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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베네수엘라 ‘쿠바 충격’에 반미 노선 수정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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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에 곳간 비어가고 정신적 지주 피델에게 뒤통수 맞은 격

남미 정치 지형도 큰 변화 가능성…미국은 ‘길들이기’ 나설 듯

‘쿠바 충격’이 라틴아메리카를 강타하자 세계의 눈길은 베네수엘라로 향하고 있다. 저유가로 국고가 비어가던 차에 정치적 타격까지 입은 베네수엘라는 더욱 고립될 것이며, 결국 반미 수사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주창했던 ‘21세기 사회주의’의 경제적 바탕은 베네수엘라의 페트로달러(석유 수익)였지만 정신적 지주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였다. 미-쿠바 국교 정상화 합의 이후 피델의 발언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결정 뒤에 피델의 동의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피델은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 기고를 통해 중요 사안에 대한 견해를 밝혀왔는데, 가장 최근에 쓴 10월14일자 기고는 쿠바와의 관계개선을 촉구한 미국 뉴욕타임스 사설에 화답하는 글이었다. 피델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미국 잡지 레플리카의 막스 레스닉은 18일 “(이번 합의는) 피델의 축복 속에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베네수엘라가 쿠바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뜻이다. 차베스의 후계자인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꿋꿋이 반미 노선을 고집해왔다. 베네수엘라 외교전문가 밀로스 알칼라이는 “모든 정황으로 봐서 (라울) 카스트로는 마두로와 전혀 논의하지 않고 워싱턴과 비밀협상을 한 것”이라고 AFP에 말했다. 워싱턴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의장의 교차방문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17일 오바마가 쿠바를 방문할 가능성을 내비친 데 이어, 18일에는 “카스트로의 미국 방문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라카스의 정치분석가 헤수스 세기아스는 “마두로는 최대 동맹이던 쿠바가 ‘제국’의 동맹이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고 마이애미헤럴드에 말했다.

AFP는 “베네수엘라는 정치지형의 변화 속에 더욱 고립될 것”이라며 마두로도 반미 수사를 누그러뜨릴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남미 정치의 지각변동도 점쳐진다. 차베스가 만든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은 이미 약화된 상태다.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좌파정권은 반미노선과 선을 긋고 사회경제적 개혁에 치중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냉전의 마지막 장이 닫힌 것이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나라들도 협력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미-쿠바 합의를 높이 평가했다. AP는 미국이 중남미에서 실추됐던 위상을 회복할 것이며,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는 최대 패자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베네수엘라의 행로를 정할 결정적인 요소는 기름값이다. 베네수엘라는 쿠바에 매일 10만배럴씩 석유를 주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해왔는데, 베네수엘라의 재정적자가 커지면서 쿠바마저 그 여파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라울이 미국과 손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참에 베네수엘라도 길들이겠다는 태세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 초 마두로 정권이 반정부 시위를 유혈진압한 것을 이유로, 18일 마두로 정권 인사들의 미국 입국을 막고 자산을 동결하는 경제제재 법안에 서명했다.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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