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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때론 한 끗이 장땡을 이긴다, 이 남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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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신의 손' 주연, 빅뱅 최승현]

"얻는 것보다 잃을 것 많던 대길 役… 그런데 그게 나를 자극하더라"

2006년 아이돌 그룹 '빅뱅'이 데뷔했을 때 짓궂거나 예쁘장하게 생긴 멤버들 가운데서 탑(T.O.P)은 진하고 묵직한 인상을 남겼다. 다들 총천연색 HD 화면에서 있을 때 그는 혼자 흑백 아날로그 화면에 있는 것 같았다. 목탄으로 쭉 그어 그린 것같이 길고 짙은 눈썹과 에너지를 꾹꾹 눌러 담은 듯한 깊은 눈매 때문이었다. 최승현(27)이란 본명으로 배우 데뷔한 이후에도 그는 킬러(드라마 '아이리스'), 남파공작원(영화 '동창생') 등을 연기했다. 흑백 아날로그 화면에 어울리는, 과묵하고 무표정한 배역들이었다.

'타짜:신의 손'(감독 강형철·이하 '타짜2')이 공개되기 전까지 최승현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가 맡은 주인공 '대길'은 1편에 나온 주인공 '고니'의 조카. 손재주가 뛰어난 대길은 시골에서 짜장면 배달을 하다가 상경한 뒤 몇 차례의 배신을 겪으며 '신의 손'으로 성장한다. 연륜도 흥행 기록도 없는, 아이돌 그룹 출신의 배우가 이런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조선일보

강형철 감독은 최승현에게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너의 모습이 있다. ‘똘끼’가 많다”고 했단다. 강 감독의 평가에 최승현은 동의할까? “그러니까 가수와 배우, 두 가지 다 하는 거 아니겠어요?” /이덕훈 기자


다행히 이 영화에서 최승현은 컬러 HD와 흑백 아날로그 화면을 자유로이 오간다. 입맵시에 힘을 풀며 헤벌쭉 웃고, 눈물을 질질 흘리며 악을 쓰지만, 짙은 눈썹과 깊은 눈매만큼은 그대로다. "때론 한 끗이 장땡을 이길 수도 있다"는 고광렬(유해진)의 대사는 최승현을 가리켜 한 말 같다.

최승현은 "원작과 전편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만화의 팬이 워낙 많고, 최동훈 감독의 '타짜'는 흠을 찾기 힘들 정도로 좋은 작품이다. 대길 역을 하면 얻는 것은 별로 없는데 리스크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런데 그 리스크가 나를 자극했다"고 했다. '과속스캔들'과 '써니'의 시나리오를 단숨에 썼던 강형철 감독은 '타짜2'의 시나리오를 쓰는 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원작의 양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최승현이 강형철 감독을 처음 만나러 갔을 때, 강 감독은 멀리서 걸어오는 그를 보고서 혼잣말을 했다. "딱 함대길이네."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질 때 강형철 감독은 최승현에게 시나리오를 건네주며 "제 2년의 시간이 담긴 시나리오예요. 승현씨 가지세요"라고 말했다."그때 감독님에게 확신에 가득 찬 에너지가 있는 것을 봤어요. 믿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타짜2'를 촬영하기 전까지 최승현은 화투를 쳐본 적이 없다. "명절 때 어른들이 하는 놀이"인 줄 알았고, "워낙 승부욕이 강하고 한번 꽂히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 때문에 게임을 자제해 왔다. 그와 다른 배우들은 석 달간 매일 네 시간씩 영화사 사무실에 갇혀 마술사에게 '손기술'을 배웠다. 대길이 한 손으로 꺼낸 '박카스' 두 병이 네 병으로 늘어나는 장면은 2초밖에 안 나오지만, 최승현은 이 장면을 완성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밤에는 감독과 배우들이 함께 화투를 쳤다. 최승현은 "오정세와 고수희는 타짜 수준이고, 신세경도 많이 이긴다"며 "감독님은 나를 화투 못 치는 바보라고 놀렸다"고 했다.

'타짜2'의 대길 역으로 최승현은 다음 연기가 기대되는 20대 남자 배우로 꼽힐 것이다. 정작 그는 "영화는 내가 즐겨 보는 것이었을 뿐, 그 안에서 연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아이 엠 샘'(2007)이란 TV 드라마로 얼떨결에 연기를 시작했을 때 그는 "화면에 나온 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어, 왜 내가 봤던 배우들처럼 안 되는 거지? 그때 욕심이 생겼어요. 저는 꽂히는 거 아니면 못하고, 한번 꽂히면 끝을 봐야 해요. 빨리 많이 보여주겠다는 조바심은 없어요."

최승현은 인터뷰를 하면서 "끝을 본다"는 말을 두 번이나 썼다. 대체 그 '끝'이라는 건 어디쯤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는 "끝이 어딘지 아직 안 보인다. 내가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게 많다는 얘기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직전 일본과 중국에 다녀왔다. 최근 제안이 들어온 시나리오 몇 권을 가져갔지만 "대길을 빨리 놓기 싫어서" 읽지는 않았다. "영화가 개봉하면 대길을 놓아주고 읽을 거예요. 제발 꽂히는 게 있기를."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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