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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한의사 강용혁의 멘털 동의보감]너무 신중한 것도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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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신중한 것도 병이다. 오래 고민해도 결론을 못 내릴 땐, 차라리 동전을 던져 선택하라. 이는 결코 인생을 대충 살자는 말이 아니다. 심사숙고했는데도 결론이 안 날 때는 나름 현명한 돌파법이다.

벌써 5개월째 두통으로 고생 중인 ㄱ씨. 머리도 멍해 직장에서 안 하던 실수가 잦아졌고 서류를 읽어도 이해가 잘 안된다. 게다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이인감까지 생겼다. 모든 증상은 타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뒤 시작됐다. 급여나 업무적성, 비전까지 꼼꼼히 비교했지만, 각기 장단점이 있어 지금껏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불면증으로 내원한 ㄴ씨. 몸이 안 좋아 한가한 부서에서 2년간 있었는데 승진이 힘들까봐 걱정이다. 반면 주요 부서로 옮기자니 일이 힘들까봐 고민이다. 두 사람 모두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수개월째 진만 빼고 있다.

고민했더니 ‘60 대 40’이었다면 애초에 선택은 쉽다. 그러나 오래 고민해도 답이 잘 안 나온다면 이익이 ‘50 대 50’인 경우다. 또는 ‘51 대 49’인데 다시 생각하면 금방 ‘49 대 51’이 되는 식이다. 더 유리한 선택이 무엇인지 현재로선 판단불가다.

이는 마치 바둑에서 시작 전 돌가리기와 유사하다. 흑돌과 백돌 중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만으로 대세가 결정되진 않는다. 흑이든 백이든 앞으로 한 수 한 수 최선을 다하는가에 달린 문제다. 그래서 시작도 못하고 진만 뺄 것이 아니라, 경건한 마음으로 동전을 던져 빨리 결정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이렇게 가볍게 선택해도 정작 큰 후회나 과오는 발생하지 않는다. 왜일까? 이미 양쪽 다 돌다리를 충분히 두들겨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황망하고 후회스러운 일들은 보통 방심할 때 터진다. 재물이나 사람을 잃고 화병을 얻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로 ‘확실하다’ 싶어 전혀 의심하지 않고 올인한 경우다.

평소 늘 긴장되고 조바심 나는 대목에선 이제 자신을 믿고 쉽게 쉽게 던져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반면, 강한 확신을 가졌던 부분을 더 의심해봐야 한다. ㄱ씨는 ‘남자는 가정을 안정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컸다. 어릴 때 아버지가 무능해 어머니가 가정경제를 책임지던 환경에서 형성된 콤플렉스다. 어머니가 힘들 때마다 어린 그에게 각인시킨 내용일 뿐, 앞으로 그가 살아갈 삶에 적용될 보편타당한 가치는 아니다. 오히려 이 대목을 크게 의심해야 한다. 이직이냐 아니냐, 어느 쪽이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ㄴ씨는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적 태도가 스스로를 못 살게 군다. 타이거 맘인 어머니가 주입시킨 가치관이다. 그가 정작 크게 고민해야 할 것은 ‘이 부서냐, 저 부서냐’가 아니다. ‘편하게 쉬고 여유를 갖는 건 사치이자 죄악’이라는 가치관이다. 엄마가 각인시켜 한 번도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과거 성장환경 속에서 주입된 가치만으로 일방통행을 하다보면, 결국은 한계에 부딪힌다. 이때 진짜 의심할 것과 신뢰할 것을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늘 조심하고 걱정하는 것은 의외로 나쁜 습관이 아니다. 자신을 믿고 조금 더 편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반면, 평소 갈등 없이 너무도 당연하다 여기던 가치들 중에 진짜 의심해야 할 것들이 존재한다.

☞ ‘한의사 강용혁의 심통부리기’ 팟캐스트 듣기


<강용혁|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닥터 K의 마음문제 상담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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