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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검찰, 박종철 고문치사 후 가족 사찰에만 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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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청문회 앞두고 정부 문서 공개 파장

수사는 뒷전… 전국 검찰 동원 유족·대학가 동향 정보보고

29개 문건 중 수사 관련 1건뿐… “검·경 한통속 드러난 셈”

검찰이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직후 가족 동향 등을 시시각각 사찰해 법무부에 보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의 짜맞추기 은폐 수사를 사실상 방조했던 검찰이 정작 박씨 유족들의 동향 및 박씨 사망 사건에 대한 대학가 동향 파악에는 적극 나섰던 것이다.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박씨 사건 수사팀 검사였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가기록원이 보관 중인 정부 문서를 열람했더니 이같이 나타났다고 31일 밝혔다.

경향신문

1987년 법무부 검찰국 검찰 제3과가 생산해 현재 국가기록원이 보관 중인 ‘고문치사(박종철)’라는 제목의 문서철을 보면 당시 검찰이 박씨 가족의 동향을 얼마나 세심하게 사찰했는지 드러난다. 특히 서울지검과 박씨 가족들이 살고 있던 부산지검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박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 누나에 대해 지속적으로 동향보고서를 작성, 법무부에 보고했다.

동향보고서의 내용 중에는 박씨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누구와 만나는지, 조의금을 누구로부터 얼마나 받았는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지, 야당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는지 등이 포함됐다. 박씨 가족 개개인이 수사결과를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편인지, 불만을 토로하며 반항적인지 등 가족별 성향을 분석한 다음 ‘순화’ 가능성에 대해 보고한 것도 있다.

심지어 부산에 거주하는 가족들이 박씨의 형 박종부씨의 결혼 문제로 서울에 왔을 때에도 검찰의 사찰은 계속됐다. 검찰은 박씨 가족들이 서울에 몇 시에 도착했고, 박종부씨의 약혼녀를 언제 어디에서 만났는지 파악해 보고했다.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어디에 갔고, 숙박을 위해 몇 시에 어느 여관에 묵었는지도 동향보고에 포함됐다.

당시 정부가 박씨 가족을 회유하려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부산지검은 부산시 수도국장, 영도구청장 등이 박정기씨를 접촉해 순화하고 있다면서 가정 형편을 상세히 보고했다. 부산지검은 서울대·고대 등의 학보사 기자들이 박씨 가족을 방문한 동향도 빠뜨리지 않고 보고했다. 검찰은 박씨 사건 관련 재판이 열릴 때마다 법정 주변 상황을 보고했다.

문서철에 포함된 전체 문건 29건 가운데 ‘연행피의자 변사사건 발생보고’와 ‘박종철 사망사건 수사상황보고’를 제외한 27건이 모두 박씨 사건 수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동향보고 및 정보보고였다. 이 보고서들은 서울·부산·대구·광주·춘천 등 각 지검에서 만들어 법무부에 수시로 보고한 것을 묶은 것이다. 문건들은 각 지검의 공안부 검사 명의로 작성됐다.

박씨의 형 박종부씨는 “매우 불쾌하고 당황스럽다. 당시 주변에 경찰은 많았지만 검찰까지 그렇게 하고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면서 “당시 경찰과 검찰이 한통속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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