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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책 두 권 값 1000조원을 지불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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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토요판] 르포 : 국회도서관 사서 체험

▶ 다시 책과 도서관의 계절입니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을 비롯해 전국에서 책과 관련한 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책과 도서관은 사회의 두뇌입니다. 대표적인 두뇌인 국회도서관을 찾아 이틀 동안 사서 보조로 도서관 업무 체험을 했습니다. 새달 31일 현재의 여의도 국회도서관이 완공된 지 27년째가 됩니다. 도서관 및 사서들과 관련해 정적이라는 이미지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틀간 엿본 국회도서관은 ‘1평의 전투’가 매일 벌어지는 역동적인 공간이었습니다.

1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서 매일 전투가 벌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가 국회도서관을 1년에 약 100만명의 일반인이 방문한다. 16일 오전 10시의 가을 햇볕이 국회도서관 앞 벤치를 따뜻하게 달군다. 그 앞을 가방 든 사람들이 지나간다. 일반 이용자들이 논문을 검색하는 1층 열람실 홀과 김미향 사서가 앉은 도서관 자료수집과 101호의 거리는 불과 수십m다. 그러나 일반 이용자들에게 ‘도서관 전투’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주먹이 오가는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미향 사서가 싸우는 대상은 시간이다. 1평(3.3㎡)쯤 되는 그 자리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시의성과 싸운다. 국회도서관 업무는 거칠게 말해 ‘단행본 및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적절하고 효율적으로 분류·등록하며→보관·열람시켜 입법활동을 지원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해외 사례는 중요한 입법 참고자료가 된다. 한국은 물론 미국·일본 등 세계 여러나라의 단행본과 각종 자료도 확보해야 한다. 김 사서는 국내 자료가 아니라 중국·일본·북한 자료 및 한국의 영토와 관련한 자료 수집을 담당한다. 대체 어떤 책과 자료가 언제 출간되는지 확인하는 것부터가 일이다. 김 사서의 책상에 ‘ウィ-クリ-出版情報’(위클리 출판정보)나 ‘圖書新聞’(도서신문) 같은 전문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까닭이다. 둘 다 정기적으로 일본에서 출판되는 거의 모든 책의 발간 정보를 담고 있다. 이들 출판전문지는 물론, 일본 대형서점인 ‘기노쿠니야’(紀伊國屋) 사이트나 ‘전국관보판매협동조합’(全國官報販賣協同組合) 사이트를 정기적으로 들러 일본의 민간 도서와 관공서 출간물을 실시간으로 스크린한다. 일반인들이 볼만한 대중서도 있지만, 당장 시급을 다투는 입법활동 참조자료가 많다. “독도 문제가 터졌을 때 많이 바빴습니다.” 그러므로 김 사서를 시간과 싸우는 ‘책정보 사냥꾼’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아 보인다.

매일 1평의 전투가 벌어지는 공간

오전 10시30분 김 사서는 9월에 구입해야 할 자료 목록을 작성중이었다. 엑셀파일 번호가 100번이 넘어갔다. 사서 체험 교육 차원에서, ‘日中國交正常化と臺灣’(일-중 국교 정상화와 대만)이라는 일본 전문서의 ‘복본조사’를 지켜봤다. 사서가 필요한 자료라고 판단한다고 곧바로 구입하지 않는다. 해당 도서가 이미 도서관에 있는지 ‘복본조사’를 먼저한다. 이후 대행사로 하여금 다시 한번 출간 여부 등을 재확인한 뒤 목록을 만들고 이 목록을 전문가로 구성된 ‘자료선정위원회’가 심의한다. 이 심의를 거쳐야 비로소 구매 대행사를 통해 해당 책과 자료를 구입해 받는다.

‘납본’을 담당하는 차세은 사서는 꼼수와 싸운다. 국회도서관이 1차로 받은 책들은 차 사서에게 간다. 제본이 잘못된 책, 제목이 비슷해서 대행사가 실수로 잘못 구매한 책 등을 잡아내야 한다. 국회도서관은 ‘국회도서관법 7조(자료의 제공 및 납본)’에 따라 국내 정식으로 등록된 출판사의 책은 절반 가격에 모두 구입해 확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등록 출판사가 알아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오전 11시께 차 사서의 책상 주위를 ‘북트럭’이 둘러쌌다. 바퀴 달린 책운반대를 사서들은 북트럭이라 부른다. 국회도서관은 입법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고급 두뇌에 해당한다. 법에 따라 아동서, 중고교 교과서, 각종 문제집, 특정 종교 홍보서, 게임·퍼즐 등 오락용 출판물은 구입하지 않는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날 차 사서 옆에 있는 북트럭에도 소방공무원 승진시험 관련 문제지가 왔다. 전부 되돌려보내야 한다. 이솝 이야기와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등이 함께 포함된 세계문학전집도 들어왔는데 되돌려보낼 예정이다. 이미 비슷한 전집류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교회의 100년사를 다룬 책도 있다. 특정 종교와 관련한 책은 대부분 기증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이를 굳이 돈을 주고 구입할 경우, 세금을 엉뚱한 곳에 쓰는 셈이 된다. 이런 낭비 가능성을 막는 것이 차 사서의 주요 업무다.

