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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진범은 누구일까... ‘이탈리아 여대생 살인사건’ 아만다 녹스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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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녀의 목숨을 잔인하게 앗아간 것은 누구일까.

2007년 세상을 놀라게 한 이탈리아 여대생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아만다 녹스(27)가 지난 2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로 녹스는 완벽한 자유의 몸이 됐지만 살인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됐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이날 살인 혐의로 기소된 녹스와 그의 전 남자친구 라파엘 솔레시토(29)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4월 항소법원의 유죄 판결을 뒤집는 결과였다.

경향신문

아만다 녹스가 27일 이탈리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언론에 기쁜 심경을 밝히고 있다. 녹스는 2011년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된 뒤 시애틀에서 지내왔다. 시애틀/AP연합뉴스


7년 넘게 유죄와 무죄가 엇갈리고, 미국과 이탈리아, 영국 국민들의 감정대립으로까지 비화된 이번 사건은 2007년 이탈리아 페루지아의 한 아파트에서 시작됐다.

2007년 11월 2일 페루지아의 한 아파트에서 영국 출신의 여대생 메레디스 커처(당시 21세)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탈리아 수사기관은 커쳐가 전날 밤 살해당했다고 밝혔다. 나흘 뒤 세 사람이 용의자로 붙잡혔다. 미국에서 온 교환학생으로 커처의 룸메이트 녹스와 녹스의 당시 남자친구 솔레시토, 녹스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펍의 주인인 패트릭 루뭄바였다. 루뭄바는 20일 증거부족으로 풀려났지만 녹스와 솔레시토는 또다른 용의자인 루디 구데와 함께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탈리아 검찰이 밝힌 살해이유는 충격적이었다. 녹스와 일행이 커처에게 집단성관계를 제안했지만 거부하자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녹스의 청순한 미모와 선정적인 살해동기 등이 얽혀 이 사건은 전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녹스와 용의자들은 1심부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검찰은 수사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과 DNA 조사 등을 통해 “유죄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녹스는 초기부터 거짓말로 혼선을 주었고, 미국 언론을 통해 언론플레이를 하는 등 죄질이 주장했다. 녹스는 솔레치오와 함께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탈리아 검찰은 그녀가 문란한 생활을 했다고 주장했다.

2009년 12월 이탈리아 1심 법원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받아들이고 유죄판결을 내렸다. 녹스는 징역 26년, 솔레치오는 25년, 구데는 30년형을 선고받았다. 1심 후 미국의 법의학자들이 움직였다. 녹스의 가족들은 미국의 자국민보호법 등을 주장하며 법의학전문 수사관들을 이탈리아에 파견했다. 수사관들은 “이탈리아 검찰이 피의자들의 DNA를 검출한 것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40일이 지난 시점이었다”며 “증거능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2011년 2심 법원은 ‘증거부족’을 이용해 녹스와 피해자들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녹스는 4년여의 구금에서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무죄판결을 받고 돌아간 녹스는 자서전을 펴내고 TV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스타’가 됐다.

그러나 2013년 이탈리아 대법원이 검찰의 상고를 받아들여 재심을 명령하면서 녹스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1월 이탈리아 항소심은 재심에서 녹스에게 징역 28년 6월을 선고했고, 솔레치노에게는 25년, 구데에게는 16년형을 선고했다. 원심보다 더 높은 형량이었다.

엇갈린 결과 속에 미국에 머물고 있던 녹스를 재송환할 것이냐는 문제를 두고 이탈리아와 미국, 영국이 들끓었다. 외국인의 범죄인 인도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온 미국이 같은 기준으로 녹스를 이탈리아에 인도할 것이냐가 관건이었다. 수사와 재판을 담당한 이탈리아, 희생자의 부모들이 살고 있는 영국도 미국의 바른 판단을 촉구했다.

다시 죄인의 삶을 살게 될 처지에 놓였던 녹스는 지난 27일 이탈리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으며 회생했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2심때처럼 검찰이 제시한 증거로는 살인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녹스가 무죄라는 것은 살인사건의 진범을 사실상 찾을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가디언은 사건 초기 녹스가 살인범이라고 지목해 구금됐다 풀려난 루뭄바의 반응을 전했다. 뭄바는 대법원 선고 후 “녹스는 무죄다. 그녀는 미국인이고 부자이니까…이건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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