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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자기들 입맛대로 후보 내면 우린 무조건 찍어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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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야당 재보선 참패 후폭풍] 다시 가본 7·30 격전지/ 순천·곡성

“뇌물로 의원직 상실한 사람을 또…”

민생 등한시한 새정치 대한 원망도

“자존심이 밥 먹여준당가”

지역활성화 외친 이정현에 표 쏠려


“자존심 죽이고 (이정현 당선자를) 뽑은 거여. 자존심이 밥 먹여준당가. 현실이 밥 먹여주제.”

31일 전남 여수공항에서 순천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운전하던 강호식(가명·69)씨는 7·30 재보선에서 칠십 평생 처음 ‘1번’을 찍었다고 했다. “순천 경기가 바닥이여. 힘있는 이정현이는 머 한가지라도 똑부러지게 할 거 같응게 눈 딱 감고 찍은 거제.” 그의 말은 엄살이 아닌 듯했다. 여름휴가 시즌 절정기인데도 공항에서 순천을 향하는 버스 안에는 기자 혼자였다.

한 시간 동안 순천역 앞에서 손님을 기다렸다던 택시기사 강하원(62)씨도 “먹고사는 데 당이 무슨 소용이냐”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민주당’이라면 이름도 몰라도 찍어줬는데, 순천에는 결국 아무것도 안 생겼다”며 박근혜 대통령 측근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순천대 의대와 대기업 유치 등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고 호소한 이 당선의 선거 전략이, 민생을 등한시한 새정치민주연합에 실망해 있던 순천 주민의 마음속 ‘지역 장벽’을 허문 듯했다. ‘26년 만의 호남 지역구도 타파’라는 중앙정치의 호들갑과 달리, 순천 주민들이 이 당선자의 승리를 “뜻밖의 결과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결과”(공무원 허아무개씨)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오만한 공천’은 새정치연합의 마지막 버팀목이던 당원들마저 등돌리게 만들었다. 2008년 이후 고작 6년 사이에 열린 두번의 총선과 두번의 재보궐선거에 지쳐 있던 당원과 주민들은 2008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의원직을 잃은 서갑원 후보를 또다시 공천하자, 새정치연합 지도부에 폭발한 것이다. 이 후보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유세 때마다 “지역 주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며 민심을 뒤흔들었다. 결과는 9.1%포인트차 대승이었다. 옛 민주당 당원인 박아무개(52)씨는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새정치를 한다고 염병을 떨면서도 뇌물 먹어서 의원직을 상실한 서갑원이에게 또 공천을 줬다”며 “자기들 입맛대로 후보를 내면 우리는 무조건 찍어줘야 하냐. 해도 해도 너무해서, 보란듯이 1번을 뽑았다”고 말했다. 중앙시장에서 분식점을 하는 황수정(가명·51)씨도 “선거운동 기간에 이정현 후보의 팬은 떳떳이 말하고, 서갑원 후보 팬은 말도 못할 정도로 분위기가 야당에 나빴다”고 했다.

그러나 순천의 민심이 야당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다. 중앙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박한식(가명·52)씨는 “(남은 임기가) 2년도 안 되는 재보궐선거이기 때문에 부담없이 여당을 뽑았다”며 “중요한 건 다음 총선·대선인데, 그때 야당이 경쟁력 있는 인물을 내놓는지 일단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당원인 반아무개(56)씨도 “오늘 두 공동대표가 물러났으니 제대로 된 지도부를 뽑아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다만 “야당이 또다시 계파 싸움을 하며 허송세월하는 사이, 이 당선자가 착실히 일해서 재선에 성공한다면 야당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당선자는 당선 첫날부터 지역구 다지기에 들어갔다. 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이날 각 지역 당선자를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최고위원회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선거운동을 할 때처럼 새벽 3시부터 대중목욕탕, 순천역, 전통시장 등을 훑으며 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내일부터는 각종 단체를 찾아가고 제 공약도 구체적으로 정리하겠다. 서울에는 다음주에나 올라가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순천/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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