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간 상호존중과 배려가 해법… 자존감 심어줘야
'主敵 북한 아닌 간부' 뼈 있는 농담…군 수뇌부, 부하들과 소통 강조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군기를 잡으려고 구타나 가혹행위, 욕설을 포함한 인격 모독적인 언어가 필요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지금처럼 대물림되는 한 제2, 제3의 윤 일병과 같은 희생자가 언제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28사단 윤 일병 사망사건'을 비롯해 최근에 잇따라 발생한 병사들의 사건·사고로 드러난 군의 처참한 민낯에 대한 정두근(62) 예비역 중장(현 상호존중과 배려운동본부 총재)의 시선은 싸늘했다.
자발적 의지와 자긍심이 아닌 타율과 강제에 의한 이른바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윽박지르고 몰아붙이는 경직된 충성만으로는 군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육군 제6군단장과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등을 역임한 정 총재는 지난 2003년 32사단장으로 부임한 지 한 달 만에 '상호존중과 배려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불과 2주 사이에 구타 및 가혹행위 때문에 7명의 병사를 구속시키고, 10여 명을 영창에 보냈다. 또 관리소홀로 징계를 받은 간부를 비롯해 피 같은 자식을 믿고 맡긴 부모들까지 모두가 피해자라는 생각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구타나 가혹행위를 없애면서 화합하고, 단결된 부대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착안한 것이 '상호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다.
이를 위해 그는 선임병과 후임병 간에 '존칭어'를 쓰도록 했다. 또 경례를 할 때도 충성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좋은 하루 되십시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등 인사말을 서로 주고받을 것도 지시했다.
상호존중과 배려로 병영 문화를 바꾸자는 그의 신념에 대한 군 내부 반응은 극도로 냉소적이었다.
"사단장님 의도는 좋은데 안 될 것 같다", "정두근 장군이 군을 망치려 한다"는 등 부하들의 반발과 비아냥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특히 상급부대에서는 군기강 해이와 위계질서 문란 등을 우려해 중지하라는 지시가 있기도 했다.
존칭어를 쓰게 한 지 불과 1년 만에 형사처벌 건수는 66건에서 42건으로 줄어들었고. 병사들이 영창에 보내질만한 잘못을 저지른 횟수는 172건에서 128건으로 총 26%가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는 "머슴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을 때 비로소 자존감이 생긴다"며 "언어로부터 발생하는 갈등은 구타나 가혹행위 등 다양한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치료는 언어를 통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자발적 의지와 자긍심이 아닌 타율과 강제에 의해 수동적으로 근무하는 지금의 병영 문화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타나 가혹행위를 통해서 외형적으로만 '각 잡힌' 병영 문화와 모든 고통을 감수하라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자기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가 인정할 때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 도중 '우리의 적은 북한군이 아니라 간부'라는 뼈있는 농담을 던지면 군 수뇌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우리 군 수뇌부의 의식과 리더십이 70년대 수준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병사들의 지적 수준이나 신체 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변했지만 군 수뇌부들은 여전히 '토 달지 말고 하라면 하라'식의 70년대 일방적 소통만 강요하는 리더십에 머물고 있다"며 "군대의 계급은 거대한 조직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시스템인데도 불구하고, 계급이 사람의 기본권과 인격까지도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군 수뇌부에게 부하의 의견을 경청하는 소통을 주문했다.
그는 "군대는 계급사회로 상명하복이 중요하지만 특성을 잘못 이해해 부하의 건의사항이나 의견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무시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부하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지휘관은 부하들을 소극적이고 피동적으로 만들고, 결국에는 지휘관을 불신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경고했다.
sky032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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