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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랜선효녀’의 트위터 ‘깽판’ 선거 운동 ‘듣보잡’ 아빠를 국회로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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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새정치 비호남권 유일한 당선자

박광온 당선자 딸 이메일 인터뷰


‘2030 젊은 유권자들에게는 ‘듣보잡’이나 다름없었던 정치인이 ‘트위터로 효도 한번 해보겠다’는 딸의 온라인 선거운동으로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더니 마침내 비호남에서 야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당선!’

이런 만화같은 스토리가 현실로 나타났다. 7·30 재보선 경기 수원정(영통)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얘기다.

박 당선자의 딸이 트위터에 ‘@snsrohyodo’ 라는 계정을 만들고 글을 올리자 트위터리안들은 열광했다. ‘랜선효녀’라는 일종의 애칭까지 생겼다. 다양한 정치 성향이 얽히고 설켜 있고 정치적 감수성이 몹시 민감한데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비판적인 성향이 강한 트위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딸 ‘랜선효녀’가 거부감없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겨레>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랜선효녀’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하루종일 트위터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뭘 잘하려는 것보다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이런 답도 있었다. “트위터라는 매체의 생리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반응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트위터가 선거에 미친 영향은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박씨가 트위터에 ‘SNS로 효도라는 것을 해보자’는 계정을 만든 것은 지난 16일이다. 그는 당시 “저는 부모님의 기대라는 것을 무참하게 깨부수며 살고 있는 슈퍼 불효녀입니다만 지난 선거 때 몇몇 후보님들의 자제분들이 SNS를 통해 글을 쓰시는 걸 보고 ‘나도 글을 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더랬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는 목적에 대해 “오로지 머리가 크고 못생겨서 유명해지지 못한 박광온씨가 트위터에서나마 유명해지길 바라며 트잉여인 딸이 드립을 쳐 드리기 위해 만들어진 계정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박씨는 “당선과 낙선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별 기대나 생각이 없었다. 되면 되고 안 되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라고 밝혔다.

박씨는 아버지를 미화하거나 좋은 말로 포장하려 하지 않았다. 박씨는 박 의원에 대해 ‘머리가 크다’, ‘못 생겼다’, ‘도덕교과서 같고 재미가 없다’고 썼다. “얼마나 깽판을 쳐야 아버지가 트위터에서라도 유명해질 수 있을지 고민(7.16)”한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박 의원의 보좌관으로부터 ‘트위터를 하지 말라’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선거 운동에 되레 악영향을 끼칠까 염려해서였다. “방금 전에 보좌관한테 트위터하지 말라고 전화받음 ㅋㅋ. 보좌관님 고작 전화로는 저의 온라인 효도를 막을 수 없습니다.(7.16)”

보좌관들의 우려와 달리 트위터에서는 박씨의 솔직한 ‘드립’ 하나하나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박광온씨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도덕교과서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재미없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도덕과 재미가 함께 갈 수는 없으니까요...대신 제가 웃기니 된 것 같음(7.16)”, “깨끗한 선거의 첫걸음, 깨끗한 머리크기 측정에서 시작됩니다(7.17)” 등 아버지를 디스(비하)하는 박씨의 글은 오히려 누리꾼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트위터에서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제3자’인 것처럼 화법을 쓴 것처럼, 실제 선거운동 현장에 나타나지 않고 ‘그림자 선거 운동’을 한 것도 주효했다. 박씨는 선거일 직전 휴가를 냈지만 박 의원의 유세현장에 동행하지는 않았다. 다만 박 의원이 출마한 수원 영통구 곳곳을 홀로 돌아다니는 ‘영통대모험’을 시작했다. 전남 해남 출신으로 연고가 없는 수원 영통에 전략 공천된 박 의원에게 향하는 부정적인 여론을 인식한 듯 영통의 이름난 맛집과 영통에 있는 대학교, 공원 등을 일일이 답사하며 지역구를 샅샅이 훑었다.

“박광온 후보와 저는 부녀지간이지만 가치관도 지향하는 바도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늘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온 딸을 나무라는 법 한 번 없이 믿고 지켜봐 주셨던 아버지가, 생전 처음으로 어떤 목표를 향해 고집 있게 나아가는 모습을 봤습니다”라고 박 의원에 대해 쓴 글이 더욱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박씨는 당선이 확정된 뒤 올린 글에서도 박 의원에게 영통을 위한 의원이 되어 달라고 주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박광온이 [영통]의 국회의원임을 기억해 주세요. 아버지가 가족에게 좋은 것만 주려고 하셨듯 영통에도 좋은 것을 주시고, 아버지가 저희 이야기에 늘 귀기울여 주셨듯....영통구민 한 분 한 분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국회의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7.31)”

박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할 줄 아는 것을 총동원했다”고 했다. 또 “아무래도 짬도 안 되는 것이 종일 트위터나 하고 월차를 몰아 쓰는 바람에 조만간 회사에서 잘릴 거 같다”고 썼다. 그리고 박씨의 계정 이름은 ‘예비 백수’로 바뀌었다. 박씨는 선거운동에 썼던 이 계정을 곧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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