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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대중 칼럼] 直言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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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補制 뒀지만 면피성일 뿐 원로·전문가들 助言 들어야

反朴 세력과 싸움 시작됐는데 경청은 않고 자기 얘기만 한

전직 대통령들 전철 밟다간 남은 3년 지리멸렬될 수도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박근혜 정부 들어 여당이나 정부 고위직을 맡게 된 사람들에게 흔히 하는 주문이 있다. "대통령에게 직언(直言)하라"는 것이다. 그런 자리를 맡게 된 사람이 "직언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경우도 있다. 김종필 전 총리는 "이완구 신임 총리가 대통령에게 직언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하는데 그런 소리를 일절 입에 담지 말라고 얘기해줬다"며 "박 대통령이 섬세한 여성이기에 건의 드릴 일이 있으면 조용히 해야지 밖으로 자랑하고 다닐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직언이 되는 셈이다. 뒤집어보면 박 대통령이 직언을 싫어한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직언이란 대부분 아랫사람이 자기 생각을 솔직히 말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그에 따른 불이익도 감수할 용기가 전제되는 것이다. 직언이라는 단어 속에는 상급자가 '듣기 싫어하는 말'의 뜻이 있고 '아니되옵니다'의 저항적 의미가 함축돼 있다.

박 대통령이 정말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박 대통령이 결벽성이 있거나 자존심이 강해서, 또는 상대방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경향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면전에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굳이 표현하자면 '직언'보다는 '조언(助言)'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른다.

직언이든 조언이든 문제는 참모들이 박 대통령에게 문제점을 거론하고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또 조언이나 건의도 대통령보다 나이도 위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해야 무게도 있고 모양새도 맞는데 박 대통령은 그런 원로들을 지근(至近)거리에 두지 않고 있다. 직업적으로 비판적 관점을 피력해야 할 언론계 사람들도 대부분 박 대통령에 대해 이런저런 건의를 하는 것을 피곤해한다. 기사를 써도 별다른 변화가 없고, 쓴소리했다 하면 불쾌한 반응만 들려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을 '마이 웨이(My Way)'의, 또는 '불통(不通)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박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박 대통령이 국정 운용 스타일 면에서 딱딱하고 무겁고 너무 사무적으로 일관하기보다 좀 유연하고 부드럽고 친근한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엄격하고 긴장해 있는 듯한 박 대통령을 보면 여당 당직자, 장관, 비서관들과 '기(氣) 싸움'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듣기 거북한 얘기가 나오면 박 대통령의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온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각종 회의에서 '지시'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국정의 주요 모멘트가 '지시하는 자'와 '지시받는 자'의 관계로 고착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박 대통령은 특보(特補) 제도를 만들었다. 또 국무회의에 앞서 티타임을 갖는 등의 '변화'를 선보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특보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했다거나 티타임에서 어떤 쌍방향 대화가 오갔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어찌 보면 그런 '변화'는 면피성이 짙다. 진짜 필요한 것은 대통령이 원로 그룹을 만나 세상 얘기를 듣고,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보고서 제도를 없애 장관을 1대1로 만나고 사안에 따라 야당 인사를 초치하는 등의 변화를 보일 때 박 대통령의 국정은 진일보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무엇을 얘기하기보다 상대방에게 질문하고 답을 듣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을 개별적으로 만난 기억을 되살려보면 모두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지 상대방의 얘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그런 자리다. 경제학자로 부총리를 지낸 고(故) 신태환 박사의 얘기다. ―"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 장군을 처음 만났을 때 그분은 내 얘기를 경청하며 깨알같이 수첩에 적었다. 10여년 후 내가 정부를 떠날 때 고별 면담에서는 박 대통령이 시종 자기 얘기만 했다." 어느 전직 대통령은 "내가 전문가가 아닌 만큼 청와대 들어가면 되도록 많은 사람 얘기를 듣고 정책을 입안하겠다"고 하더니 "청와대 들어가 보니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만큼도 모르더라"로 변했다. 청와대는 그런 곳이다.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른다. '말'의 무게보다 '글자'라는 증거(?)만 신봉하는 사람에게, 배신의 악몽 때문에 불신의 벽을 쌓고 사는 사람에게, 그리고 모든 시시콜콜한 정보로 넘쳐나는 잡식의 장마당 같은 청와대 환경에서 대통령에 대한 '직언'이랄까 '조언'이 설 자리는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박 대통령의 남은 3년은 지리멸렬일 수 있다. 야당과 반(反)박근혜 세력은 이제 전략을 바꿔 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새정치연합이 친노(親盧)로 뭉쳐 정권 교체를 선언한 '문재인'을 선택했고, 당내 극단 세력이 '박근혜 퇴진'을 표면화하는가 하면, 전단을 뿌리며 길거리 투쟁에 나선 좌파 세력이 단합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과 반박(反朴) 세력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변하지 않으면 진다.

[김대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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