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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목)

인종간 유전자 99.9% 일치… 인류는 한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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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KookI

아프리카 기원설은 호모 사피엔스가 6만5,000년 전 아프리카에서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면서 인류의 조상이 됐다고 설명한다. 현재 인류의 조상이 같다는 뜻으로, 실제 인종 간의 유전적 차이는 최대 0.1%에 그친다. 사진은 베네통 제공.


수원 20대 여성 살해 사건 등을 계기로 일부에서 외국인 혐오증이 표출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최근 '다문화는 한국인 유전자를 썩게 하는 짓'이라고 적개심을 드러낸 글 등 여러 건의 인터넷 게시글에 대해 삭제 조치를 내렸다. 지난해 7월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르웨이 집단살해범은 "단일문화를 가진 한국은 가장 완전한 사회"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족, 인종이란 말은 사회적 개념일 뿐 과학적으론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현대 과학은 이미 '인종은 없다'고 선언했다.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아프리카 기원설이다. 이 가설은 15만~20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대륙으로 이주하면서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호모 에렉투스를 대체했다고 설명한다. 현생 인류는 모두 같은 뿌리를 갖고 있으며, 다만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지금의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 유전자 변이라는 것도 아주 작은 수준이다. 가천의대(현 가천대)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한국인의 유전체(유전자 전체)를 분석, 2009년 국제학술지 <게놈 리서치(Genome Research)>에 낸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과 중국인의 유전적 차이는 0.04%, 한국인과 유럽인의 차이는 0.05%로 나타났다.

같은 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10개국 90여명의 과학자가 참여해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지리적으로 가까울수록 유전적 거리가 좁았으며, 아시아 인종 간의 유전적 차이는 매우 적었다.

이들은 사람이 갖고 있는 30억쌍의 유전자 염기서열 중 변이가 잘 일어나는 5만개 지점에서 단일염기변이(SNP)가 일어났는지 비교했다. 아시아의 73개 인종 1,900명을 대상으로 했다. 유전자 염기서열은 4개 염기 중 아데닌과 티민, 구아닌과 시토신이 짝을 이루고 있다. 그 중 한 개가 다른 염기로 바뀌는 돌연변이를 SNP라고 한다. 연구에 참여했던 김상수 숭실대 의생명시스템학부 교수는 "한국인과 아프리카 사람간의 유전적 거리를 100이라고 했을 때 한국인과 필리핀인 간의 거리는 10이고, 중국인, 일본인과는 더 가깝다"고 말했다. 유전적 거리가 가장 먼 두 인종이라도 그 차이는 최대 0.1% 정도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종종 인종간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는 데 이용된다.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대 심리학과의 필립 러시튼 교수도 과학을 오용(誤用)하는 이들 중 하나다. 러시튼 교수는 흑인은 뇌 용량이 작아 지능지수(IQ)가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가 쓴 책 <인종, 진화와 행동(Race, Evolution and Behavior)>에 따르면 흑인의 평균 뇌 용량은 1,267㎤로 황인(1,364㎤)이나 백인(1,347㎤)보다 작다. 평균 IQ도 흑인은 85지만 황인과 백인은 각각 106과 100으로 나왔다. 2007년엔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 박사가 "흑인은 백인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교육환경 등 사회경제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IQ는 뇌의 크기보다는 대뇌피질의 발달 정도에 비례한다는 게 중론이다. 대뇌피질은 대뇌 표면을 2~3㎜ 두께로 감싸고 있는 회백색의 신경세포층이다. 이 부분은 지능과 관계된 생각ㆍ기억ㆍ언어 능력을 담당한다. 만약 IQ가 뇌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면 1만년 전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은 현대인보다 머리가 좋아야 한다. 네안데르탈인의 뇌 용량은 1500∼1750㎤로 현대인보다 컸다.

2000년 인간게놈프로젝트 이전에만 해도 인종 간의 유전적 차이는 매우 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생김새와 사는 곳이 달라도 유전자는 99.9% 이상이 같다. 지금껏 진행된 많은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인류는 모두 한 가족이란 얘기다. 박종화 게놈연구소장은 "나라와 지역을 기준으로 민족과 인종을 나누지만 유전학적으론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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