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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한국 경제에 대한 잘못된 렌즈 교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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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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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고환율 정책은 현실변화 도외시 ‘수구’

이제 저성장은 껴안고 살아야 할 ‘상수’

문제는 가계부채·양극화 등 내부에

낙수효과 고집 말고 소득주도성장으로


그동안 우리 경제는 국외에서 발생한 경제적 악재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아무래도 소국인데다 국외 수출에 대한 의존성이 큰 속성 탓이다. 게다가 국내 금융시장의 상대적으로 뛰어난 환금성(풍부한 유동성)은 중국을 포함하여 아시아 금융시장에 대한 국제 투자자들의 투기 공략 과정에서 사실상 ‘현금인출기’(ATM)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런 만큼 미국이나 주요국은 물론 신흥시장 주변국의 소소한 동요마저도 우리에게는 심각한 악재로 여겨졌다.

지금도 국내 경제 주체들이나 정책당국의 시각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출구전략 행보나 엔화 약세, 나아가 그리스발 충격이나 중국의 경착륙 위험을 비롯하여 각종 신흥시장 불안에 늘 촉각이 곤두선 모습이다. 한동안 신흥시장의 취약성과 관련하여 핵심고리로 거론되던, 1980년대 제3세계 외채위기 같은 이른바 ‘원죄’ 의식이 우리의 일상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아시아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악몽이 생생한 처지에서 달리 방도도 없는 셈이다.

아시아 외환위기만 해도 1980~90년대를 휩쓸었던 신흥시장 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원죄 의식이 타당해 보이나, 글로벌 금융위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이 위기는 현대 세계경제의 주축인 미국에서 발생한 것이다. 물론 그 충격은 현대 금융의 복잡한 사슬을 통해 이내 대서양 건너 유럽으로 번졌고, 유로존 재정위기라는 새로운 문제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세계 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적 참사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본적으로 선진국의 문제였다. 다시 말해 이제 ‘원죄’는 선진국의 몫이라는 얘기다.

선진국 위기가 강 건너 불구경일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선진국 못지않게 신흥국에도 치명적인 충격이 되었다. 특히 우리는 외자가 대규모로 유출되면서 심각한 외화유동성 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이후 유로존 재정위기나 여러 번의 신흥시장 불안을 거치면서는, 비록 상당한 변동성을 수반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큰 충격 없이 안정세를 회복하는 모습이다. 외환 부문을 중심으로 국내 거시건전성 개선을 위한 각종 규제나 자구노력의 덕택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연준의 금리인상 논란과 엔 약세 심화 등의 영향으로 원화 향방에 대한 우려가 크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는 뚜렷이 향상되고 있다. 실제로 대외신인도의 실시간 척도인 ‘외평채 CDS 프리미엄’은 2007년 말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고, 국내 채권이나 주식에 대한 외국인 자금유입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무디스나 에스앤피(S&P) 등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우리나라의 신용 전망을 상향하기도 했다. 이제 한국을 신흥시장 중 가장 안정적인 곳으로 평가하거나, 아예 신흥시장에서 빼고 선진시장으로 분류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외환위기 직전처럼 또다시 선진국 진입을 자축할, 거품만 가득 찬 샴페인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제는 예전의 위기들처럼 우리나라의 대외 지급능력(신흥시장 ‘원죄’의 실체!)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따름이다. 과거에 얽매인 렌즈를 끼면 처방도 과거 지향적인 법이다. 최근 엔 약세나 환율전쟁 우려, 나아가 중국발 경쟁 위협 등과 맞물려 슬그머니 부활하는 고환율 정책이 단적인 예다. 모든 것을 내주고서라도 어떻게든 외화를 벌어들여야 한다는 논리야말로 현실의 변화를 도외시한 ‘수구’인 셈이다.

게다가 세계 경제의 구조적 정체라느니, 부채 슈퍼사이클의 붕괴에 따른 숙취일 뿐이라는 등 논란이 크나 지금 세계 경제가 다소간 축소 지향적이라는 데에는 공감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의 저성장도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일본의 장기불황은 현대 경제에서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 법칙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저성장은 타도 대상이 아니라 껴안고 살아야 할 ‘상수’ 혹은 ‘제약’이 된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축소 지향 세상에서는 수요 감소나 경쟁 심화와 분업 재편으로 수출 부진이 불가피해진다. 이미 수출 소득의 환류효과조차 의문시되는 상황이다.

진정한 문제는 내부로 귀착된다. 때마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린 인구구조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미 가계부채 급증이나 소득 양극화 등 대내 취약점들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맞서 경제 안정을 담보할 임금인상이나 소득창출 지원, 취약층 보호 등의 현안들은 여전히 수출이나 부동산 활성화를 통한 ‘낙수효과’ 이론에 밀리고 있다.

임금을 생산비용이나 수출경쟁력에 편향된 시각으로부터 내수와 가계후생의 기반으로 보는 관점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출 부진 역시 수출에 치중된 자원의 재분배와 경제적 효율성의 제고, 나아가 불균형의 완화라는 각도에서 새로운 조망이 요망된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내부 불균형의 폭발에 따른 새로운 위기, 즉 ‘내파’(implosion)의 위험에 직면할지 모른다. 특히 섣부른 부동산 부양책은 그나마 우리에게 닥치지 않았던, 일본식 장기불황의 핵심고리인 거품 붕괴를 자초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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