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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우린 박멸된 적 없지, 쥐구멍에 그냥 산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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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토요판] 생명 / 한강변 아파트 쥐 출몰사건

지난 21일 서울 잠실의 한 한강변 아파트. 이 아파트는 최근 ‘쥐떼’가 극성이라는 뉴스로 화제에 올랐다. 아파트 분수에서 쥐가 헤엄을 친다, 현관을 나서던 주부가 쥐에 물려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한 매체가 10일 포문을 터뜨리자, 며칠 동안 관련 보도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기자들 다 왔다 갔어요.”

지난 21일 아파트를 뒤늦게 찾은 기자를 관리사무소 직원은 지각생처럼 바라봤다. 관리사무소장이 말했다.

“없어요, 그런 거. 저기 한강변에서 흘러들어오는 거 같다고 하는데, 모르겠어.”

“쥐에 다친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우리가 그 사람 말을 믿긴 믿어야겠지. 허, 참. 그런 일이 있긴 있었어요.”

사실 아파트의 이름도 알기가 쉽지 않은 터였다. 취재 중에 만난 이들은 아파트 이름을 ‘직접’ 거론하기 꺼렸다. 한 방역업체 직원은 신신당부하기까지 했다. “아시다시피 민감하잖아요, 기자님. 저는 한번도 아파트 이름 말한 적 없습니다.”

분수에서 쥐가 헤엄을 친다고?
주부가 물려 치료를 받았다고?
“쥐떼가 극성”, “쥐 본 적 없다”
사람들의 체감도는 엇갈리고
한강에서 건너온 거라는 추정만

쥐는 결코 박멸되지 않는다
잘 안 보일 뿐 당신과 살아왔다
동물에 투사되는 인간의 욕망
인간-길고양이-쥐 삼각관계가
숨어살던 쥐를 불러냈다


“생쥐 아닌 곰쥐라 혐오감 더 주는 듯”

111㎡(33평)에 10억원 안팎, 5000가구가 사는 고급 대단지 아파트였다. 고층 건물 아래는 콘크리트 주차장 대신 나무와 수풀이 이어진 공원과 산책로가 펼쳐져 있었다. 쥐는 풀밭에 굴을 파거나 하수관을 따라다닌다. 아파트는 친환경적인 공원형 단지였지만, 역설적으로 쥐가 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비가 와서였을까. 21일 낮, 두 시간 머무는 동안 쥐는 발견할 수 없었다. 주민들의 말도 엇갈렸다. 한 주민은 “쥐를 여러 차례 봤다”고 했고, 다른 주민은 “말은 들었는데,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면 한 지상파 텔레비전의 아침정보 프로그램은 화단과 놀이터 주변을 지나가는 쥐 몇 마리를 포착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상돈 이화여대 교수(환경공학)는 22일 전화통화에서 이 쥐가 ‘곰쥐’라면서 “생쥐에 비해 몸집이 크고 밝은색을 띠어서 혐오감을 더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쥐는 도시에서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도 법률은 국가기관한테 퇴치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전염병예방법 제40조는 “시장·군수·구청장은 … 쥐·벌레 등의 구제조치를 실시하여야 한다”면서, 여러 해충·해수 중 쥐를 꼭 집어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개체수 조사 작업 등 관련 모니터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쥐와 관련된 학술논문을 학술검색엔진 ‘디비피아’로 검색해봤다. ‘비상탈출시 군중 유동 시뮬레이션을 위한 설치류 전기 자극 실험’, ‘특집: 실험동물 설치류의 특성, 질병 및 연구’, ‘새롭게 다가오는 애완동물로서의 설치류의 약물요법’. 지금 현재 우리의 쥐에 대한 관심사는 이런 것들이었다. 동물실험, 애완동물 그리고 바이러스.

사실 쥐는 전세계 역사에서 박멸된 적이 없다. 한국에서도 국민들에게 쥐약을 무료로 나눠주고 1970년 ‘정부 기록상’ 6500만마리를 퇴치했던 쥐잡기운동에서도 살아난 쥐다. 쥐는 박멸됐다기보다는 줄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가장 큰 원인은 서식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도시가 콘크리트 벌판으로 바뀌었고, 위생 조건이 향상됐다. 이제 각 구청은 쥐약, 쥐덫 등 직접적인 퇴치 방식 대신 쥐의 분변에서 나오는 세균을 소독하는 살균·살충제를 뿌린다. 3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는 법에 따라 분기별로 방제작업을 실시한다. 이 아파트 관할인 송파구청 보건소도 이번 사건으로 부산을 떨었다. 정병환 보건소 감염병예방팀장이 20일 말했다.

“완전 박멸된 게 아니에요, 수가 적을 뿐이지. 아직도 상당수 아파트 화단 주변에 쥐가 많이 살아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면 누구나 봐야 하는데 그건 아니고. 사람에 따라 예민하게 보시는 분도 있으니까….”

