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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세월호 100일 / ③ 엄마 100명에게 길을 묻다] "학교생활 힘들다던 아들의 카톡… 나만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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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학생 엄마 4人의 이야기]

"맞벌이로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와 대화 많이 못한게 恨"

"정말 잠깐만이라도 아이 되돌려 보내준다면 원없이 안아주고 싶어"

"열일곱, 열여덟에 산업체 학교에서 일하면서 공부했어요. 내 자식은 그런 고생 안 하고 좀 더 배우고 편하게 살았으면 했지요. 어린 아이를 할머니 댁에 맡겨두고 기를 쓰고 맞벌이를 했습니다. 아이가 가고 난 뒤에야 그렇게 산 걸 후회했어요."

마지막 남은 세월호 실종자 10명 중 한 명인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박영인군. 영인이 엄마 김선화(44)씨는 "영인이가 커서도 일을 하느라 장래 희망이 뭔지,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지에 대해 대화를 못 나눈 게 한이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얼마 전까지도 스마트폰이 없었다고 했다. 아들에겐 일찌감치 최신 스마트폰을 사줬지만, 자신은 구식 폴더폰을 썼다. 세월호 사고 이후 처음으로 아들의 카카오스토리에 들어가 본 엄마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폴더폰으로는 들여다볼 수 없었던 그곳에서 영인이는 중학교 때부터 최근까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생일이 빨라 학교에 일찍 들어갔는데 그 때문에 적응을 못했던 건지…. '내가 엄마 맞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김씨는 "아들이 떠나고 나서야 그걸 알게 된 게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조선일보

세월호 참사 101일째를 맞은 지난 25일 오전,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는 단원고 실종 학생 어머니 3명이 체육관 주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2학년 6반 박영인군·남현철군 어머니, 2반 허다윤양 어머니. 같은 시각 3반 황지현양의 어머니는 실종된 딸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겠다며 도시락을 싸들고 팽목항으로 향했다. /이덕훈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 101일째인 지난 25일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만난 4명의 단원고 실종 학생 어머니들은 "자녀와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 아프다"고 했다. 수염이 거뭇거뭇 난 아들을 "예쁘다"라고 말하는 2학년 6반 남현철군의 엄마 박모(40)씨는 올해 초 아들에게 처음 면도하는 방법을 알려준 게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수학여행 가는 날 현철이가 아침에 면도를 하다가 입가를 살짝 베였어요. 혼자 면도하는 걸 보며 '벌써 어른이 됐구나' 하는 실감이 나 '에이~ 좀 똑바로 하지' 이렇게 말했어요. 일상에서 아들과 함께 했던 그런 사소한 일들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현철이 엄마는 "정말 잠깐만이라도 현철이를 되돌려 보내준다면 원 없이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엄마들끼리 '나는 이건 못해줬는데 너는 이걸 해줬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위로하는 거예요."

엄마들의 가슴에는 아직도 분노가 남아 있었다. "조선일보가 설문한 100명의 엄마는 팬티 바람에 탈출하는 선장을 보고 가장 분노한다고 했다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선수(船首) 부분만 남아서 배가 바닷속으로 잠길 때 환장할 것 같았어요. 그때 크레인으로만 잡아줬어도…." 한 엄마가 말했다.

실종 학생 엄마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림뿐"이라고 했다. 정부가 말하는 '국가 대개조', 정치권의 특별법 논란에 대해 "우리 아이를 찾는 것 말고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아이를 잃고 난 뒤 얻은 깨달음을 말했다. 2학년 2반 허다윤양의 엄마 박은미(44)씨는 "정말로 대한민국이 바뀌려면 애를 키우는 엄마들이 자식을 정직하고 바르게 키워서 어떤 불의에도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키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현철이 엄마는 "얼마 전 뉴스를 보니 대학입시 설명회장에 자리가 없어서 복도에까지 엄마들이 쭈그려 앉아 있더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가 난 뒤 엄마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던데 정말로 바뀐 게 맞는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저도 이번 일을 겪지 않았다면 내년쯤 그 자리에 있었겠지요. 엄마·아빠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으니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행복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길로 가서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대화가 중요해요."

2학년 3반 황지현양의 엄마 심명섭(49)씨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멀리서 와서 새우잠 자며 그분들이 얼마나 피로하시겠어요. 내 자식이 이런 일이 없었다면 저 역시 관심을 가졌겠나 싶어요." 이날 오전 8시쯤 지현이 엄마는 도시락을 싸들고 팽목항으로 갔다. 100일 넘게 생사를 알 수 없는 딸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말했다. "힘들고 지치지만 밥도 챙겨 먹고 잠도 자고 있어요. 밥이 넘어가서 먹고, 잠이 와서 자는 게 아니라 내가 건강해야 내 손으로 우리 아이 데려갈 수 있으니까요."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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