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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헌재 해산결정 근거된 ‘진보적 민주주의’ “당 저변 넓히고 사회주의 논란 해소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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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2011년 강령개정위원장 밝혀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의 근거로 든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의 이적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헌재는 통합진보당 강령이 표방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 정권이 주장하는 ‘인민 민주주의’와 동일한 이념임을 논증하기 위해 <강령해설집> 등 당 공식자료와 함께 이른바 ‘당내 종북세력’의 관련 발언과 저술을 광범위하게 인용했다. 헌재도 진보적 민주주의 개념이 추상적이고 용례 또한 광범위해 그 자체로 북한 관련성을 논증하기엔 무리가 따른다고 본 셈이다.

실제 ‘진보적 민주주의’는 1915년 미국 정치사상가 허버트 크롤리에 의해 처음 공식화된 개념으로, 고전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대중 참여를 확대하고 사회경제적 평등을 강화하자는 게 핵심이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서구 민주주의론의 한 축을 형성했고, 한국의 해방공간에서는 박헌영·김일성 등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안재홍·조소앙 등 중간파 정치인들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헌재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1980년대 운동권 내 자주파(NL)가 추구했던 ‘민족해방혁명’(NLR)론의 핵심 노선이자, 북한이 주장하는 ‘인민 민주주의’의 위장된 표현으로 간주했다. 당시 자주파는 제국주의 수탈로 인해 자본주의가 지체된 한국 사회의 발전 단계(‘식민지 반자본주의’)를 고려할 때 ‘사회주의 이행’에 앞서 ‘민족해방 혁명’이 선결돼야 하며, 이를 위해 노동자·농민·자유주의자 등 광범위한 세력과 힘을 합쳐야 한다고 봤다. 헌재는 이런 자주파 연합전술의 이념화된 표현이 ‘진보적 민주주의’라고 규정한 것이다.

헌재는 이런 주장의 근거로 민주노동당 초기 강령에 평등파(PD)의 주도로 들어간 ‘사회주의 원칙과 이상을 계승한다’는 조항이, 이후 당을 장악한 자주파에 의해 2011년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내용으로 바뀐 사실을 꼽았다. 이른바 ‘아르오’(RO) 참석자였던 홍아무개씨가 지난해 5월 당 학습모임에서 “수령님께서 (북한 체제를) 건설할 때 ‘우리 사회는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여야 한다’는 노작이 하나 있다”고 발언한 사실 역시 헌재의 주요 논거로 활용됐다.

하지만 당원 수가 10만명이 넘는 정당에서 일부 구성원 발언 등을 근거로 강령 자체를 이적시하는 게 온당한지는 논란거리다. 2011년 강령 개정을 주도한 최규엽 당시 강령개정위원장은 “헌재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측”이라며 “강령의 ‘사회주의’를 ‘진보적 민주주의’로 대체한 것은 기존의 ‘사회주의 계승’ 조항 때문에 빚어지는 불필요한 논란을 해소하고, 당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조처였다”고 말했다. 최 전 위원장은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 이후 탈당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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