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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두 바퀴에 앉아 다시 선수로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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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에서 휠체어 테니스선수로… 제2의 인생 시작한 김명제]

2009년 두산 에이스 시절 교통사고

재활 중 만난 친구 권유로 라켓 잡고 오늘 창단하는 휠체어테니스단 입단

처음엔 좌절감 컸지만 이젠 행복해… 메달 따고 시구자로 야구장 가야죠

15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테니스장. 휠체어 테니스 선수들 사이로 거구의 남자 선수가 휠체어로 이리저리 다니며 라켓을 휘두르고 있었다. 움직임은 서툴지만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음주 운전 사고로 프로야구 선수를 그만뒀다가 최근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김명제(27)다. 16일 헤드 휠체어 테니스팀의 공식 창단식을 하루 앞두고 만난 그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다시 운동을 할 수 있을 줄 몰랐어요. 새롭게 태어난 기분입니다."

김명제는 휘문고 야구부 시절 '차세대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2005년 두산에 입단할 당시 신인 최고액인 6억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김명제는 박명환, 다니엘 리오스 등 두산 출신 스타들이 사용한 등번호 27번을 물려받을 정도로 에이스로 인정받았다. 프로야구 홈런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박병호(넥센), 최정(SK)과 함께 고교야구 최고 스타로 꼽혔다.

조선일보

김명제는 오른손과 라켓을 붕대로 칭칭 감아 묶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쥐는 힘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스타급 신인에서 제 몸조차 가누기 힘든 처지로 전락한 그였지만, 이제는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아시아 정상, 세계 정상을 향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이찬 인턴기자(광주대 4학년)


하지만 김명제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김명제는 2009년 12월 28일 밤, 술에 취한 채 자신의 승용차로 서울 송파구의 한 다리를 건너다가 4m 아래 도로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고 경추(목뼈) 2개가 골절됐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신경을 다쳐 팔다리를 온전히 쓸 수 없게 됐다. 혼자 서 있을 수도 없었던 김명제는 2010년 구단에서 임의탈퇴로 방출되며 23세 때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의 프로 통산 성적은 5시즌 동안 22승29패1세이브다.

김명제는 사고 이후 1년 넘게 꼼짝없이 병원에서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 그의 좌절감은 컸다. 촉망받던 야구 스타에서 휠체어 없이는 몸을 가눌 수 없는 환자가 돼버린 그는 휴대폰을 없애고 친구 면회도 거절했다. 밤마다 꿈속에선 야구 유니폼을 입고 뛰어다녔지만, 눈을 뜨면 움직이지 못하는 손발만 있었다.

김명제는 부모님의 극진한 간호와 재활 덕분에 2011년부턴 조금씩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던 야구공은 더 이상 던질 수 없었다. 이후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3년간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하루에 5끼를 먹어 125㎏까지 체중이 불어나기도 했다.

김명제는 "어느 순간 수염과 머리로 덥수룩해진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음주 운전 하다가 사고당한 선수'로만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고생한 부모님 생각을 해서라도 새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그에게 구원이 된 건 역시 '운동'이었다. 지난해 서울 집 근처 헬스장에서 만난 동갑내기 휠체어 펜싱 선수를 통해 휠체어 테니스를 처음 알게 됐다. 김명제는 좁은 휠체어에 앉아서도 멋있게 서브를 넣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곤 마음이 설레었다. 다시는 운동을 하지 않겠다던 생각을 접고 지난 3월부터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활력을 되찾은 김명제는 새 목표를 세웠다. 두 자릿수 체중을 만들고 음주 운전 사고로 취소된 면허를 다시 따는 것이다. 그리고 돈을 벌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기로 했다. 김명제는 반년 만에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90㎏대까지 몸무게를 줄였고, 지금은 직접 차를 몰고 훈련장을 다닌다. 새 실업팀에도 들어가 다시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김명제는 "하반신이 마비된 다른 선수들은 샤워기가 손에 닿지 않아 씻는 것도 힘들다"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난 행복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명제는 초등학교 시절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의 기분으로 휠체어 테니스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당장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보다 기본기를 갖추는 데 힘써 오래 선수 생활을 하는 게 목표다.

그는 사고 이후에는 아직 한 번도 야구장을 찾지 않았다.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성공해서 야구 시구자로 가기 전까진 야구장 안 갈 겁니다. 아시안게임, 올림픽에서 메달 딴 다음에요."

김명제는 "다시 스포츠 선수가 돼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최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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