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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월드리포트] 그들은 왜 싸우고 휴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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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자사태의 WHY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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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람’과 ‘살롬’ , 하나는 아랍어로, 다른 하나는 히브리어로 둘 다 ‘평화’란 뜻입니다. ‘아’와 ‘오’ 만 다르지 ‘평화’란 단어의 뿌리는 같습니다. 그래서, 아랍인도 유대인도 살롬이 뭔지 살람이 뭔지 누구나 압니다. 서로가 잘 알아듣는 이 ‘평화’를 외치는 데 50일이나 걸렸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죽이고 부수고 욕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무기한 휴전을 맺었습니다. 휴전이 발표되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래 걸렸지? 서로가 얻은 건 뭐지? 잃은 건 또 뭔가? 과연 평화는 이어지는 걸까? 그래서, 그 궁금증들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봤습니다. 단, 아래 내용은 두서없이 적은 개인의견입니다. ( 다소 적절치 못한 표현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해바랍니다. 큰 줄기만 느껴주시면 됩니다. 휴전 직후에 쓰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일도 늦어졌네요. 그래도 한 번은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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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싸웠지?
가자지구 사태의 ‘공식적인’ 빌미는 6월 13일 발생한 이스라엘 10대 소년 3명의 납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납치의 주체로 하마스를 지목했고, 제 메모엔 실종 소년들을 발견하기 전인 6월 28일부터 가자지구를 공습하기 시작했더군요. ( 통상 가자사태 개시일은 ‘변경 보호작전’이라는 대대적인 공습이 이뤄진 7월 8일부터 계산합니다. 실제로는 그 열흘 전부터 교전은 시작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과연 소년 3명이 사라졌다고, 확증도 물증도 없이 납치된 소년들의 생사도 불분명한데 아무리 힘이 세도 그렇지 맘대로 가자지구에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는 걸까?

# ‘이스라엘에겐 돌파구가 필요했다’
- 현 네타냐후 정권은 삼각연합 정권입니다. 온건파인 속칭 비둘기파와 중도. 강경파가 한데 뒤섞여 정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이스라엘 국민들 참 영리합니다. 어디 한 정당에 확 힘을 몰아주진 않습니다.) 이 연정이 지난해부터 계속 삐걱거리고 있었습니다. (한 지붕 세 가족이 조용할 리 있나요? 가장이 셋인 집인데...) 정책을 놓고 좌충우돌하는 상황이 반복되니 네타냐후 총리 지지율도 20%로 급락합니다. 내부 균열을 다잡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2008년 가자전쟁, 2012년 8일 교전도 직전의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율은 급락했다가 전쟁 후 급상승했습니다.

# ‘팔레스타인이 뭉치는 꼴이 보기 싫다’
– 이스라엘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이 국가로 인정받아 목소리를 내는 겁니다. 그런데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요르단강 서안의 파타당과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는 통합정부를 구성하는 데 합의한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으로선 꿈에서도 보기 싫은 ‘하나된 팔레스타인’을 목격할 지경이었습니다.

# 하마스 ‘울고 싶었는데 잘 됐다. 누군가 때려주길 기다렸다’
– 가자지구의 하마스도 참 난처한 처지였습니다. 어떻게 차지한 가자지굽니까? 없는 돈에 의료사업에 구호사업을 펼쳐가며 가자주민의 민심을 얻어 당당하게 선거로 차지한 가자지굽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7년간 가자지구를 꽁꽁 막아버리면서 자금이 바닥날 지경입니다. 공무원 급여도 몇 개월이나 밀렸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타와 통합정부 구성은 막상 뚜껑을 여니 중요한 자리는 죄다 파타가 차지해버렸습니다. 팔레스타인이란 찻잔에 파타는 커피라는 이름이 됐지만 하마스는 설탕처럼 녹아 사라질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스라엘이 성질을 건드린 겁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10대 소년들을 이런 이유로 납치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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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오래 싸웠지?
서울 절반 만한 땅 덩어리에서 50일이나 싸울 일이 필요했을까? 사실 공습이 시작되기 전부터 승부는 뻔히 아는 건데… 제가 아는 한 분은 이런 표현을 쓰더군요. ‘이스라엘은 자기 뒷마당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 라고... 이스라엘은 왜 이리 싸웠고, 하마스는 또 2천명 넘게 주민이 숨지는데 왜 이리 오래 버텼을까?

