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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취재파일] 어느 특급 호텔 알바생들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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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얼마 전 대전에서 한 아르바이트 학생(알바생)이 자신이 일하던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봉변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삼겹살 집이었는데요, 새벽 시간에 술 취한 손님들이 볶음밥을 바닥에 내팽겨치고 떨어진 밥을 학생에게 먹이려고 한 겁니다. 이런 상황이 가게 CCTV에 고스란히 촬영돼 인터넷과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이 알바생의 억울한 상황에 분노했습니다.

취재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 알바생들의 실태에 대해 취재해 보자고 결정했습니다. 사내 제보와 인터넷, 전화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제보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내의 한 특급호텔과 관련된 문제 제기가 잇따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호텔 직원들이 미성년자인 고등학생 알바생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너무 심하게 하고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며, 제대로 법도 지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블로거가 올린 이런 내용의 글에, '자신도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며 무려 2백 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고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그 호텔에서 알바를 했던 학생 여러 명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재작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문제의 호텔에서 하루 단위로 일하는 이른바 '단기 알바'를 했다고 합니다. 알바를 하려고 학생들이 호텔에 모일 때부터 억울한 일이 시작됐는데요, 인터넷 알바 사이트를 보고 50명을 모집한다고 해서 당일 호텔에 시작 시간 15분 전에 가보니, 이미 30명이 다 찼으니 딴 데 가보라는 식이었다는 겁니다. 학생들이 공고한 것과 달리 왜 30명만 쓰느냐, 멀리서 온 사람들은 교통비를 날린 것 아니냐 따졌지만 대답은 없었다는군요.

그렇게 눈치보며 시작한 알바는 호텔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공포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학생들은 떠올렸습니다. 알바 여고생들은 대부분 결혼식 연회장의 서빙 알바에 투입됐는데요, 저희와 인터뷰를 했던 여고생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여고생 A
"여성 손님 고객들이 모피 같은 거나 엄청 비싼 가방을 들고 다닌다고 그러면서 이런 음식 한 번 흘리고 그러면 너희는 진짜 큰일 난다고, 너희 아르바이트 해서 돈 버는 거는 물론이고 평생 진짜 돈 못 물어줄 수도 있다... 계속 씨x xx xx을 계속 하는 거예요."

남학생들에게는 더욱 심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남고생 B
"연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나이프 한 통이 사라졌다고 (직원이) 말씀을 하셨어요. 그랬더니 뭐 이 씨x xx야, 그럴 거면 왜 여기 왔냐, 그냥 나가서 꺼지든가 아니면 잘리려고 기다리는 거냐 하면서 욕을 하셨거든요. 뒤xxx 환장을 했나 하면서 xx놈아..."

이렇게 시작한 알바는 반나절 넘게 정말 단 한순간도 숨돌릴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여학생들이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었다고 하소연할 정도였으니까요.

여고생 C
"계속 욕하고 막 뭐라고 하고 이러니까 계속 그런 게 무서워서 말도 못하고 아예 쉬는 시간이 없었어요. 화장실도 한번도 안 갔다 왔어요. 그런 말 할 분위기가 아니라서 계속 왔다갔다 뛰어다니면서 일하고 그랬어요."

가장 심한 것은 이들을 사회의 '루저(패배자)'로 업신여기는 말을 계속했다는 것입니다.

여고생 A
"엄청 무시를 많이 해요. 너는 이런 데서 평생 일해도 결혼도 못할 거다..."

호텔 측은 이렇게 하루 종일 무슨 60-70년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분위기에서 일을 시키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것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미성년자 알바생을 고용하는 사업주는 근로계약서와 학부모 동의서를 받고, 보관하도록 돼 있습니다.

취재진은 이 두가지 서류를 제대로 받았는지 그리고 보관하고 있는지 따졌습니다. 호텔 측은 알바생의 경우 자신들이 계약한 외주업체가 관리하고 있는데, 외주업체에서 이 서류들을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실제 근로계약서와 부모 동의서를 확인시켜 달라고 하자, 호텔측은 바로 제시하지 못했고 몇 시간뒤 인사 담당자가 전화로 이렇게 밝혔왔습니다.

N호텔 인사담당자
"업체쪽에서 저희한테는 실질적으로 잘 받고 있다라고 저희한테 회신을 줘서 그렇게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동의서는 제가 보니까 인터넷으로 동의서를 받아서 사인이 안 들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확인해 보니 학부모 동의서를 받은 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기입만 하게 한 겁니다. 해당 호텔도 잘못을 인정하고 해당 업체와 거래를 끊겠다고 약속했지만, 서류상 문제가 아니라 이미 마음 속에 깊이 상처받은 학생들은 누가 위로해 줄까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와중에 학생들은 연신 눈물을 흘렸습니다. 호텔리어가 꿈이었다는 한 남고생은 이 호텔에서 알바생으로 일한 뒤 꿈을 접었다고 합니다.

남고생 B
"나이 먹고 돈 많으면 다 저런 사람이 되는 건가하고 그런 것도 느꼈고..."
(기자) "호텔리어의 길을 걷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욕먹으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인지 이거 굳이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접었어요..."

알바생들이 처해 있는 열악함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이 제대로 사회를 접하기도 전에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것은 결국 우리의 미래를 다치게 하는 일이 아닐까요. 저 역시 한명의 기성세대로서, 학생들을 지켜주지 못한 점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립니다.

(관련 내용은 27일 밤 8시 55분에 방영되는 SBS 시사보도프로그램 '뉴스토리'를 통해 더욱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 갑질 용서한 '을의 품격'…'갑질남녀' 화제

▶ 일찍 퇴근하라더니…'알바생' 울리는 '꺾기'



[이강 기자 leekang@sbs.co.kr]

[SBS기자들의 생생한 취재현장 뒷이야기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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