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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메르스 현장 리포트 - 답은 □□에 있다](2)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정보’ 싸움… 정부 ‘쉬쉬’하다 방역 뚫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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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로 입막음 급급

정보 공유되자 상황 반전

확진자 거짓말도 문제

지난달 5일 국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는 중요한 전기를 맞았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언론브리핑에서 최초 환자(68·남)가 입원했던 평택성모병원 이름을 공개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힘을 합쳐 모든 조치를 강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태 초기부터 병원명 미공개 원칙을 고수하다 전날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서울병원의 35번째 환자(38·남)가 격리되기 전 1500여명을 만났다”고 밝히자 방침을 바꾼 것이다.

경향신문

대한감염학회와 대한의료감염관리학회가 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위기 넘어 일상으로 돌아오기’라고 이름 붙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세미나를 하고 있다. 김우주 감염학회장은 행사에서 “지난 5월부터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역병과의 싸움을 해왔다”며 “우리는 반드시 메르스를 이겨낼 것”이라는 ‘메르스 극복’ 선언을 발표했다. |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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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정부는 최초 환자와 밀접 접촉한 격리관찰자 64명 내에서 확진자가 나온다면 메르스 조기 종식이 가능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래서 방역 파트너인 지자체나 의료계와도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쉬쉬하기 바빴다.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는 사이 삼성서울병원을 감염시킨 슈퍼전파자인 14번째 환자(35·남)를 필두로 평택성모병원 감염자들과 바이러스는 속절없이 방역망을 빠져나갔다. 고집스럽게 버티던 정부는 삼성서울병원발 2차 유행(확진자 88명)이 터진 후에야 흰 수건을 던지고 병원명을 공개했다.

메르스 사태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이면서 정보 싸움이기도 했다. 메르스는 주로 병원 내 감염으로 확산된다. 확진자들이 다녀간 병원 이름과 이동 경로는 방역의 가장 기초적이자 핵심적인 정보였다. 그러나 사태 초기 정부는 의료계·지자체·언론에 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재갑 한림대 교수(감염내과)는 2일 “사태 초기에 환자가 감염될 수 있는 병원 정도만이라도 알려달라고 (정부에) 말했으나 의사들한테도 말하지 않았다”며 “병원에만 알람을 울렸더라도 이렇게 여러 병원으로 확산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들과 기자들은 최초 환자가 다녀갔다는 4개 병원을 정부로부터 A·B·C·D 알파벳으로 들으며 소문과 귀동냥에 의지해 추정·짐작만 쏟아낼 뿐이었다. 언론에 공식 정보가 나오질 않으니 시민들도 ‘병원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들었다’는 식의 출처 불명 문자메시지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소문을 잠재우는 대신 ‘유언비어 유포자는 처벌하겠다’며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방법을 선택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생존을 위한 정보를 얻으려는 것은 기본적인 욕구라서 (이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그 틈새를 타고 루머와 괴담이 확산된다”며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도둑이 들어오듯이 정부가 초반에 시민들의 불안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도 정보에 목말랐다. 병원 이름이 공개된 뒤에도 지자체는 관할 지역에 사는 확진자 정보를 뒤늦게 전해듣기 일쑤였다. 강원 원주시의 ㄱ씨(42)는 5월27~30일 슈퍼전파자 14번째 환자가 입원 중이던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했다가 6월9일 96번째 확진자가 됐다. ㄱ씨는 확진 판정을 받기 이틀 전부터 정부의 격리자 명단에 포함돼 자택격리 중이었지만 정작 ㄱ씨를 관리해야 할 원주시보건소엔 이 사실이 통보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90번째 환자(62·남·사망)는 지난달 8일 확진·격리되기 전까지 병원 3곳을 전전했지만 충북도는 확진 하루 전날에야 이 환자가 격리 대상자라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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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뒤늦은 정보 공유도 문제였지만 확진자들의 거짓말도 방역을 어렵게 한 요인이었다. 일부 확진자들은 격리되기 전 이동 경로와 접촉자를 묻는 역학조사관들에게 동선을 지어내서 말하거나 ‘직접 알아내보라’고 했다. 역학조사관들은 신용카드 이용 내역과 폐쇄회로(CC)TV 화면을 분석해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범죄 수사 기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황승식 인하대 교수(예방의학)는 “성 매개 감염병은 환자가 거짓말하는 일이 있지만 호흡기감염병 상황에서 환자가 거짓말하는 사례는 보고된 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범죄자 수사하듯 역학조사를 한 게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확진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정보를 축소·은폐하기에 급급했던 정부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최진봉 교수는 “정보 부족으로 괴담이 난무하니까 확진자들도 ‘사회적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 정보를 숨기려 했을 것”이라며 “감염병 같은 위기 상황엔 보건·방역 전문가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도 참여하도록 해 통합적인 위기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희진·정원식·김지원·최승현·이종섭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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