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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그리스 위기> 10문 10답…이 나라, 이제 어떻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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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김경윤 김남권 정선미 기자 = 그리스 국민들이 채권단이 제시한 구제금융 협상안에 대해 '반대'를 선택함에 따라 그리스와 유로존의 미래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그리스 국민투표가 마무리됨에 따라 유로존은 오는 7일 긴급 정상회의를 열 예정이어서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다른 회원국 정상들과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리스 국민들의 민심이 어떻게 움직였고, 앞으로 그리스와 채권단 사이의 합의 가능성이 있는지 등 그리스 위기 사태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국민투표 여론 어떻게 변화했나.

지난달 27일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 방침을 밝힌 후부터 국민투표 실시일까지 1주일 남짓한 기간 그리스 국민의 여론은 빠르게 움직였다. 국민투표가 처음 결정됐을 때만 해도 국민 다수가 협상안에 찬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반대표도 점차 늘어났다. 협상안 반대가 유로존 탈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더 나은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정부의 설득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은행영업중단 등 혼란을 겪는 과정에서 찬성과 반대가 비등한 양상이 나타났다. 투표 직전까지 찬반 양측이 오차 범위 내에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특히 젊은 층은 반대에, 고령층은 찬성에 몰리는 등 세대 간 대립이 뚜렷했다.

실제 투표 결과 예상을 깨고 반대가 압도적으로 앞선 데에는 정부의 계속되는 설득과 더불어 지난 2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보고서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IMF가 이 보고서에서 채무탕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그리스 국민도 향후 협상에서 더 나은 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진 것이다.

◇그리스 국민들은 왜 '노'를 택했을까.

국민투표의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 정치권과 금융 시장은 '찬성' 우세를 점쳤다. 그리스 국민들이 긴축 프로그램에 불만을 품고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정권을 세웠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 채권단의 추가 지원을 저버리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그리스 국민 투표결과 압도적인 차이로 '반대'가 이겼다. 우선 주요 채권국인 독일에 대한 반감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정권의 핍박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유물을 약탈당했다. 그리스 정부가 올해 초 채무 재조정을 요청하면서 나치 피해 배상금을 요구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지난 5년간 긴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도 경제 사정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2010년 1차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는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시행했지만, 여전히 채무에 허덕이고 있다. '반대' 투표는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이어지지 않고 채권단과의 더 나은 협상을 이끌어갈 힘이 된다는 치프라스 총리의 주장을 믿었을 가능성도 있다.

◇ 그리스 사태 향후 전망은.

올해 긴축 반대를 내세워 정권을 잡은 급진좌파연합(시리자)과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투표로 재신임을 받았다. 치프라스 총리의 어깨에 힘이 더 실리는 만큼 채권단과의 3차 구제금융 협상은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일단 양대 채권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한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그리스와 채권단 모두 협상 결렬에 따른 그렉시트의 파장을 잘 알기 때문에 협상은 다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재신임을 받은 치프라스 총리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협상은 진통을 겪겠지만 결국 타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반면, 국민투표 과정에서 치프라스 총리와 채권단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만큼 협상 테이블이 제대로 꾸려질지 미지수라는 의견도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재협상이 이뤄지더라도 협상이 가시밭길을 걷다 결국 협상 타결에 이르지 못하면 그리스가 전면적인 디폴트(채무불이행)와 그렉시트의 길을 밟을 것이란 우려도 커질 전망이다.

◇그리스, 부채탕감 받을 수 있을까.

부채탕감은 시리자 정부가 가장 원하던 합의 방향이다. 국민투표 부결로 민의를 등에 업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즉각 부채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겠다고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주요 채권자 가운데 하나인 IMF도 보고서를 통해 만기 연장 등 부채 경감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리스가 부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EU) 채권단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치프라스 총리가 취임 직후부터 채무 탕감에 이어 '채무 스와프'까지 제시했지만 번번이 독일의 반대에 부닥쳤다.

◇유럽 주요국들 반응은.

유로존 양대 경제국인 독일과 프랑스 정상은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6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번 사태의 대처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EU 집행위원회도 짧은 성명을 통해 투표 결과를 존중한고 말했다.

그렉시트를 전망하는 발언도 나왔다. 유로존 가입을 기다리는 폴란드 총리는 국민투표가 반대로 나와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유로존 회원국인 슬로바키아 재무장관은 그렉시트가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리스 투표 결과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도 있다. 반(反) 유럽연합을 내세우는 프랑스 국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유럽연합의 과두제에 승리를 거뒀다"고 말했다. 스페인 신생 좌파정당 포데모스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대표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는 치프라스 총리와 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의장과 6일 오전 전화회담을 열고 그리스 상황을 논의할 계획이다.

