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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옴부즈만]춤추는 진영논리 “쫄지 마,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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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인가, 경향신문 머리면에 대통령의 사진이 크게 실린 것은. 1월31일자 1면에는 MB가 학교폭력 가해·피해 학생과 만나 대화를 나눈 일이 크게 보도됐다. 바로 옆에는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정강·정책 개정안에 박근혜식 중도 노선이 강화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그날 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어떤 친구가 경향신문을 절독하겠다며 올린 글을 보았다. 오늘 신문을 보니 경향이 새누리당과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우호적인 것 같단다.

명색이 옴부즈만이라 하여 신문에서 트집을 잡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댓글을 달았다.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가 되듯, 한나라당이 복지(정책) 하겠다니 뉴스 되는 겁니다.” “MB가 현장 가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 안 한 것도 드문 일입니다.”

인터넷식 어법으로 가볍게 응수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웠다. 정파적 입장에 따라 언론을 소비하는 방식이 이미 대중화되었는데 어쩌랴. 자초한 것이든 아니든 오늘날 우리 언론은 스스로 떠받드는 객관주의조차도 견지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것 같다. 더구나 단순한 객관주의에서 더 나아가 심층적인 정보와 의견을 제공해 독자의 판단을 돕고 공동체의 의사소통에 기여해야 한다는 당위는 더욱 힘들어 보인다.

경향은 총선을 앞둔 정당들의 쇄신과 변화에 주목했다. 1월31일자 3면에서는 새누리당의 기존 정강·정책과 개정안을 비교해 해설한 뒤, ‘세 가지 논란’ 기사에서 문제점을 언급했다. 다음날 1면에서는 “중심 없이 여론 좇아 표류한다”며 ‘좌로 좌로’ 쏠리는 정당들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어 6면에서는 정당들의 “닮은꼴 정치 담론은 철학 없는 집권욕의 부작용”이라고 썼다.

그런데 이들의 정책 변화가 참된 것인지를 알려면 실현 가능성 이전에 따져야 할 부분이 있다. 새누리당으로 치면 갖가지 복지정책을 툭하면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였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평가가 있느냐일 것이다. 민주통합당까지 포함해 각 정당들이 과거에 실제로 보였던 행태를 환기하고 비교해 주는 접근도 독자와 취재원(정당)의 소통에 기여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학교폭력 대책도 마찬가지다. 그의 ‘위센터’ 방문은 경향 ‘10대가 아프다’ 특별취재팀의 제안에 응한 것이라는데, 당초 그 기획은 학교폭력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15일 시작한 시리즈의 첫 기사인 ‘아이팟을 함께 묻어주세요’는 성적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한 학생 이야기였다. 연재 도중에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초점이 조금 옮겨갔지만, 원래의 기획은 출구 없는 무한경쟁교육에 갇힌 우리 아이들의 고통을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대통령이 학생들을 만나 해결 의지를 보여주는 일 못지않게, 교육을 이토록 황폐화시켜 놓은 교육당국에 반성을 촉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것은 ‘경쟁 일변도의 줄 세우기’만을 부추긴 MB 교육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는 일이 될 것이며,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당들이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정책에 우선순위를 두게 하고 이를 검증하는 일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더 귀기울여 전달했던 경향의 값진 노력이 이어져 결실을 보았으면 한다.

SNS 친구의 절독을 간신히 말린 다음날인 2월1일, 경향은 <나꼼수>의 비키니 시위 관련 논란을 정면으로 다뤘다. <나꼼수> 패널과 지지자들이 진보언론까지도 비판에 가세한다고 불만을 토로한 바로 그 기사다. 물론 비키니 시위 자체에 대한 것은 논점이 아니다.

경향의 뉴스 분석은 우선 <나꼼수>는 이미 주류가 됐다는 것이다(‘주류가 된 나꼼수, 시험대 오르다’). 지난해 11월 <나꼼수>가 민주언론상을 수상할 당시에도 경향은 “이제 공식 언론이 된 만큼 과도한 정파성이나 정제되지 않은 표현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썼다. 그러나 주류가 되었다고 해서 표현의 수위도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스스로 정하면 된다. 문제는 비키니 시위 관련 발언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표현이었냐는 것이다. 경향은 비키니 시위에 관한 “나꼼수의 성 인식이 문제”라며 명백한 성희롱으로 비판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문제의 발언에 마초적 맥락이 있고 이를 불쾌하고 수치스럽게 여긴 사람들이 있는 한 이 지적은 정당하다.

그날 SNS에서 더 많은 경향 비난 글을 보았다. 요약하면 “경향, 너마저도…”가 되는데, 대개가 이른바 진영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반응들이었다. 이번에는 댓글을 달지 않았다. 대신 경향 기사를 인용한 다른 글에 대거리를 했다. “쫄지마, 경향.”

진영논리가 난무하는 파편화된 공론장에서 ‘호오(好惡)가 시비(是非)를 대체’하려는 시대에 경향의 건투를 빌기 위해서였다.

<엄주웅 언론광장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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