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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취재파일] 혈흔과 용변, 침, 그들의 당혹스러운 흔적,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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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사건 해결하는 DNA…인권 침해 논란 있었지만 '합헌' 결정

SBS

무심결에 침을 뱉었다가, 손을 다쳐 핏자국을 남겼다가, 너무 급해 큰일을 봤다가 덜미를 잡힌 황당한 절도 피의자들이 있습니다. 설마, 이런 것으로 잡히겠어,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서울 성북구와 종로구 일대의 한옥집을 골라 빈집 털이를 한 50대 남성 고 모 씨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18년간 철창 신세를 면치 못했던 그는 지난 3월 출소 후, 다시 빈집털이를 시작합니다. 경력(?)이 있었던 만큼 이번에는 검거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을 겁니다. 현장 영상이 남지 않도록 CCTV가 없는 곳만 골라 범행을 저질렀으니까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유리창이 깨지면서 손을 다쳤는데 그만, 피가 흘러 자국이 남은 겁니다. 경찰이 감식을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던 피의자, 고민 끝에 꼼수를 부립니다. 방안 전체에 간장을 뿌립니다. 피 흔적인지, 간장 흔적인지 뒤섞여 경찰도 알아보기 힘들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현장을 벗어나서는, 경찰에 실마리를 줘서는 안 된다 싶어서인지, 아파도 꾹 참고 병원을 찾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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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서울 종로경찰서>

하지만, 온 방안에 진동하는 짠 냄새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결국 혈흔을 찾아냈습니다. 국과수와 검찰에 자료를 보냈더니 일치하는 DNA가 나타납니다. 수형 기간동안 채취된 고 씨의 DNA가 보관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달 초에는 절도 현장에서 '큰 일'을 본 39살 박 모 씨가 검거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6월, 박 씨는 술집 뒷문을 뜯고 들어가, 7만 원을 슬쩍 챙겼습니다. 그런데 바로 달아나지 못했습니다. '신호'가 왔기 때문입니다. 역시 현장에 흔적을 남기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경찰이 이 흔적을 미심쩍게 여겨 국과수로 보냈고, DNA 분석 결과 박 씨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CCTV에 침을 뱉는 모습을 포착하고, 그 침을 채취해 범인을 찾았다는 경찰의 무용담도 어렵지 않게 들립니다. 참 신통방통한 DNA입니다. 경찰, 검찰은 지금도 DNA를 통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사건의 실마리를 용케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시행 5년차를 맞은 DNA법(디엔에이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있습니다. 초등학생을 무참히 성폭행한 조두순, 부녀자 8명을 납치 살해한 강호순 사건 등 강력 범죄가 잇따르자 제정된건데, 2010년 7월부터 시행됐습니다. DNA 채취는 11개 범죄 형이 확정되거나, 구속된 피의자에 대해 적용됩니다. 아동 청소년 대상 성폭력을 포함해 강간-추행, 강도, 방화, 약취-유인, 상습폭력, 조직폭력, 마약, 특수 절도 등입니다.

인권단체들은 DNA 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습니다. 채취 대상 범위가 광범위하고, 사망한 뒤에서야 정보를 삭제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DNA 정보를 악용해 증거를 조작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여기에, DNA법이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2009년 기아차 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업무방해 및 폭력 관련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니 DNA를 채취해야 한다는 것이다...(중략)...나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조건을 방어하기 위해 앞장서 싸워 온 노조 활동가이지 실험용 쥐나 흉악범이 아니다. 나는 연쇄살인범이나 성폭력 사범도 아니니 DNA 채취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영장을 청구하겠다고 고압적인 자세로 협박했다."
(발췌 : "신종 노조탄압법으로 둔갑한 DNA법" / 노동자연대)

쌍용자동차 노조원와 용산참사 철거민에게도 DNA 채취 대상자가 되면서, 인권 침해 논란은 더 거세졌습니다. 이들은 결국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 경우까지 무차별적으로 DNA를 채취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헌법 소원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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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진보넷>

지난달, 결과가 나왔는데, 헌재는 "합헌"이라고 봤습니다.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제한되는 신체의 자유 정도가 미약하단 겁니다.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형이 확정돼 수형된 사람에게 소급 적용하는 것도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공익 목적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DNA법,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인정받고 있고, 이제 합헌 결정까지 내려졌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도 DNA법에 따라 수사기관에서의 DNA 채취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 단체와 민변 등에선, 과도한 요구를 받는 사례자가 발생할 경우, 다시 헌재의 문을 두드리겠단 입장입니다.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김아영 기자 nin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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