◇7일 유로존 긴급 정상회의 전망은

독일과 프랑스 양국 정상의 요청에 따라 7일 유로존은 긴급 정상회의을 열기로 확정했다. 이 회의에는 치프라스 총리도 참석해 다른 18개 회원국 정상들과 그리스 사태의 앞날을 논의한다. 회의 결과 협상 재개 또는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반면, 치프라스 총리가 협상 파트너로 자격을 잃을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투표 전부터 채권단에는 치프라스 총리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류가 있었다. 회의에서 채권단이 그리스 정부와 협상을 거부하기로 결정한다면 그리스는 지난달 30일 IMF에 '기술적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낸 것에 이어 오는 20일 유럽중앙은행(ECB) 부채도 갚지 못하는 실질적 디폴트로 파국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유로존 탈퇴로 이어지나.

그리스 국민투표가 유로존 탈퇴 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었던 만큼 당장 그렉시트가 가시화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리스 정부가 유로존 탈퇴를 원하지 않는 데다 그리스에 강력한 긴축을 요구하는 독일도 그리스가 유로존을 이탈하는 문제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또 그리스 국민 75%가 그렉시트에 반대하고 있다.

현재 EU 협약에는 유로존 회원국이 자발적으로 탈퇴하지 않는 이상 강제로 퇴출시킬 수 있는 제도도 없다. 다만, 그리스와 채권단 사이의 협상 과정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여 이 과정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지 못하면 점진적으로 그렉시트가 전개될 가능성은 있다. 양측의 협상이 삐걱거리고 ECB가 그리스 은행을 계속 지원해줄 명분이 약해져 지원이 끊긴다면 그리스는 실질적인 디폴트에 처하는 것은 물론 시중은행들도 부도를 맞게 된다. 그리스 정부는 금융체계가 붕괴되면 유로화 사용을 포기하고 새로운 화폐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 이는 그렉시트를 의미한다.

◇'그렉시트' 일어나면 그리스에 어떤 변화가 생기나.

그리스 경제는 유로화 대신 새로운 화폐를 도입하는 순간부터 출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화폐 가치 급락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 앞서 IMF는 그렉시트 시 그리스가 사용할 드라크마화가 폭락해 물가 상승률이 35%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ECB의 지원으로 은행의 유동성이 확보될 때까지 예금을 인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그렉시트가 그리스 경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화폐의 가치하락으로 그리스 수출 산업과 관광 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로존 근본적 문제는 뭔가.

유로존은 '유로화'라는 화폐를 같이 쓰면서 화폐 통합으로 시작됐지만, 화폐 통합의 부작용을 보완할 재정통합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유로존에는 중앙은행인 유럽중앙은행(ECB)은 있지만, 재무부는 따로 없다. 수출 경쟁력 등 경제의 근본 체력과 구조가 각기 다른 국가에 동일한 기준금리와 환율을 적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불균형이 불가피하지만 이에 대한 해법은 없는 상태다. 유로존 출범 후 경쟁력이 약한 남유럽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가 늘었지만, 독일 등은 무역흑자가 급증하는 등 유로존 회원국으로서의 수혜를 톡톡히 입은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불균형에도 유로존은 취약한 국가를 지원할 재정이전 매커니즘도 없고, 실업률이 높은 국가에서 그렇지 않은 국가로의 자유로운 노동력 이동도 불가능하다. 지난 2010년 유로존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 위기국을 지원할 수 있는 구제금융 기금이 마련되고 은행연합 구축에 노력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처방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남유럽 위기 전염 재연되나

이번 그리스 위기는 지난 2010년 그리스에 이어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구제금융 행렬에 동참했던 때와는 다르게 평가되고 있다. 당시 남유럽 국가들은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로 경제 체력이 허약한 상황이었다. 그리스에서 재정위기가 돌출한 데 이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부유럽 국가로 위기가 퍼지면서 국제금융시장은 요동쳤다. 하지만, 남유럽 재정위기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적극적인 경제 개혁에 나서 경제 상황이 훨씬 호전됐다. IMF는 스페인이 2008~2013년 경제 위기를 벗어나 올해 3.1%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최근 예상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또 그리스와 세계 경제의 연결 수준이 과거보다 훨씬 낮아 파급력이 작을 것으로 전망됐다.

sm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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