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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박정호의 사람 풍경] '심장병 없는 세상을 … ' 부천 세종병원 박영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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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앞에 돈 따질 수 있나" 어린이 환자 1만2000명 무료수술

중앙일보

부천 세종병원 심혈관촬영실에서 함께한 박영관 회장(오른쪽)과 박진식 원장. 아버지는 항상 “이 사람” “자네” 하며 아들을 깍듯이 대했다. 아들은 “아버지는 불도저처럼 일하셨다. 그런 열정을 되살려 어려운 이를 계속 돕겠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1983년 11월이었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방한했던 낸시 여사가 선천성 심장병에 걸린 한국 어린이 둘과 함께 미 대통령전용기에 올랐다. 아이들을 미국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한다는 기사였다. 부끄러웠다. “아니, 우리도 살 만해졌는데, 아직도 아이들을 미국에 보내야 하나. ‘기브 미 초콜릿(Give me chocolate)’하며 미군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전쟁통도 아닌데….”

속이 상했다. ‘심장병 없는 세상을 위해’를 목표로 82년 8월 문을 연 부천 세종병원에서 할 일이 많다는 걸 절감했다. 심장 수술을 하는 곳이라곤 서울대병원과 연세세브란스병원밖에 없던 시절, “심장전문병원을 세우겠다”는 선언에 주변에선 “그게 되겠느냐”며 쌍수 들고 말렸지만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당시 누적 2만 명에 달했던 심장병 어린이에게 새 빛을 주고 싶었다.

#1. 76세 노의사의 희망가

어느덧 33년이 흘렀다. 내 이름 박영관, 올해 일흔여섯이다. 그동안 병원도 단단해졌다. 지난 5일 대한민국 유일 심장전문병원으로 재지정됐다. 지금 내 곁에는 장남 진식(45)이 있다. 회장으로 물러난 나를 대신해 2013년부터 병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로 있던 아들이 대를 이었다. 평생 학문에 정진하겠다던 아들이 마음을 돌려줘 한편으론 고맙고, 한편으론 미안하다.

우리 병원에선 지난해 말 현재 2만9867건의 심장 수술을 했다. 아산병원·삼성병원에 이은 셋째 규모다. 더 의미가 큰 건 무료 수술이다. 각각 83년과 89년 시작한 국내, 그리고 해외 어린이 무료 수술이 1만996건과 1263건에 이른다. 하루에 한 번꼴로 새 생명을 불어 넣어준 셈이다. 선천성 심장병은 일곱 살 이전에 수술만 해주면 평생을 정상인처럼 살 수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치료가 불가능하고, 스무 살 전후에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기도 하다.

지난 25일 일요일, 기자가 우리 부자의 이야기를 취재하러 왔다. 서울도 아닌 부천에서, 그것도 개인병원에서 1만 건이 넘는 무료 수술을 해온 배경부터 물었다. 내 대답은 명료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보험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누구든지 내 처지가 되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돈만 있으면 생명을 살릴 수 있는데, 그걸 모르쇠로 넘어갈 수는 없을 터다. 주변에선 의료봉사라고 하는데, 사실 봉사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봉사라고 여기는 순간 우리들은 거만해진다.

세상은 자기 하는 대로 돌아오는 법이다. 혹시 내가 나중에 돈이 없거나, 힘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주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일했다. 나를 위한 일이니 매사 신났다. 하루에 서너 번 수술을 해도 힘든 줄 몰랐다. 우리 병원에 약이나 의료기기를 팔러 오는 이들에게도 종종 말한다. “내가 물건을 사줄 테니 당신도 수익금 일부를 수술비로 기부하라”고. 그렇게 맺은 인연이 상당하다.

#2. 보람과 고통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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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심장병 치료를 위해 낸시 여사와 함께 미 대통령전용기에 탄 한국 어린이들. [중앙포토]


지난 세월, 우리 사회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제 돈이 없어 심장 수술을 못 받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심장병은 4대 중증질환이기에 요즘에는 환자 부담금이 10%밖에 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돕는 재단·기금도 늘었다. 의료 기술이 발전해 선천성 심장병의 경우 100명 중 99명은 살릴 수 있게 됐다. 89년부터 중국·러시아·동남아 등 외국 어린이 환자에게 눈길을 돌린 것도 이런 변화 때문이다.

33년 전에는 사정이 달랐다. 의료진도, 수술 장비도, 돈도 달렸다. 한양대 흉부외과 교수라는 안정된 자리를 내놓고 병원을 차린 첫째 이유다. 마침 정부에서 의료취약지구에 병원을 세우면 건축비·장비구입비 등을 장기 저리로 빌려주었다. 77년 의료보험이 도입되며 병원 문턱이 낮아졌고, 75년부터 2년간 독일 뒤셀도르프대에서 선진 의학을 공부했기에 망설일 까닭이 없었다. 간호사 교육하랴, 병원 시스템 구축하랴, 환자 돌보랴, 머리 깎는 시간이 아까워 삭발을 한 적도 있다.

