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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뒤에 누가 있나" KB제재 막판까지 정권실세 눈치 본 금융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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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금융이 더 문제다 ② 카멜레온 금융당국 ◆

매일경제

금융당국이 법과 원칙에 따른 엄중함을 보이기보다는 청와대와 정권 실세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면서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렸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경. [매경DB]


"넘버원보다는 넘버투를 살리려는 것 아니겠냐." "결국 둘 다 날려야 하지 않겠느냐." 지난 8월 22일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임영록 KB금융지주 전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에 대한 경징계 결정이 나오기까지 금융계는 물론 금융당국 내에서 두 달여간 뜨겁게 달아올랐던 대화 내용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헷갈린다. 뒤에 누가 있는지가 진짜 중요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징계 내용보다는 정권 실세 눈치보기가 막판까지 치열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9월 초 갑자기 둘 다 중징계로 급선회하게 된 과정도 석연치 않다.

'정치금융'은 5년마다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극적인 반전을 보여왔다. 실세의 힘이 빠지면 금융당국의 하이에나식 반격은 곧바로 이어진다. 이명박정부 때 '4대 천왕'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금융정책에 대한 비판까지 서슴지 않으며 금융당국 수장을 곤란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금융당국의 반격이 시작됐다. 정치권과 끈이 떨어져 '종이 호랑이'로 전략한 4대 천왕에 대한 압박이다. 강만수 KDB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어윤대 KB금융 회장까지 모두 다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전 회장은 추후 고문직까지 내려놓았다. 어 전 회장에 대해선 미국계 주주총회 안건 분석기관인 ISS에 내부 정보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징계를 하기도 했다.

새로운 회장 선임은 또 다른 정권실세와의 교감의 과정이기도 했다. 물론 잡음이 일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특정인을 보내려고 지난해 이장호 당시 BS지주 회장을 퇴진시키는 과정에서다. 최대주주 롯데제과를 비롯한 계열사와 특수관계인 지분만 14%에 육박하는 민간금융회사 수장을 임기와 무관하게 내치는 과정에서 부산지역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이장호 전 회장은 경남은행 인수라도 마무리하게 해달라고 의견을 냈지만 종합검사를 앞세운 금감원에 결국 손을 들었다. 하지만 반발이 거센 탓인지 특정인을 보내진 못해 잡음만 내고 우스운 꼴이 됐다.

정치금융이 관치금융을 압도하면서 부작용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관료들은 정치금융의 행동대원 양상으로 전락하면서 이제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평도 나온다"며 "관치는 관료의 소신이라도 있었지만 정치와 뒤섞이면서 철학은커녕 영혼 없는 정책 집행밖에 남지 않았다"고 평했다. 정치적 뒷배경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 뒤로 꼭꼭 숨기 때문에 절차나 법조항, 규정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우왕좌왕하게 되고, 금융시장에서 '영(令)'을 세운다는 것은 요원하다.

'소신'이 사라진 금융당국 관계자들에게 남는 것은 '눈치'다. 법과 원칙에 따른 엄중함을 보이기보단 청와대와 정치권 동향 살피기가 급선무다. 그 과정에서 여론몰이는 필수다.

최근에는 금감원의 '구두 제재'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언론을 통해 금융회사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부풀려 밝혀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이때 제기한 이슈들 일부는 최종 결과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사안들도 많다. 제재가 확정되기도 전에 금융회사는 신뢰도 추락은 물론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다.

이 때문에 금융권의 비판적인 목소리에도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의 한 임원은 "금융회사가 금융당국에 대해 언론 등에 비판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왜곡된 여론에 대한 대응"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융회사 반응은 다르다. 언론에 대해 금융당국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라도 하면 '제보자 색출'에 나서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검사와 관련해서 불만을 표출하는 것에 대해 금감원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당국에 비판적인 내용이 나가면 금융회사에 전화해 '누가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느냐'고 압박하는 건 다반사다"고 밝혔다.

KB 내분사태에 대한 금융당국 책임론도 거세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는 "KB사태가 터졌을 때 금융당국이 우왕좌왕하면서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여 혼란이 더 커졌다"며 "KB가 정상화되는 대로 금융당국이 제 역할을 했는지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준행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당국의 제재 결정 절차가 문제"라며 "세 번이나 결론을 번복하면서 제재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했고 이 과정이 KB금융의 경영에도 분명 악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송성훈 기자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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