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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염수정 추기경 “유족들 양보해야” 발언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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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기자간담회서 “유족들도 어느 선에서 양보해야” 발언

노란리본 달고 “고통받는 분들 초점 맞춰야” 말하기도



[조현 종교 전문기자의 취재 뒷 이야기]

27일 온라인에서 염수정 추기경 발언에 대한 비판이 뜨겁습니다. 염수정 추기경은 26일 기자간담회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타나, 교황 방한 소회와 세월호에 대한 질의응답을 받았습니다.

<조선일보>는 1면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진통을 다룬 기사 아래 <염수정 추기경, “세월호의 아픔 이용해선 안돼”>하고 힘을 줬습니다. 2면에도 <“세월호 문제로 더 이상 에너지 낭비 말아야”> 인터뷰를 머릿기사로 이었습니다. <세월호 아픔 이용 안돼…유가족도 양보할 수 있어야> (<중앙>, 27일자 2면) <염수정 추기경 “세월호 유족 아픔을 이용해선 안돼”>(<동아>, 27일자 3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일보>와 <연합뉴스>는 논쟁적으로 썼습니다. <한국일보>는 3면에 <염 추기경 “유가족도 양보해야” / “세월호 아픔 이용 안돼” 발언 논란 / 유가족 고통 함께한 교황과 대조>라고 제목에 해설을 붙였고, 내용도 교황의 발언과 대조를 이뤘습니다. <경향신문>도 <염수정 추기경 “세월호 아픔 이용 안돼…유족 양보해야” / 교황과 엇갈린 발언 논란>(5면)으로 제목에 해설을 붙였습니다.

반면 제가 쓴 기사는 보다 건조하게 사실만 전달하는 형태로 갔습니다. 인물들의 소식을 다루는 사람면(28면)에 <교황 이어 노란 리본 단 염수정 추기경, “모든 종교가 세월호법 중재 노력해야”>에서 별도의 해설 없이 한 말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대체 어떤 말이 오갔는지, 정말 염수정 추기경께서 그런 의도로 말씀하셨는지 온라인 독자들이 궁금해 하시니 간담회의 풍경을 전합니다. 기자간담회는 1시간 동안 이뤄진 뒤 기자들과 점심을 먹는 형태였는데, 저는 선약이 있어 점심을 먹지 않고 40분쯤 지나 나왔습니다. 간담회에선 교황 방한 소회와 세월호가 주요 질의응답이었습니다.

염 추기경이 교황 방한 감동을 말한 뒤 제가 초반에 질문한 건 “교황께서 방한 첫날 주교단에게 교회의 사명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할 것. 둘째로 한국가톨릭은 평신도로부터 출발했다, 성직자 중심주의를 경계할 것. 셋째로 주교는 사제들이 언제든지 얘기할 수 있도록 문과 귀를 열고 있을 것, 이 3가지를 강도 높게 말했다. 서울대 교구장으로서 교황의 사목 지침을 어떻게 실천해 갈 계획이시냐?”고 여쭸습니다.

이에 대한 염 추기경의 답변은 “앞으로 해 갈 과제다”로 끝이었습니다. 성의 없는 답변이었지요. 제 질문이 불만이었는지, 교황님 사목이 불만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비판 기사를 쓰더라도 인간에 대해서는 편견과 단정을 넘어서려고 나름 노력합니다.

일단 추기경이 그날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유족들도 어느 선에서는 가족들도 양보를 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과) 뜻이 합해지니까”라고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추기경이기에 앞서 국민으로서 정치권과 세월호 희생자 가족 사이에 신뢰가 구축되기를 바란다”고도 말했습니다. “(세월호특별법 여야 협상 등) 정치적 문제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지금은 고통받는 분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이 사고를 계기로 우리가 총체적으로 새로워져야 할 때”라고도 말했습니다.

지난 22일에는 추기경이 세월호 유가족 쪽의 요청에 따라 농성 중인 광화문 광장을 찾은 사실도 공개했습니다. 또 유민아빠가 입원중인 병원을 찾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가겠다. 교황님이 직접 위로하셨는데, 제가 뭐 더 중요하겠나?”라고 답했습니다. 한편 박 대통령과 25일 전화 통화에서 “세월호 참사 해법과 관련한 대화도 나눴느냐”는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즉, 추기경님 말씀은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종잡기가 사실 여러웠습니다. 주관이 없다고밖에 볼 수 없겠지요. 그렇다고 교황이 다녀가신 뒤여서 더 그렇다고 볼 수 만은 없습니다. 예전에도 그랬으니까요. 종교인이 역사와 시대성에 무지하거나, 목소리없는 빈자, 약자의 소리를 들을 감수성을 잃은 채 마비되면, 늘 만나는 권력자와 부자와 한통속이 되어 본분을 망각할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건조하게 사실만을 전달한 것은, 그나마 교황님을 따라 추모의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오신 까닭입니다. 본인도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광화문에서 농성 중인 희생자 유족들을 찾아 위로하기도 했고, 세월호 특별법 중재에 대해선 “신부들이 중재 노력을 하고 있다. 천주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가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도 추기경님도 고정된 바위덩어리로 보지는 않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고뇌하실 추기경님의 고뇌를 존중합니다. 부디 더 많이 고뇌해 주십시오.

조현 종교 전문기자 cho@hani.co.kr / 조현의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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