 위해 한 달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했던 현금을 꺼내들었습니다. 3만1000원이 나온 밥값을 4만원으로 계산하고 현금영수증을 발급 받았습니다. 결제할 때 카드를 쓰는 게 일상이 됐던 터라 휴대폰 번호를 별도로 입력하는 과정은 꽤 귀찮았습니다. 지갑은 1000원짜리로 오히려 두둑해졌습니다.

◆종이책으로 얻은 정보, 더 궁금한 게 생겼을 때 "보고 싶다, IT"= 친구를 보내고 시간이 떠서 혼자 카페에 남아 여름휴가 계획을 세울 때는 불편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종이 책에 의존해 휴가지 정보를 수집하던 도중에 준비한 책에는 없는,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너무 알고 싶은데 이걸 모르면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데. 방법이 없었습니다.

책을 찾아보다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할 때 늘 검색하던 녹색창이 그리웠습니다. '내 카톡은 안녕할까' '주말에 급한 연락이, 그것도 카톡을 통해 올리는 없겠지만 그 불가능한 일이 바로 오늘 일어나지는 않았을까' 같은 생각이 함께 밀려왔습니다.

결국 계획을 짜는 둥 마는 둥 한 채로 카페를 나섰습니다. '내일 해방(?)을 맞으면 이것부터 찾아보리라' 다짐을 하다 문득 '이런 생활이 지속된다면'이라는 의문에 다다르자 갑갑해졌습니다. 지인에게 물어야 하나. 도서관까지 굳이 찾아가야 하는 건가. 어떤 책에 쓰였을 줄 알고. 이런 잡생각을 하면서 공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그 많던 공중전화는 다 어디로 갔을까"= 공연장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습니다. 버스비 1300원을 현금으로 내야 하는데 환승을 해야 했다면 고스란히 두 배의 값을 치러야 할 뻔 했습니다. 조금 일찍 서둘러서 돌아가야 하지만 갈아탈 수 있는 지하철을 이용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습니다. 공연 시간이 몇 시였더라. 시간을 7시로 보고 이에 맞춰 움직였는데 보통 주말이면 6시에 시작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초조해졌습니다. 그러나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평소라면 스마트폰을 통해 바로 공연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최대한 빨리 가보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공중전화로 평소에 번호를 외우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볼까하다가 주변을 휙 둘러봤지만 공중전화도 없었고, 평소 공중전화의 위치를 파악하고 다닌 것도 아니어서 바로 포기했습니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 공중전화를 유심히 확인해 봤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아직도 어딘가에는 있을 텐데. 그 많던 공중전화는 IT가 이미 스며든 세상이 녹여낸 걸까요. 다행히 공연 시작 시간은 7시였습니다. 오는 내내 초조했던 마음이 안도로 바뀌었습니다.

◆"폰 대신 머리를 구동하다"= 잠들기 전 그간 이동하면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해 주문형비디오(VOD)를 보거나 괜히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뉴스를 검색하거나 SNS를 훑어보면서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너무 갖지 못했다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역시 습관처럼 집에 들어오면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켜고 블루투스 스피커와 연동해 듣던 일을 할 수 없게 돼 멍하니 있다가 들게 된 생각입니다. '폰을 놨더니 바로 책을 집어 들게 되더라' 같은 아름다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머리로 하는 생각은 더 많아졌습니다.

올 들어 가열차게 세웠던 새해 계획은 얼마나 지켰더라, 그것도 컴퓨터에 써놨었지. 생각나는 대로 운동, 하루 일과 펜 들고 정리하기 등 새해 세웠던 계획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하반기가 시작되는 지금 시점부터 "다시 노력해 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IT가 없어 힘들었던 하루가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마무리됐습니다. 여러분도 하루 정도 IT 기기 없는 세상에 살아보시면 저와 같은 기특한 생각을 하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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