납본 제도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국회도서관 자료수집과는 2013년 4월 책 2권을 납본받았다. 담당자가 놀랐다. ‘샤이니 제이의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른 책’의 책값이 1000조원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출판사 대표 ㅅ씨는 두 권의 책 절반 가격 1000조원을 요구하는 도서납품서와 납본보상금 청구서를 제출했다. 거액의 국민 세금이 지출될 상황이 됐다. 국회도서관 자료선정위원회는 ‘국회도서관 운영에 관한 규칙’에 따라 심의를 거쳐 책의 납본을 거부했다. 해당 규칙은 ‘도서관장은 심사한 뒤 납본을 받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ㅅ씨는 같은 해 국회도서관을 상대로 도서납본처분무효확인 취소 및 정당한 보상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올해 6월 납본 제도는 외려 일종의 재산권 수용으로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다며 각하 판결했다. ㅅ씨는 올해도 ‘샤이니 제이’의 책 8권을 납본하며 2000조2억원을 요구했다. 도서관이 다시 거부하자 ㅅ씨는 또 소송을 냈고 다시 각하 판결을 받았다.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해 보니 ‘샤이니 제이’의 책은 대부분 1만원을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ㅅ씨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출판인이 납본 제도를 활용해 돈을 벌려 한다. 차 사서는 “책을 한권 낸 다음에 그다음 해에 내용은 거의 그대로 두고 신문기사만 조금 덧붙이고 제목만 바꾼 뒤에 아이에스비엔(ISBN: 국제 표준 도서 번호)을 새로 부여해 새 책을 냅니다. 법적으로는 다른 책이지요. 그걸 납본하는 사람도 있고, 책값을 300만원으로 표기한 책을 납본하는 사람도 있죠.” 제목과 목차, 저자를 일일이 쳐서 ‘가짜 책’인지 가려내야 한다. 그러므로 차 사서를 ‘가짜책 탐정’이라 불러도 그릇된 표현으로 보이지 않는다.

책 196만여권을 소장한
국가를 대표하는 서재
대부분 단행본 의무 구매
납본 의무제도를 악용해서
고액 요구하는 출판인들도

일반인들 들어갈 수 없는
지하 1층 서고층 들어서자
팔에 가볍게 소름이 돋는다
365일 ‘20℃±2’의 온도 유지
지하 2층은 밀집서고 형태로


멜빌 듀이가 알려준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책 사냥꾼과 탐정이 고르고 검증한 책들은 자료조직과로 넘어간다. 책 한권이 국회도서관의 등록번호를 부여받고 라벨이 붙어 서가에 꽂히기까지 약 2개월이 걸린다. 자료조직과는 엄밀함과 싸운다. 번호 하나가 틀려도 등록이 안 된다. 단행본만 196만8000여권에 이른다. 책이 많으니 정리도 어렵다. 어떤 기준으로 정보와 책을 정리하느냐가 훗날 그 자료를 다시 찾고 이용하는 데 관건이다. 그러므로 책 분류법은 자료조직과의 헌법이다. 자료조직과 사서들 자리에 ‘Dewey decimal classification’(듀이 십진 분류법)이라는 제목의 두툼한 영어 원서가 펼쳐져 있다. 오후 2시에 찾아간 배현주 사서의 자리에도 그 책이 있다. 책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가 오랫동안 도서관 직원과 학자들의 고민거리였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자료를 쌓는 것보다 그 자료를 정확히 다시 찾는 작업이 훨씬 힘들었다.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의 대부분 도서관은 그저 책을 발간순서나 알파벳순으로 배치했다. 도서관 사서이자 미국도서관협회 설립자 중 한명인 멜빌 듀이가 혁명적 발상을 했다고 알려진다. 주제에 따라 책을 분류한 것이다. 주제별로 10개의 분야로 나뉘어 컴퓨터공학부터 역사와 지리학까지 000부터 900까지 10개의 대분류가 있다. 다시 소분류로 나뉜다. 가령 문학은 800인데 동아시아 문학은 한참 뒷번호를 부여받는다. 이곳이 한국의 국회도서관인데도 그렇다. 한국 문학은 중국, 일본 뒤인 ‘895.7’ 번호를 부여받는다. 분류법의 창시자인 멜빌 듀이가 미국인 사서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미국 문학이 영어 모국인 영국 문학보다 앞번호다. 듀이의 체계에서 ‘성리학’은 당최 분류번호를 부여받기 어렵다. 이 때문에 국회도서관은 1950년대 중반에 이미 듀이의 분류법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동양학 관련 서적을 분류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동양관계 세분전개표’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가령 큰 틀에서 듀이 분류법을 따르되 한국 문학에 뒷번호가 아닌 맨 처음 번호인 1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막 자료수집과에서 넘어온 책을 놓고서 사서의 도움을 받아 실제로 등록작업울 해봤다. 한국 소설은 비교적 듀이 분류법에서 번호를 찾기 쉬운 편이다. 수정된 분류법에 따르면 한국 문학은 문학 영역의 맨 앞번호에 해당한다. ‘811’이라는 번호를 부여했다. 저자 이름을 기록했고 책의 크기를 자를 이용해 센티미터 단위로 측정해 표기했으며 삽화가 있는지 체크했고 책의 전체 페이지 수를 기록하는가 하면, 책의 두께를 보고 세로 라벨을 붙일지 가로 라벨을 붙일지도 컴퓨터 화면을 보며 일일이 정했다. 이 모든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라벨을 출력했다. 국회도서관이 소장한 책 195만여권이 대부분 이런 작업을 거쳐 서재에 꽂혔다.

