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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상수의 내 인생의 책](5) 파우스트 -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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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우스트 | 괴테

경향신문

괴테의 <파우스트>는 젊은 날 나를 가장 매혹시켰던 책 중의 하나이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라는 말은 지금도 나를 분기시키고 숱한 영감을 자아내게 한다. 메마른 회색의 이론에 안주하기보다는 싱싱한 초록의 삶을 향해 자신을 던지라는 파우스트의 요구는 언제나 나의 가슴을 고동치게 했다.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젊음을 되찾아 싱그러운 삶을 안내받는 파우스트, 그리하여 순결한 처녀 그레첸과의 지순한 사랑을 맺는 파우스트는 휴머니즘적 표상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했다. 미래도 신도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앞에 전개되는 생생한 현실뿐이라고 역설하며 디오니소스적 삶을 추구한 니체적 모습과도 닮았다고 할까.

법대에 들어갔다가 고시를 포기하고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다시 복학하여 고시를 보기까지 숱한 방황 속에서 나를 지켜준 버팀목도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파우스트의 고뇌 어린 외침이었다. 삶에 있어서의 방황은 생의 다채로움이자 참된 자아를 찾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으려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그대의 것이 아니거든 보지를 말라. 그대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라면 보지를 말라. 그래도 강하게 덤비거든 그 마음을 힘차게 불러일으켜라.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파우스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천사들의 합창은, 처연한 삶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채로운 생을 추구하라는 신의 허락된 계시인지도 모른다. 대학 때 형법을 가르치시던 남흥우 교수님이 어느 날 칠판에 “혁명가는 로맨티스트다”라고 적고 나가셨다. 아마 그분도 <파우스트>의 애독자였으리라.

<이상수 | 전 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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