# ’알고 보니 지하터널이 너무 많더라’
- 이스라엘은 ‘변경 보호 작전’을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나서 지상군을 투입했습니다. 이유는 하마스가 파놓은 지하터널 파괴였습니다. 처음에 3주 정도 소요된다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실제로도 이스라엘이 ‘우리가 찾은 지하터널을 거의 다 파괴했다’ 고 말하는데 20일이 걸렸습니다. 그러니 지하터널 파괴를 완수하는 데 교전시작 후 한 달 정도가 걸린 셈이죠. 물론 그사이 하마스 근거지도 속속들이 쳐부수었고요. 하마스에겐 지하터널은 생존의 길이었지만 이스라엘에겐 위협적인 경로였을 겁니다.
문제는 한 달 뒤의 과정입니다. 국제사회의 압박도 있었고 이집트가 중재를 적극 나서기 시작했지만 양측은 임시휴전과 협상, 다시 교전 재개라는 악순환을 반복했습니다.

# ‘하마스 내분? – 누군 안에서 목숨 걸고 버티고, 누군 밖에서 입씨름만...’
– 한 달간 가자지구는 세계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국내 정세로 다잡았고, 하마스랑파타도 충분히 이간질 했습니다. 하마스도 팔레스타인의 대변인은 바로 나라는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대표자가 이스라엘에 휴전을 제의한 적이 있는데 이때 이스라엘이 하마스가 직접 한 말 아니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잘라버렸었죠.) 양쪽 다 정치적.군사적 목적은 이뤘는데 휴전이 이리 오래 걸렸을까?
– 전 임시휴전 이후 교전이 재개된 상황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임시휴전 중이나 직후 공격을 먼저 재개한 건 가자지구였습니다. 더구나 자살폭탄테러와 이스라엘 장교 납치 등 치밀한 사전준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 계획한 전술이라는 거죠.

하마스는 정치적 윙(wing)과 군사적 윙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원래 브레인 역할을 하는 정치적윙이 지시를 내리면 군사적 윙은 손발이 돼 행동으로 옮기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를 보면 정치적 인사들은 대부분 해외로 망명해 피신해 있었고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목숨 건 승부는 군사적 윙이 다 도맡았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윙은 그저 대외협상에 주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요. 교전이 길어지고 피해가 늘자 군사적 윙에선 그런 정치적 윙이 못 마땅했고, 더구나 중요한 요구사항(가자지구 봉쇄 완전 철폐, 가자지구에 공항.항만 건설 등)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협상에 불만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군사적 윙쪽에서 임시휴전 중에도 독단적으로 공격을 재개하면서 번번히 협상이 깨졌을 것이란 게 제 추측입니다. (이에 대한 또 다른 근거는 다음 ‘왜’ 에서 나옵니다.)

여기에, 가자지구엔 하마스 뿐아니라 여러 지하드가 상존해 있는 상탭니다. ‘가자지구엔 하마스만 있는 게 아니다. 협상은 너희가 해도 그 수확물에 대해선 우리도 지분을 달라’ 이런 의도로 지하드들이 도발을 감행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실제로 8일간의 임시휴전이 막을 내린 지난 18일에 일부 지하드가 자신들이 먼저 로켓을 쐈다고 주장한 사례도 있습니다.

# 힘 빠진 국제사회 – “내 말을 이젠 아무도 안 들어”
- 다들 아시는 내용일 테니 간략하게 적습니다. 유엔이야 오래 전부터 물리력을 사실상 상실하면서 정치적 압박카드만 쓰는 처지인데 이스라엘이나 하마스나 이미 여러 차례 ‘맞짱(힘의 세기는 차이가 크지만) 교전’으로 견고한 내성이 생긴지 오랩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미국의 입김도 무시할 정도가 됐습니다. 2년 전 중재를 섰던 이집트도 군부정권 이후 이스라엘 편을 들면서 하마스와는 사실상 단절상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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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럼 왜 휴전했지?
-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고 저도 한참을 생각해 본 질문입니다. 전 두 가지로 이유를 요약해봤습니다. 첫째, 관심이 줄었다. 둘째, 이스라엘 “한 놈만 팬다”

# 아무도 안 보는데 우리만 싸워봤자..
- 국제사회의 축은 자타공인 미국입니다. (이스라엘에 말발이 통하진 않았어도) 미국은 가자지구 사태 초기만 해도 엄청난 관심을 보여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변수가 생기면서 관심을 쓸 여력이 줄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민간 항공기 격추, 이슬람국가 IS의 세력 확장이 바로 그것이죠. 미국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당장 정치적 경쟁국인 러시아가 끼어 있습니다. IS의 세력확장은 그 동안 공들여온 걸프지역의 영향력을 뒤흔들 수 있는 문젭니다. 그저 인도적 이유로 말려온 가자 사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젭니다.
이스라엘이나 하마스나 치고 받고 싸우면서 서로의 주장과 요구를 국제사회가 귀담아주길 원했습니다. 이를 통해 상대방이 얼마나 사악한 지 또 우리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그래서 국제사회를 내 편으로 만들려는 이유에섭니다. 그런데, 차츰 국제사회 관심이 다른 곳에 쏠리니 한 대 만 때려도 쳐다보고 말리던 이들이 열 대를 때려도 계속 딴 데만 쳐다보는 상황이 된 거죠. 더구나 가자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서로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도 국제사회의 노력도 시들해진 것도 이유 중 하나고요.