서고를 직접 관리하는 작업은 열람봉사과에서 담당한다. 국회도서관에서 몸 쓰는 일은 거의 다 열람봉사과에서 한다. 16일 오후 5시와 17일 오전에 두번 지하 1층 서고에서 사서들을 도왔다. 국회도서관은 아이러니하지만 입법부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됐던 전두환 정권 당시 1984년 착공돼 88년 준공됐다. 증권거래소를 설계한 건축가 이승우가 설계했다. 국회도서관 지하 1~2층은 일반인들이 가지 못한다. 일반 이용자들은 1층 열람실에서 컴퓨터로 책을 신청할 수 있을 뿐이다. 사서들이 해당 책을 찾아 컨베이어벨트에 올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지하 1층 서고층에 들어서자 팔에 가볍게 소름이 돋는다. 1년 365일 ‘20℃±2’의 온도와 ‘50%±5’의 습도가 유지된다. 이런 온습도를 조절하는 거대한 에어컨은 지하 4층에 있다. 미리 신청해둔 재일동포 소설가 양석일의 <피와 뼈>를 찾아야 했다. 듀이 분류법 번호를 보고 책을 찾았다. 책을 컨베이어벨트에 올린 뒤 버튼을 눌렀다. 지하 2층 서고의 논문은 사서가 지나치는 공간을 최소화한 ‘밀집서고’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문서’, 조선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의 서신, 일제 때 서양화가인 김인승 화가의 1937년 작품 <화실>’ 등 여러 점의 미술품도 다 지하에 있다.

열람봉사실은 시간과 싸운다. 수십년 지나 산화가 시작된 책의 보존 상태를 높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산화방지 작업을 한다. 감정노동과 싸우기도 한다. 국회도서관은 ‘일반 도서관’이라는 정체성과 ‘입법부의 도서관’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같이 지닌다. 일반인도 많이 온다. 매일 출퇴근하는 이용자 대부분 퇴직한 것으로 보이는 남자 노인이다. 그중에 비상식적인 이용자들이 있다. 비가 오면 젖은 양말을 의자에 널어 말리고,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기침을 한다고 항의를 대신 해 달라며 직원들을 다그친다. 이것들을 다 참는다.

‘9시 등교’ 선진국 현황이 궁금하면?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입법지원 기능은 국회도서관 의회정보실과 도서관과 별도 조직인 입법조사처가 함께 맡고 있다. 가령 ‘9시 등교’와 관련해 선진국 현황이 궁금하면 의원은 국회도서관 의회정보실과 입법조사처 두곳에 동시에 질의 메일을 보낸다. 미국 의회도서관과 일본 국회도서관의 입법조사 능력은 그 나라 지성의 최고치로 여겨진다. 그런 신뢰가 있다. 아직 미흡하지만, 국회도서관도 신뢰를 얻기 위해 싸운다. 시의적절하게 핫이슈를 다룬 ‘팩트북’을 펴내고 ‘글로벌 핫이슈’를 발간한다.

국회도서관의 정체성에 대해 조정권 자료수집과장은 “국민의 생각이 모이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책과 자료는 생각과 감정의 기록이므로 적절한 표현이다. 일본 국회도서관에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조 과장은 ‘도서관전쟁’이라는 만화 작품을 보라고 했다. 책의 검열이 일상화된 가상의 일본이 배경이다. 도서대원들이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책을 보호하려 사투한다는 내용의 에스에프다.

만화와 좀 다르지만, 국회도서관에서도 매일 1평의 전투가 벌어진다. 사서들은 각자의 좁은 공간에서 싸운다. 때로 시의성과 다투고 종종 꼼수와 싸우며 자주 실수와 투쟁한다. 17일 오전의 가을 햇빛에 기분좋게 달궈진 도서관 앞 벤치에 앉은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전투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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