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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과거 금융위기는 `엔低`로 시작됐다…방심하단 `제3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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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저發 경제 후폭풍 ② / 1997년·2008년 '악몽' 복기해보니 ◆

매일경제

일본의 양적 완화 기조에 따른 엔화 약세로 한국 수출 업종이 타격을 받고 있다. 사진은 평택항의 자동차 수출 선적 부두에서 안내원이 신호를 보내는 모습. [매경DB]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는 엔화가치는 과거 국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왔다.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가 상승할 때마다 그 끝에는 어김없이 금융위기가 있었다.

과거 두 차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가 오르면 수출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고 경상수지 또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우리나라 제품의 상대적인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대일본 수출이나 세계시장에서 한국 수출을 축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올 들어 가속화되는 엔화 약세 움직임은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과거 사례에서 교훈을 찾지 못할 경우 우리 경제가 또 한 차례 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염려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엔화 약세가 두드러졌던 첫 번째 시기는 1995년 4월에서 1997년 7월의 기간이다. 월평균 환율을 기준으로 1995년 4월 100엔당 원화값은 918.5원이었지만 1997년 2월에는 704.65원을 기록했다. 23%가량 절상된 셈이다. 당시 일본은 엔저를 유도하는 '역플라자합의'를 맺었다. 1995년 4월 G7 경제장관ㆍ중앙은행 총재회의의 합의에 따라 엔저가 공식화됐던 것이다.

그에 따라 이후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큰 폭으로 축소됐다. 1994년 44억6000만달러 적자였던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1996년에 238억3000만달러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폭이 확대되면서 외환보유액이 고갈됐고,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후 한국 경제는 대혼란에 빠졌다.

엔화 약세가 찾아온 두 번째 시기는 2004년 1월부터 2007년 7월까지의 기간이다. 100엔당 원화값은 2004년 1월 평균 1112.68원에서 2007년 7월에는 30% 넘게 절상된 755.57원이 됐다.

2004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일본이 엔화 약세를 유도하면서 원화는 엔화에 대해 큰 폭으로 절상됐다. 경상수지 축소는 또다시 반복됐다. 2004년 297억4000만달러였던 경상수지 흑자는 2008년에는 31억900만달러로 축소됐다. 불과 4년 만에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든 상황에서 2008년 9월 리먼사태까지 터지면서 우리나라는 외화 유동성위기를 겪기도 했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최근의 엔저는 2012년 6월부터 시작됐는데, 이후 현재까지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50% 올랐다"며 "앞으로 미국이 금리 정상화에 나서게 되면 원화가치의 절상폭은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업들 또한 과거 엔저에 대한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대일본 수출 비중이 높은 업종이나 한ㆍ일 간 경합관계가 강한 업종에서는 엔화 대비 원화 강세의 영향이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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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전지 부품을 생산하는 A중소기업 재무담당자는 "국내 대기업에 이차전지 부품을 납품해왔는데, 과거에도 일본 제품의 가격이 내려가면서 타격을 입었던 경험이 있다"며 "지금도 일본산 제품 가격이 원가 이하까지 떨어지면서 공급처를 잇따라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거래제품을 다양화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해왔다"고 덧붙였다.

엔화약세는 국내 기업들의 가치를 낮추면서 국내 주식시장을 위축하는 형태로 작용하기도 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부터 우리나라 주가지수와 엔화 환율의 상관관계는 -0.7로 엔화가 약세일 때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엔 캐리 트레이드' 등이 국내 자산시장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캐리 트레이드는 보유 중이거나 차입한 저금리 통화를 매도해 고금리 통화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거래를 뜻한다. 아직까지 엔 캐리 트레이드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과거 엔화약세가 지속될 때마다 엔 캐리 트레이드로 국내 부동산 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시기에는 국내 금융시장도 변동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엔화가치가 다시 상승했을 때 엔화대출로 치명타를 입은 기업도 적지 않았다. 당시 원ㆍ엔 환율이 800원대에서 1000원까지 변동하면서 엔화대출을 받은 기업들이 상당한 손해를 입었다. 중소기업 B업체 대표는 "당시 국내 대출금리가 6%였지만 일본에서는 3%대로 빌릴 수 있어 엔화대출을 이용했다"며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ㆍ엔 환율이 큰 폭으로 변동하면서 큰 손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엔화대출로 피해를 입은 과거 경험 때문인지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엔화대출을 갚아야겠다는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노영우 기자 / 최승진 기자 /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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