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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1천만이 이용하는 텔레뱅킹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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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텔레뱅킹 이체 유사 사고 잇따라…경찰·금융당국 신종수법에 속수무책]

한 해 1000만명이 이용하는 ‘텔레뱅킹’이 심상치 않다. 최근 통장에서 거액의 돈이 주인도 모르게 빠져나간 사건들의 중심에 텔레뱅킹이 있기 때문이다. 농협 사건에 이어 피해를 당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사전에 보이스피싱 등 개인정보 유출 없이도 이체가 이뤄지는 ‘신종수법’이어서 텔레뱅킹 이용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경찰과 금융당국은 어떤 방식으로 텔레뱅킹 이체 사기가 이뤄졌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27일 금융권과 피해자 등에 따르면 최근 농협 계좌에서 거액의 돈이 텔레뱅킹 수법으로 빠져나간 데 이어 우리은행에서도 유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텔레뱅킹 이체 사기는 지난해말과 올해초에도 또다른 시중은행에서도 발생했다. 제보되거나 신고되지 않은 사례를 합치면 이미 수십여건의 사기가 발생한 것으로 금융당국은 보고 있다.

◇ “개인정보 털리거나 텔레뱅킹 쓴 적도 없는데”

범행은 하루 또는 며칠 동안 수차례에 걸쳐 텔레뱅킹 방식으로 수십 개의 대포통장에 이체되는 수법으로 이뤄졌다. 매일 계좌현황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사기 발생 이후에야 알게 되는 게 보통이다.

텔레뱅킹 이체 사기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개인정보가 유출된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심지어 텔레뱅킹에 가입돼 있었지만 상당 기간 사용조차 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있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2년 텔레뱅킹 금융사기를 언급하며 "텔레뱅킹은 인터넷뱅킹과 달리 타인이 이용할 때 공인인증서 재발급 등의 절차가 필요하지 않아 텔레뱅킹 이용정보 유출에 따른 사기피해에 취약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텔레뱅킹이 사기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말이다.

다만 당시 금감원도 보이스피싱 등을 통해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파악한 뒤 이체수단으로서 텔레뱅킹을 활용한 점에만 주목했다. 직접적인 정보유출 없이 피해를 본 사례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경찰·금감원

문제는 범행의 정확한 수법을 경찰이나 금감원 모두 파악하지 못하는 데 있다. 첨단을 걷는 범죄를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원인을 모르니 예방법을 내놓을 수도 없다. 일각에서는 전화기의 키패드를 도감청해 비밀번호 등을 알아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범인을 잡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범죄가 해외에서 이뤄지다 보니 대포통장 명의를 대여해준 내국인 몇몇만 검거하고 총책의 실체와 범행 수법을 파악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사건은 산더미인데 수사인력에는 한계가 있고 워낙 첨단 기법이 판을 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은행들이 지정된 번호에서만 텔레뱅킹을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것도 무용지물이다. 농협 사고의 경우처럼 범인들이 피해자의 전화번호까지 깜쪽같이 알아내기 때문.

이처럼 예방이 어려운 만큼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포통장으로 추정되는 계좌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수사기관과 금융당국·금융기관 간 공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상거래가 발생했다는 수사기관의 협조요청이 오면 금융기관이 해당 계좌를 빨리 지급정지 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다만 은행들도 고객의 계좌를 함부로 다루기 어렵기 때문에 금감원 등에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텔레뱅킹 해지가 최선책”

금융당국은 지난해 보안사고 피해 보상 제도를 개선하면서 이용자의 PC 등이 해킹당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선 1차적으로 금융기관이 책임지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은 이용자의 '고의나 중과실'을 밝히지 못하면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이 제도 개선 이후 법원의 판례도 그동안 금융기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추세에서 금융기관의 책임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중과실'에 대한 기준이 애매모호해 은행과 고객간 분쟁의 소지가 많다. 또 피해금액을 100% 보상하는 경우도 드물다. 특히 텔레뱅킹 특성상 인터넷 뱅킹 이용이 어려운 노인층이 많은 편이어서 피해를 입증하는 데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지금으로서는 가입돼 있는 텔레뱅킹를 해지하는 게 최선이라는 말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텔레뱅킹은 계좌 개설시 관행적으로 가입하게 마련"이라며 "일회용비밀번호생성기(OTP)를 활용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텔레뱅킹 등록자는 4088만명이며 이 가운데 실제 이용하는 고객은 1184만명에 이른다.

정현수 박종진 신희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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