# 말썽쟁이만 골라서 때리기
- 또 다른 휴전 이유는 이스라엘의 전략에서 찾아봤습니다. 휴전 합의 일주일 전부터 찬찬히 되짚어 보면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대상이 특화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앞서 말씀대로 원하던 정치적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고 느꼈고, 오랜 교전으로 피로도가 상당했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동원된 예비군도 마냥 잡아주기에 부담이 컸을 꺼고요.)

하마스 군사력의 핵심인 알카삼여단의 사령관 무함마드 데이프의 집을 폭격했죠. (그는 살고 가족이 숨졌지만) 이어서 곧바로 하마스의 군 수뇌부 3명을 한꺼번에 공격해 죽입니다. 이것도 모자라 하마스의 작전본부가 있다면서 13층짜리 건물을 미사일 두 방으로 폭삭 주저앉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네타냐후 총리는 휴전 합의 이틀 전에도 교전이 언제 끝날 지 모르고 더욱 강도높은 공격을 퍼 붇겠다고 겁을 줍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내분을 알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 동안 임시휴전과 휴전협상을 해방 놓은 주체가 하마스의 군사파트라고 여기고 휴전성사를 위해선 하마스의 군사부분을 압박해야 한다고 전략을 수정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마스의 군사파트도 이런 이스라엘의 전략을 간파했을 겁니다. 군 고위관계자가 잇따라 공격 당한 직후 이스라엘 첩자라면서 18명의 팔레스타인을 거리에서 공개 처형한 것도 그런 이유가 될 테고요. (이스라엘이 어떻게 군 간부가 언제 차를 타고 이동하고 그 차가 어느 것인지 알고 정밀 타격을 했겠습니까? 그만큼 곳곳에 팔레스타인을 포섭해 첩자를 만들어놨겠죠.)

결국 하마스 정치부분의 온건적 태도에 불만을 품어왔던 군사파트도 수뇌부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휴전을 받아들이는 선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입니다.
대신 협상에 진지하게 임한 하마스에게 적지 않는 선물도 안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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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종전 아닌 휴전, 끝나긴 한 걸까?
- 휴전을 통해 하마스는 단계적인 가자지구 봉쇄 완화와 함께 가자지구 연안의 조업권 확대라는 선물을 안았습니다.
그렇다고 다 끝난 게 아니죠. 첨예한 사안은 그냥 남겨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무장해제를, 하마스는 가자지구에 공항과 항만을 건설하고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데 사실 양쪽 다 받아들이기엔 너무 부담이 큽니다.

그야말로 무장 투쟁 하나로 버텨온 하마스가 총을 놓고 지금의 영향력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가자지구를 장벽으로 둘러쳐 땅 길을 막고 군함을 보내 바닷길까지 막아놓은 이스라엘이 하늘 길을 열어준다고요? 그리고, 나가면 언제 다시 자신들을 물지 모를 악랄한(이스라엘 입장에서) 테러리스트들을 무더기로 풀어준다고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들입니다. 일단 휴전한 뒤 한달 내에 카이로에서 다시 만나 논의하기로는 했지만 정말 통 큰, 그것도 아주 아주 큰 양보가 없이는 새로운 진전은 없을 겁니다.

가자지구를 다시 일으키는데 우리 돈 6조 원이 필요하고, 이스라엘은 하루 5백억 원씩 50일간 2조 5천억 원을 썼다고 합니다. 이번 전쟁이 과연 그만큼 가치가 있는 전쟁이었을까요? 이를 계기로 그만한 가치를 서로가 얻어낼 수는 있기는 한 걸까요?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요? 하마스는 가자지구의 생존을 위해, 이스라엘은 자국민의 보호를 위해 라고 외쳤습니다. 그럼 가자주민과 이스라엘 국민들은 이번 전쟁으로 더 행복해졌을까요?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진정 자신들의 주민을 위해 싸웠나요? 전쟁은 그저 정치놀음의 부산물 아니었을까요?

가자주민에겐 그저 가족을 잃고 집을 잃은 슬픔과 고통, 그리고,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야 하는 걱정과 두려움만 남았습니다. 전쟁은 분명 목적이 있어야 싸우는 건데 그저 죽이고 부수고 맞서는 수단에 매몰 돼 결국은 목적 잃은 결과만 낳게 될 뿐이라는 역사적 교훈은 이번 가자지구 사태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결국엔 2년 전 8일교전 이후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상태가 유지될 것입니다. 그러다 또 전쟁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무고한 희생을 제물 삼아 서로가 정치적 이득을 취하겠죠.

[정규진 기자 socc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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