송파구청에 올해 들어온 해충·해수 민원은 총 400여건. 이 가운데 쥐와 관련된 내용은 총 여섯 건이었다. 재개발이 추진 중인 아파트 단지와 재래시장 주변에서 다섯 건이 신고됐고, 나머지 한 건은 ‘어떻게 쥐를 잡을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존재는 담론을 통해서 드러난다. ‘쥐’는 예전부터 거기 있었지만, 입과 입을 거치면서 ‘쥐떼’가 된다. 최근 들어 쥐의 존재가 알려지는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천적 ‘길고양이’를 통해서다. 도시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들은 쥐약 놓기를 반대한다. 쥐약을 먹은 쥐를 먹고 길고양이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캣맘들은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들이 ‘쥐약 살포’를 선동한다면서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실제로 양쪽의 갈등 과정에서 쥐약 살포가 이뤄진 적이 적잖았다.

주민 간 갈등이 과거 사례처럼 표면화되진 않았지만, 이번 사건이 부상한 것도 길고양이 때문이었다. 지난 9월의 어느 날, 이 아파트는 쥐약을 놓을 예정이니 반려동물 출입에 유의해 달라는 방송을 했다. 방송을 듣는 순간, 아파트의 캣맘인 주민 김아무개씨의 뇌리에는 지난해 자신이 밥을 주던 길고양이들이 갑자기 사라진 사실이 스쳤다. 그가 21일 말했다. “깜짝 놀랐어요. 에스엔에스(SNS)에 글을 올렸는데, 이것이 공유가 되면서, 여러 분들이 송파구청과 관리사무소에 항의전화를 했더라고요.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아파트가 쥐약을 살포한다는 제보가 들어오면, 동물보호단체는 보통 ‘쥐약 살포는 동물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공문을 발송한다. 괜한 엄포는 아니다. 길고양이는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하여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동물보호법 시행규칙)로 법에 규정됐으므로, 이들을 고의로 해치는 건 불법이다. 일부 주민들은 동물보호단체에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이 단체의 활동가가 말했다. “왜 외부에서 개입을 하느냐고 항의전화를 네댓 건 받았어요. ‘우리는 수준 있는 아파트다’, ‘깨끗하고 좋은 아파트에서 살려고 하는데 왜 방해를 하느냐’고….”

식량 도적에서 집값 떨어뜨리는 방해꾼으로

고양이와 쥐가 천적 관계이지만, 고양이와 쥐약 또한 독한 천적 관계다. 쥐약을 먹은 쥐는 천적 고양이에게 죽음으로 복수를 한다. 길고양이는 1970년대 대대적인 쥐약 살포로 쥐와 함께 위험에 처했다가, 쥐가 줄어들어 쥐약 또한 사라지자, 다시 개체수를 불렸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더불어 길고양이가 먹고도 남을 음식물쓰레기가 도시에서 생산됐다. 음식물쓰레기와 ‘쥐약→쥐→길고양이’로 이어지는 도시 생태계의 독특한 먹이사슬이 쥐와 고양이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지금도 이 멸종의 사슬은 유효한 걸까? 제3세대 살서제를 생산하는 동부팜한농의 이준형 동물약품사업부 대리가 22일 설명했다.

“제3세대 쥐약은 두 가지를 목표로 해요. 첫째는 높은 유인성, 둘째는 높은 안전성이죠. 쥐를 잘 유도해야 하고, 반려동물이나 사람이 먹어도 안전해야 합니다.”

예민한 쥐는 쥐약의 맛이 이상하거나 주변 쥐가 문제를 일으키면 다시 먹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 업체가 생산하는 ‘쥐잡아’(옛 이름 ‘쥐싹’)는 살서제 성분인 ‘플로쿠마펜’ 미세량(0.005g)에 쥐가 좋아하는 곡물을 입혀 청포도만한 크기(3g)로 만든다. 플로쿠마펜은 쥐의 전신에 퍼지며 혈액 응고를 방해한다. 쥐는 짧게는 사흘, 길게는 열흘 뒤에 내장출혈로 죽는다. 이 대리는 “이론적으로 소형견보다 작은 덩치의 5㎏의 반려동물이 2~6알 먹으면 50%, 4~13알 먹으면 100%의 치사 가능성이 있다”며 “케이지, 쥐구멍 등 개나 고양이가 쉽게 다량의 쥐약을 빼낼 수 없는 곳에 둘 경우 치사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물론 100% 안전한 건 아니다. 다만 이 대리는 “아직까지 반려동물이 죽었다는 접수는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강변 아파트 쥐 출몰 사건은 제3세대 살서제를 충분히 안전한 곳에 설치하는 것으로 갈등이 봉합됐다. 김아무개씨가 말했다. “쥐구멍에 쥐약을 넣고 (반려동물이 못 먹도록) 흙을 덮어주기로 했어요. 쥐로 인해 피해 보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까지 못 놓겠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박멸됐다고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도 쥐는 혐오의 동물이다. 사람에 따라 쥐가 되기도 하고 쥐떼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식량의 도적이자 전염병의 매개자로 여겨졌다면, 여기에 덧붙여 쥐는 지금 집값을 떨어뜨리는 방해꾼으로 인식되고 있다. 앞으로도 쥐에 대한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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