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에 맞서 험난한 외줄타기에 나섰다. 러시아가 최근 서방간 갈등을 완화하면서 경제회복도 탄력을 받았지만 섣불리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손을 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힘을 받는다. 푸틴 대통령이 국내 불만을 완화시키고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있어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비장의 카드'라는 지적이다.
푸틴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로시야방송과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미국과 국제적 의제를 다루기 위한 협력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국제적 의제와 관련한 몇몇 이슈들에 대한 의견 불일치를 겪고 있지만 의견이 합치하는 부분도 있다"며 "우리가 세계경제를 보다 민주적이며 균형적이고 침착하게끔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서 서방과 의견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간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의 책임이 있다며 맹렬히 비판해 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화면서 러시아가 받는 경제적 타격이 심각해지자 이같은 자세가 속속 뒤집어졌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의 분리독립 무장투쟁이 발생한 지난해 3월부터 대 러시아 경제제재를 가해왔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2월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논의 끝에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과 정부군 간 휴전안을 도출한 것도 국내 경제가 받고 있는 심각한 충격 때문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과 정부군 간 휴전안 합의 도출 성공한 후 러시아가 겪는 경제문제는 완화되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전문가들이 러시아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3%로 전망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기존 전망치인 –5%보다 상향 조정된 것이다. 아르카디 드보르코비치 러시아부총리도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전반적으로 러시아 경제는 나쁘지 않다”며 러시아 경제가 회복세로 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러시아 경제에 대한 기대감덕분에 루블화 가치도 되살아나고 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루블/달러 환율은 17일 종가기준 51.96루블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루블 가치는 약 50% 떨어졌지만 지난해 12월 68루블과 비교하면 크게 회복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러시아가 서방 간 대치 국면을 끝낼 경우 푸틴 대통령이 받는 정치적 부담은 오히려 커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역시 서방과 완전한 '평화 무드'를 이루는 게 부담된다는 전망이다.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동부 반군의 분리·독립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반군을 비호하는 러시아가 서방과 벼랑 끝 대치에 나섰다. 러시아 국내 여론의 관심은 경제문제에서 서방과 대립 국면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현재 90%에 육박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리더십이 크게 부각된 덕분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국내 관심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다시 경제 및 사회 문제로 기울 경우 푸틴 대통령이 역풍을 맞게된다는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의 예산편성을 보면 푸틴 대통령의 우선 순위가 명백히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 크렘린궁 유지, 군사지출, 안보 예산에 책정한 예산은 전체 예산의 40%에 달한다. 반(反) 서방정서를 퍼뜨리는 국영미디어 등 선전과 관련한 예산에도 넉넉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보건복지와 인프라(사회기반시설) 예산을 삭감해 현재 국방 예산의 약 두 배 선으로 책정됐다.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러시아 중산층이 요구하는 삶의 질을 충족시켜주는 측면에 있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지훈 기자 lhsh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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