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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원세훈 재판부, 대법원 판례조차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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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방선거 때 ‘4대강 반대’ 시민단체 유죄 판단

“선거운동 위한 목적 인정”… 4년 후엔 ‘무죄’로 둔갑

법원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3)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제시한 근거가 대법원 판례와 배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은 유사한 사건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며 유죄를 인정한 반면 원 전 원장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2011년 10월 대법원 2부(주심 김지형)는 수원환경운동연합 장동빈 사무국장(44)이 지방선거를 전후로 4대강 사업 중단 운동을 펼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심리했다. 대법원은 1·2심이 유죄로 판단한 장씨의 10차례에 걸친 4대강 사업 반대 운동 중 7건은 무죄로 봤지만 3건은 유죄로 인정했다. 수원환경운동연합은 2009년부터 집회, 서명운동 등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을 펼쳤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둔 4월부터 이 단체가 주최한 집회에 ‘죽음의 4대강 삽질을 멈춰라’, ‘6·2 투표 참여하는 시민, 깨어 있는 양심’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손팻말 등이 걸렸다. 검찰은 이런 활동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할 목적 또는 선거운동을 위한 목적’을 가진 불법 선거운동이라며 장씨를 단체의 책임자로서 기소했다.

대법원은 이전 판례를 인용해 “단체가 선거 전부터 반대해 온 특정 정책이 ‘선거쟁점’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단체의 반대활동이 전부 공직선거법에 의한 규제 대상이 되진 않는다”고 전제했다. 여기까지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가 지난 11일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든 논리와 같다. 그러나 대법원은 “단체가 기존에 행하던 활동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이라 해도 그 활동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할 목적 또는 선거운동을 위한 목적이 있다고 인정된다면 공직선거법에 의해 규제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집회에 등장한 “투표를 던져 4대강을 죽이는 악의 무리를 물리쳐라”, “4대강 삽질을 막고 생명의 강을 구할 영웅, 바로 투표권을 가진 당신입니다. 6월2일 당신의 힘을 보여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해당 문구가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을 적시한 것은 아니지만 “지방선거에서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정당이나 후보자에 투표하지 말라는 취지”라는 것이 대법원의 논리였다.

반면 원 전 원장 담당 재판부는 “지지 또는 반대를 통해 당선 또는 낙선시키고자 하는 정당 후보자가 특정될 수 있어야” 하는데 국정원 직원들이 작성한 글이 후보자를 특정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가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으로 인정한 ‘minsu_an’은 “이번 대선은 좌·우파 간의 싸움이 될 듯, 교육감 후보로 조국 교수가 나온다는 말도 보이고, 이번 대선에서 우리 보수는 뭉쳐야 한다, 뭉치지 않으면 둘 다 좌파들에게 빼앗깁니다”라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렸다. 특정 진영에 대한 투표 독려에 다름 아니었다.

장씨는 14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해당 손팻말은 문화제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만들어 가지고 나온 것인데도 주최 측이 막지 않았다며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서 “개인이 모인 문화제에서도 선거법 위반 사유가 된 문구를 게시하지 못하도록 막지 못한 책임을 지도록 했는데, 하물며 국정원 직원이 정치 관여 글을 선거 기간에 작성하는 것을 막지 못한 국정원장에게 무죄 선고라니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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