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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취재파일] '요리' 인기 끄니, 베스트셀러 순위도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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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선생' 인기에 차트 역주행

이런 적은 없다. 요리책이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오른 건 '사건'이라 할 만하다. 한국출판인회의가 교보문고와 예스24 같은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을 종합 집계해 매주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서울문화사)가 2위에 올랐다. 몇 달째 꼼짝 않던 1위-'미움받을 용기', 2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순위가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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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52'가 신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4년 8월 초판을 찍어낸 책이다. 보통 베스트셀러는 새로 나온 책이 상승해 높은 순위를 차지한 뒤, 순위가 서서히 낮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차트 역주행'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나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 이렇게 갑자기 인기를 끄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백선생' 백종원 씨가 나오는 프로그램마다 시청률이 자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가 소개한 '만능 간장'을 따라 만들었다는 후기가 블로그마다 올라온다. 그의 '소통법'까지 화제가 되는 걸 보면, 베스트셀러 순위 상승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 공지영의 '음식' 에세이도 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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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씨의 요리책과 함께 10위 안에서 강세를 보이는 책은 작가 공지영 씨가 새로 내놓은 에세이집 '딸에게 주는 레시피'(한겨레출판)다. 지난 6월 9일 초판이 나온 직후부터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 공지영 작가를 '믿고 읽는' 독자들이 물론 많겠지만, 이 책이 '음식'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도 인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날엔 시금치 샐러드', '자존심이 깎이는 날 먹는 안심스테이크', '모든 게 잘못된 것 같이 느껴지는 날, 꿀바나나'… 이런 소제목으로 이어지는 에세이집에서, 작가는 먼저 20대를 건너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서, 딸 위녕에게 지혜가 담긴 조언과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법을 전해준다.

그 중 '속이 갑갑하고 느끼할 때는 시금치 된장국'의 한 구절을 읽어보자.

"… 당연한 것은 없다. 내가 이 간단한 시금치된장국을 끓이는 법을 모르고 살았듯이 끓이기 전에는 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리 쉽고 아무리 간단해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기 전에는 없는 것이지. 이제는 사랑하는 내 자신에게 좋은 음식을 주려고 해.

싸구려 재료들을 먼지가 앉도록 오래 보관하다가 합성 조미료에 비벼낸 음식은 이제 먹지 않아. 이번 휴일에는 집 안을 청소하고 이 마법의 국물을 내어볼래? 점심에는 잔치국수를 먹고 저녁에는 시금치된장국에 현미밥을 먹어보면 어떨까?…"


작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진정 자립을 한다는 것, 사람이 진정 어른이 되어 자기를 책임진다는 것은 간단하더라도 자기가 먹을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포함돼. 아주 중요한 요소지." 이 문장들을 읽으면, 요즘 우리가 ‘요리’에, ‘집밥’에 매료된 ‘알 수 없는 이유’가 조금은 ‘알 수 있겠다’ 싶어진다.

● '이봄' 출판사의 첫 요리책

"요리는 무언가 '몰두할 수 있는 일'이 된 것 같아요. 요리를 하면 몰입감이 엄청나거든요. 그러면서 금방 그 일이 끝나잖아요. 뭔가 한 그릇 음식이 나와요. 몰입감도 느끼면서 성취감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일이 요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 '이봄' 출판사 고미영 대표

'이봄' 출판사, 이름이 낯익은 분들이 많으실 테다. 일본의 만화가이자 수필가인 '마스다 미리' 시리즈를 내고 있는 출판사인데, '이봄'이 올 가을 처음으로 요리책을 낸다. 연희동 요리 선생님 나카가와 히데코씨의 요리 수업을 책으로 옮기는 기획인데, 특히 여럿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쉬운 요리에 집중한다.

"이 책의 컨셉 자체가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만들거나, 초대해서 대접하는, 어쨌든 누군가가 같이 있는 거라서, 굉장히 쉽게 할 수 있는 걸 뽑았어요. 후식도 베이킹 같은 건 다 빼고. 젤라틴이나 무스처럼 냉장고에 넣으면 굳어지는 그런 쉬운 것만 모아서 했거든요. 누구를 초대하거나 누구랑 같이 밥 먹는데 외식하지 않고 비싼 레스토랑 가지 않고 집에서 같이 먹을 수 있는, 쉬운 방법을 제안하는 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나카가와 히데코

(요리책 촬영날의 모습은 8뉴스에 소개됐습니다. ▶ '먹방·쿡방' 잇는 요리책…서점가 요리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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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책을 내지 않던 출판사까지 요리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저희 출판사가 집중하고 있는 게 30~40대 여성들이 책을 통해서 치유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책들을 많이 만들어 왔어요, 그동안. 그래서 독자들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가 늘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5년 전에는 그림 에세이, 또 멘토로 삼고 싶은 여성 저자들의 에세이류를 냈는데, 요즘엔 관심이 요리더라고요.

이번 책은 요리책이기 때문에 당연히 레시피를 담고 있어요, 그런데 그 뿐만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요리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사람들이 즐겁게 노는지를 더 담고 싶어요. 그것이 저희 출판사가 이 요리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에요."


– 고미영, '이봄'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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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 : 이봄 출판사

‘따뜻함을 느끼고, 즐겁게 노는 것’, 그렇다, 요리는 단순히 만들어서’(노동), 먹는(섭취)데서 끝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요리교실에서 요리를 배우는 사람들, 또 집에서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보며 하나씩 도전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점점 늘고 있다.

"제가 8년 전에 처음 요리교실을 시작하려고 준비할 때, 그 때는 요리교실 자체가 많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때는 주로 주부들이 왔어요. 그런데 이제는 저녁반도 만들었고, 직장인들이 2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남녀 모두 요리를 배우러 와요."

– 나카가와 히데코

이런 대중의 관심에 맞춰, 출판사들이 요리책에 관심을 갖는 건 세계적인 추세라고 고미영 대표는 설명한다.

"영국의 ‘파이돈’이라는 예술서적으로 유명한 출판사가 요즘 주력하는 분야가 요리예요. ‘실버 스푼’이라는 시리즈가 가장 유명한데, 요리 사진을 굉장히 예술적으로 찍는 거죠."

요리책은 과거의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을 벗고 있다. 두툼한 양장본에 작품 같은 사진이 실린 요리책부터, 싱크대에 쏙 넣어놓기 좋은 얇고 작은 요리책, 사진보다 글이 더 많아서 ‘이게 요리책이라고?’ 싶은 요리책… 책을 살 때, 우리가 단순히 ‘글자가 찍힌 종이’를 사는 게 아니라, 책의 질감과 무게, 들고 다닐 때의 기분 좋음, 책장에 꽂아놨을 때의 모습까지 생각하게 되듯, 요리책을 살 때, 우리는 그 안에 담긴 ‘레시피’만을 얻기 위해 사는 건 아니다. 레시피는 인터넷에도 수없이 많으니까. 일관된 분위기로 묶인 한 권의 요리책을 손에 들 때, 우리는 그 음식을 만들어 먹을 ‘따뜻하고 즐거운 순간’들을 지향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건, 그저 눈으로 보기만 했을 뿐인데, 요리책을 많이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재료손질부터 양념 만들기, 요리의 순서가 머릿속에 기억돼서 주방에 섰을 때 전보다 훨씬 맛난 음식을 만들어내는 자신을 발견하게된다는 것이다. 못 믿으시겠다고? 일단 요리책을 보시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실지 모른다.

[조지현 기자 fortun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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