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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일상화된 위협…우리시대의 ‘이웃死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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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주차·흡연등 시비끝 살인까지…

공동체의식 실종 이젠 생활소음도 못참아



#. “새벽 1시가 넘었는데 잠이 안온다. 이사온지 2주가 다 돼가지만 아직 동네가 낯설다. 갑자기 옆집 TV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밖에 나가 소리를 줄이라고 욕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다. 내 말을 무시하는건가. 안되겠다 혼 좀 내줘야지. 담을 넘자.”(지난달 24일 서울 강북구에서 발생된 TV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이웃 주민을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을 피의자의 관점에서 심경을 가상으로 재연한 것)

예부터 살면서 정 들어 형제와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사람들을 ‘이웃사촌’이라 불렀다. 하지만 요즘 이웃 개념은 사촌의 사 자를 ‘죽을 사(死)’로 바꿔도 무방하다 싶을 정도로 심각한 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웃간 시비 끝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위협이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는 분석 속에 주민간 갈등을 중재하고 해소하는 사회적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생활소음’도 못 참는 이웃들= 이웃간 갈등의 소재는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다. 과거엔 비교적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소한 문제까지 이웃간 범죄의 요인이 되고 있다.

층간소음, 주차, 흡연, 반려동물, 관리비, 쓰레기 문제에 더해 이젠 생활소음까지 갈등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2014년 8월 부산에서도 출입문 여닫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흉기를 들고 이웃집에 침입해 다치게 한 50대 남성이 붙잡힌 바 있다.

층간소음은 여전히 단골메뉴다. 지난 1일 부산에서도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는 이웃집에 1회용 라이터 불로 불을 지르려 한 20대 남성이 검거됐고, 지난달 서울 동작구의 한 빌라에선 반상회 도중 층간소음으로 감정이 좋지 않던 아래층 이웃을 칼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IS보다 무서운게 이웃?= 이 때문에 현대사회로 갈수록 어떤 면에선 이웃이 이슬람 과격단체인 IS보다 오히려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IS와 달리 이웃은 문만 열면 상시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존재인데다가 방심하기 쉽고 나와 내 가족을 언제든 위험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는 점 때문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통사회에서 공동체라 하면 1차집단인 커뮤니티가 포함됐는데, 현대사회 특히 도시에선 이웃사람은 공동체의 멤버가 아니기 때문에 그 의미가 애매하다”며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저 사람이 나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판단되면 격한 반응이 오가고 야수와 같은 본능이 발동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갈등관리 후진국’= 통계적으로도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하위권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국의 ‘사회갈등관리지수’는 OECD 34개 중 27위를 차지했다. 사회갈등관리지수는 정부의 행정이나 제도가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지를 나타내는 지수다.

사회에 어떤 갈등 요인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갈등요인지수’는 조사 대상 국가인 OECD 24개국 중 칠레, 이스라엘, 터키에 이어 4번째로 높았다.

▶‘이웃분쟁센터’ 마련 시급=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엔 이웃간 갈등을 중재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YMCA 이웃분쟁조정센터의 주건일 팀장은 “싱가포르는 법체계에 따라 주민분쟁센터가 운영되고 있고, 미국은 총 400여개의 네이버후드 저스티스 센터(neighborhood justice center·이웃정의센터)가 있는데 우리나라엔 이런 제도가 없다“며 “우리도 센터를 방문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게 됨으로써 어떤 잠재적 두려움이 있는지 듣고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경원ㆍ이세진 기자/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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