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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외환보유액 적은 신흥국, 글로벌 투기자본 사냥감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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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에 끼칠 영향은

과거 미 금리 인상 과정

신흥국에 외환위기 불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8~29일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양적완화 종료’다. 이제 Fed가 시장에 돈을 추가로 주입하는 일은 없게 됐다. 다음 단계는 금리 정상화다. 6년째 사실상 제로 상태(0~0.25%)에 머물고 있는 기준 금리를 언제 인상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Fed는 성명서에서 양적완화 종료 후 ‘상당 기간’ 제로금리 유지를 거듭 천명했다. Fed의 과거 행적을 보면 ‘상당 기간’이란 단어를 삭제한 뒤 대략 반 년 정도 후에 액션을 취했다. 이렇게 보면 Fed의 첫 금리 인상은 내년 중반 이후가 유력해진다. 그런데 시장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성명서에 ‘매파’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고용상황에 대한 평가가 9월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물론 실업률이 5.9%까지 떨어진 측면도 있다. 실업률 저하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과 낮은 고용률 등 고용시장 취약성은 여전하지만 이달엔 적시되지 않았다.

대표적 매파인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방은행 총재와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방은행 총재의 행동도 주목 대상이다. 두 사람은 지난달 성명서에 ‘제로금리의 상당 기간 유지’를 명시하는 것에 격렬히 저항하며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이번엔 똑같은 표현이 명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찬성 편에 섰다. 조각을 맞춰 보면 비둘기파와 매파가 타협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매파는 금리인상의 전제조건인 양적완화 종료를 얻었고, 비둘기파는 ‘상당 기간’을 사수한 셈이다. 금리 인상을 앞당기려는 매파와 가급적 늦추려는 비둘기파의 대결은 앞으로도 불꽃을 튀길 것이란 얘기다.

Fed는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와 ‘수퍼 달러(달러 강세)’라는 복병을 만났다. 유럽·일본·중국 등 미국을 제외한 지역의 경기가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성장 둔화는 Fed가 금리 인상을 늦출 명분이 된다. Fed 2인자인 스탠리 피셔 부의장은 이달 한 강연에서 “외국의 성장이 기대보다 훨씬 약하고 미국 경제에 영향을 준다면 Fed가 예상보다 더 천천히 금리를 올리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수퍼 달러도 골치다. 달러화 강세는 수입물가를 낮춰 인플레를 끌어내리고, Fed의 2% 인플레 목표 달성을 더 어렵게 만든다. 메릴린치증권 분석에 따르면 달러화 가치가 연간 10% 상승하면 미국 물가상승률은 0.25%포인트 떨어진다. 게다가 금리인상은 가뜩이나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달러화 가치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ed가 마냥 금리 인상을 늦출 것 같지는 않다. 양적완화 종료는 미국이 금리 인상 궤도에 다시 올라섰음을 의미한다. 신흥국엔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저금리에 머물던 미국이 금리를 정상화하기 시작하면 언제나 신흥시장에 탈이 났다. 달러가 이탈해 미국으로 환류하면서 외환위기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달러 엑소더스(대탈출)에 맞서 싸울 ‘실탄’(외환보유액)이 부족하거나 ‘체력’(경상수지 흑자)이 허약한 신흥국이 주로 하이에나 같은 글로벌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됐다. 이번엔 누가 희생양이 될 것인가. 투기자본의 사냥은 벌써 시작됐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서울=조민근 기자

이상렬.조민근 기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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