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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판반짜이씨 "꿈에서라도 사위와 손자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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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서 숨진 베트남 신부 고 한윤지 씨 친정아버지의 눈물

[CBS노컷뉴스 임덕철 기자]

노컷뉴스

고 한윤지씨 친정아버지 판반짜이(62)씨와 동생 판록한(26)씨


판반짜이 씨 "세월호를 왜 인양을 하지 않나"

"국가에서 빨리 배를 인양해서 실종된 사위와 손자의 시신이라도 찾아달라. 꿈에서라도 사위와 손자의 얼굴이라도 볼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느님께 매일 매일 기도한다."

판반짜이(62?베트남 까마우시)와 그의 막내딸 판록한(26) 씨는 이렇게 말했다.

판반짜이 씨는 지난 4월16일 침몰한 세월호에서 숨진 고(故)한윤지(29) 씨의 친정 아버지다.

판반짜이 씨와 그의 막내딸 판록한씨는 고 윤지씨 가족의 비보를 듣고 곧바로 한국으로 달려와 지금까지 넉달여 동안 안산시에 머물며 아직도 실종상태인 사위 권재근(52) 씨와 손자 혁규(6) 군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고 윤지 씨 동생 판록한 씨는 "그동안 조카 지연(5)이는 4번 만났다. 병원에서 잠깐 두번, 고모집에서 한번, 수원에서 한번, 길어야 1시간 이내… 지연이가 저번에 만났을때는 책을 읽어달라고 했는데 내가 한국어를 몰라 읽어주지 못했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지연이가 어릴때는 베트남말을 조금 했는데 지금은 전혀 못하더라. 내가 엄마 동생이라는 것도 안다. 병원에서 만났을때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가 베트남 사람이라고 말했다."

故 윤지 씨는 세월호 침몰 6일째 되던 지난 4월 23일 안타깝게도 주검으로 인양됐다. 친정아버지는 90일 이전에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베트남 풍습에 따라 지난 7월 16일 윤지씨의 장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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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고 한윤지씨와 딸 지연(5)양


사고당일 구조된 윤지 씨의 딸 지연 양은 현재 실종된 아버지(권재근)의 누나인 고모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판반짜이 씨는 "어떤때는 내 마음이 정상적이지 않다. 언제든지 문득문득 나도 딸처럼 죽을수 있다는 생각이 엄습한다"며 "불안감과 마음의 깊은 고통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판록한 씨는 "4월 16일 오전 6시(한국시간 8시)아침에 언니가 제주도로 가는 세월호 객실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지금 제주도로 가고 있다. 오후에 도착할 예정이다. 도착하면 전화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미국에 사는 언니의 친구한테도 '지금 가고 있다. 오후 도착하면 전화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언니한테 받은 문자메시지와 객실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여줬다.

제주도에서 감귤농사를 짓기 위해 세월호에 몸을 실었던 고 윤지씨 부부는 평소 원앙처럼 각별히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부부는 힘겨운 노동일을 하면서도 친정집에 수천만원을 들여 큰 집을 지어주기로 약속했다.

제주도에 도착하는대로 짐정리를 마치면 온 가족이 공사대금을 들고 베트남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침몰한 세월호와 함께 산산히 무너졌고, 집공사는 중단됐다. 수천만의 공사대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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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의 추억을 기록한 판록한씨의 일기장


고 윤지 씨는 베트남 맨 남쪽끝 까마우시에서 3남2녀 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3대째 어부를 직업으로 배를 부리며 남부럽지 않게 자녀들을 키웠다.

판반짜이 씨는 "딸(윤지 씨)은 어려서부터 아주 예쁘고 성격이 활발했다. 다른 자녀들보다 부모를 남다르고 생각했던 착한 딸이었다. 한국에 오기전에도 쉬지않고 부지런히 돈을벌어 용돈을 내 놓는 효녀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딸이 2005년도 대도시에 취업하겠다며 고향을 떠나 호치민으로 올라가 봉제학원에 입학했다. 그런데 어느날 한국사람과 결혼을 하겠다고 전화가 왔다. 나는 그건 너의 인연이니 알아서 결정해라. 다만 시부모 모시고 살아야 하는건지는 알아보고 결정하라며 말리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3년 전 사위집에 와서보니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비보를 접한 것은 세월호 침몰 이튿날이었다. 판록한 씨는 "언니가족이 짐만 배로 부치고 비행기로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4월 17일날 한국에 있는 친척언니로부터 전화가 와서 '지금 언니가족이 배에 갇혔다. TV뉴스에 지연이 사진이 나왔다'며 휴대폰문자로 사진을 보내왔다. 그때 온 가족이 쓰러졌다. 도저히 믿고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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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록한 씨는 대화중에 사진첩을 들고와 보여주었다. 사진속에는 고 윤지씨의 행복한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들 혁규 군과 지연 양의 성장과정을 담은 사진첩이었다.

시간이 멈춰진 사진속 윤지 씨의 가족은 집안에서, 놀이공원에서 그 어느 가족보다도 남부러울게 없는 행복한 시간의 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판록한 씨는 "지금 혈육이라고는 살아남은 지연이 혼자뿐인데 떨어져 있다보니 지연이가 베트남말을 잊어버려 대화를 할수 없게돼 안타깝다"며 "이렇게 시간이 흘러 지연이가 베트남말을 영영 잊어버리면 대화를 할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능하다면 지연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한국이든, 베트남이든 함께 생활할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어려서부터 고 윤지 씨와 각별히 다정했다는 판록한 씨는 그날이후 매일매일 언니와의 소중했던 추억을 기억해내 일기를 쓴다고 말했다. 언니와 함께 했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duc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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