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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고액권·미술품·귀금속 인기 급상승…개인금고 판매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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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이지헌 홍국기 기자 = 지난 6월 검찰 수사를 받은 한 국회의원의 아들 집에서 6억원이 넘는 현금뭉치가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액수도 고액이었지만, 그가 보유한 현금에는 일본 엔화와 미국 달러화까지 포함돼 있었다.

돈의 출처와 용처를 놓고 세간이 떠들썩했다. 자산가 입장에서는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보다 현금을 직접 보관하는 게 당국의 추적을 피할 수 있어 안전하고, 각종 과세를 회피할 수 있어 차라리 유리하다는 말이 나왔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저금리 추세,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 등의 영향으로 시작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최근 유가 폭락과 러시아 경제위기라는 대외적인 요인까지 겹치자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현찰·금·은·미술품 등 비과세 현물 자산 시장은 급격히 커지고 있다.

◇은행서 자취 감추는 고액예금…가계 여윳돈 30조원 육박

과거 골드바 투자는 부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면서 시가 5천만원 상당인 1㎏ 골드바 판매가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부터는 중산층도 안전자산인 금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소액 판매가 급증했다. 현재는 100g, 37.5g, 10g 등 작은 단위의 골드바 판매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업가 이모(55)씨는 골드바를 판매대행하는 한 시중은행에서 지난달 100g짜리 골드바 1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저금리가 고착화하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데다 차명거래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금융실명제법이 시행되면서 은행 고액예금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금 가격이 4년 반 만에 최저치로 급락한 점도 금 투자의 이유중 하나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000030]이 골드바 판매대행을 모든 영업점으로 확대했다. 골드바 판매 대행을 하지 않았던 하나은행도 지난달 말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의 세무사는 "투자를 불안해하는 고객에게는 아예 돈을 찾아서 현금이나 금 등 실물로 보유하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이에 개인 금고시장도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한 금고 제작사 관계자는 "하반기 들어 개인 금고 판매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자산이 골드바뿐 아니라 고액현금, 비과세 장기보험 상품, 미술품, 귀금속 등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특히, 자산가들에게는 5만원권 등 고액권으로 현금화하는 게 인기다.

한국은행의 5만원권 발행잔액은 지난달 기준으로 50조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환수율은 27.3%로, 작년(48.6%)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환수율이 60%대를 기록했던 2012년에 비해서는 3분에 1 수준에 불과한 수치다.

아울러 불안해지기만 한 노후에 가계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소비 위축이 가계 잉여자금을 늘리면서 올해 2분기 가계 여윳돈이 30조원에 이르렀다.

김봉수 하나은행 PB(개인자산관리)센터 영업부장은 "최근 현물을 보유하려는 자산가들이 늘고, 투자 여건도 좋지 못해 고객들의 자산운용 상담을 보수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업도 돈 안 쓰기는 마찬가지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는 기업소득 환류 세제 도입이 임박했지만, 주요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증가세다.

정부는 기업소득환류세제를 통해 투자나 임금, 배당 등에 쓰지 않고 쌓아둔 이익잉여금에 과세할 방침을 밝힌 상태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기업의 이익잉여금은 지난해 말보다 4% 넘게 늘고, 유보율이 2천% 이상인 회사도 5곳 증가했다. 지난 3분기까지도 이런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기업들이 정부의 압박에도 불확실한 대내외 경제상황에 따라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 관계자들은 "국내에서 저금리 환경이 굳어지면서 수익을 낼 만한 자산 운용처를 찾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최근 유가 폭락에 따른 러시아 및 신흥국 경제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해외 투자마저 마뜩찮은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의 법인영업부 관계자는 "사내유보금을 쌓아 놓을 수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면서 "그나마 자본 규모가 크고 여력이 되는 대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redfla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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