돌이켜보면 스트레스도 컸다. 환자가 사망하면 그 헛헛함을 달래려 하루에 담배를 세 갑까지 피우기도 했다. 심장질환에 가장 나쁜 담배를 말이다. 그런 게 쌓였는지 87년 겨울 뇌경색으로 쓰러지기도 했고, 나중에는 관상동맥이 막혀 스텐트(stent·금속 튜브) 시술을 받기도 했다. 재활에 성공했지만 자세히 보면 지금도 오른쪽 다리를 조금 저는 편이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97년 중국 옌볜(延邊) 중국동포 아이 20명을 동시에 데리고 왔을 때다. 서울로 오는 직항편이 없어 옌볜에서 선양(瀋陽)으로 밤 기차로 이동했는데, 역 주위에 아이들 부모·친척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얘들아, 꼭 살아 돌아와야 해”라며 울음바다를 이뤘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듯 사람들이 차창에 매달렸다. 나도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을 마친 아이들은 나중에 모두 부모 품으로 건강하게 돌아갔다.

2008년 위기가 닥쳤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와 6개월이나 협상하느라 많이 지쳤다. 한번 쓰러졌던 후유증으로 우울증도 왔다. 병원을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접을 것인가.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때 아들이 거들고 나섰다. 6개월 고민 끝에 “의사들이 선망하는 대학 교수가 꿈이었지만 아버지 뒤를 잇겠다”고 했다.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된 것도 ‘하늘이 준 복’이죠.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본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들도 내게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돈이 없어 수술을 못 받는 것은 슬픈 일”이란다.

#3. 함께하는 사람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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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세종병원에서 외국 아이로는 첫 수술을 받은 옌볜 중국동포 어린이 가족. [사진 세종병원]


다시 힘이 났다. 가장 고마운 이들은 아이들을 후원해준 이웃들이다. 한국심장재단·순복음교회·대한약사회·세이브더칠드런 등 여러 사회·종교단체가 수술비(1인당 평균 1500만원)의 절반을 대 왔다. 택시를 타면 껌을 파는 기사도 보았을 것, 사랑실은교통봉사대원이다. 그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296명이 다시 태어났다. 가수 수와진도 잊을 수 없다. ‘사랑 바이러스’만큼 강력하게 전염되는 것도 없다는 걸 배웠다. 함께하는 정(情)을 느꼈다.

아직도 손이 미치지 못한 곳이 있다면 북한 어린이다. 선천성 심장병은 일반적으로 신생아 1000명 중에서 8명이 갖고 태어난다. 북한에 우리의 의술을 전하는 통로가 생겼으면 좋겠다. 내가 다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진행 중인 평양심장병원 건립이 완성되기를 소망한다. 의술에는 이념도 국경도 없다.

요즘 심각한 문제는 선천성 심장병이 아니다. 서구적 식습관, 운동 부족으로 심근경색·협심증 등 후천성 질환이 해마다 늘고 있다. 여느 질병처럼 심장병도 예방이 최우선이다. ‘소식다동(小食多動)’, 즉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 아들은 “심·뇌혈관의 최대 적은 담배죠. 청소년부터 흡연의 해악을 깨우쳐야 해요”라고 한다.

마지막 조언 하나. 갑작스레 심장에 이상을 느끼면 바로 119부터 불러야 한다. 자가용·택시로 병원에 가면 늦을 수 있다. 응급차에는 웬만한 장비가 갖춰져 있다. 단 몇 분 차이로 생과 사가 갈리는 게 심장병이라는 걸 절대 잊지 마시길…. 게다가 요즘은 심장병이 잦은 겨울철이니….

글=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기사는 기자가 인터뷰한 내용을 박영관 회장의 구술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S BOX] 어린이 심장 100개 기증받아 연구 … 부검 설득하다 뺨 맞기도

소설 『동의보감』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명의(名醫)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부검하는 대목이다. 스승은 자신의 몸을 해부 교재로 내놓는 희생정신을 보였다. 박영관 회장의 심장병 연구에도 주변의 도움이 컸다. 먼저 떠난 자식의 몸을 부검용으로 내놓은 부모들의 용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의학의 기초는 병리해부학입니다. 선천성 심장병으로 사망한 아이들 부모에게 부검을 요청했어요.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제가 살리지 못한 아이들의 몸에 칼을 대겠다고 했으니까요.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셈도 되고요.”

박 회장은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아이들을 저세상으로 보낸 원인을 알려면, 제2·제3의 비슷한 불행을 막으려면 부검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저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며 정말 말을 어렵게 꺼냈다”고 기억했다. 장례비를 병원에서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심한 경우 뺨까지 맞은 적도 있었다.

진심이 통했을까. 그는 개원 초창기 6~7년간 100개 가까운 어린이 심장을 기증받았다. 그리고 치료에 실패한 원인을 연구했다. 성공 사례를 다루는 의학논문에선 배울 수 없는 산지식이었다. 그 성과를 모아 1992년 『선천성 심장병, 임상과 병리해부학의 상관관계』를 출간했다.

“그때 기증받은 샘플은 모두 서울대 병리학교실에 가 있어요. 지금도 전문의들이 그 표본을 놓고 공부합니다. 외국 의사들도 와서 연구를 하죠. 당시 힘든 결정을 내렸던 부모님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아들 박 원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부검을 하면 의사의 수술 과정이 낱낱이 밝혀집니다.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죠.”

박정호.권혁재 기자 jhlogos@joongang.co.kr

▶박정호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PA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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