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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4 (금)

[어수웅의 두근두근 magazine] 여행 기자는 휴가를 어디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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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여행 기자는 어디서 휴가를 보내느냐고.

이 난처한 대답을 쓰기 위해 제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풍경(風磬) 소리를 듣습니다. 휴가 때 하루 묵었던 안동의 한옥 고택 처마에 매달려 있던 풍경이죠. 왜 아시잖습니까. 붕어 모양 쇳조각이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시원한 소리를 내는. 소나무 숲을 쓸고 가는 바람 소리가 유난히 청량한 날이었습니다. 여섯 살 아이는 풍경이 빚어내는 소리가 신기한지 사진 찍고 녹음하느라 넋을 빼앗겼더군요. 녀석은 또 커다란 욕조에서 물장난을 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특이하죠. 고택에 최신 욕조라니.

제가 묵었던 고택은 안동의 '구름에'(gurume-andong.com )였습니다. 안동시와 SK행복나눔재단이 안동댐 수몰 지역의 고택들을 옮겨 일종의 '고택 리조트'로 변신시킨 곳이죠.

조선일보

‘구름에’의 연못과 정자. / 사진=어수웅


'전통의 보존' 혹은 '대기업의 사회 환원' 같은 의의와 가치는 사실 제 판단 기준의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고택과 한옥의 혼과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 혹은 직원 급여와 운영비 제외한 수익을 사회에 기부한다는 당위는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의무와 당위로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건 성인(聖人)에게나 가능한 일일 겁니다. 제 눈에는 둘 다 위선으로 보입니다. 도시의 자연 예찬론자들도 고치지 않은 시골집에서 일주일 이상을 견디기란 쉽지 않아 보이고, 반대로 최첨단 호텔에서도 이레 넘게 머물면 흙과 풀 냄새가 그리워질 거예요. '구름에'가 좋았던 이유는 그래서였습니다. 안락함과 쾌적함을 갖춘 예스러움이었거든요.

2주 휴가를 마치고 '주말매거진'도 돌아왔습니다.

이번 주 특집은 서울 연남동입니다. 주말매거진이 올해 연중 특집으로 삼고 있는 '서울의 골목길' 기획의 일환인데요. 저는 '연남동' 역시 안락함과 쾌적함을 갖춘 예스러움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신 트렌드가 아날로그 감성으로 표현되는 곳. 빛바랜 '난닝구'와 최신 스타일 '스냅백'이 뒷골목을 함께 누비고, 20대와 60대가 한 테이블 걸러 맥주잔을 기울이는 곳. 허름했던 골목은 이제 예약 없이는 찾을 수 없는 핫플레이스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주말, 상전벽해 연남동의 현재를 걸어보시길.

[어수웅 주말매거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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