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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난 뒤늦게 유행 쫓는 ‘트렌드 하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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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루나 파크 옷걸이 통신’ 펴낸 홍인혜

24살에 탄생한 만화일기 속 루나

여성독자 공감대 탄탄 8년째 인기

“뭐 입지 고민하는 우린 패션피플

깨달음 주고받는 친구 같았으면”


2006년 ‘루나’는 스물넷이었다. “아직 아이라인도 못 그리고 어른 글씨도 못 쓰고 커피는 여전히 쓰기만 한데 대리가 되어버”린 직장인 홍인혜씨의 손끝에서 ‘루나’가 탄생했다. 이화여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광고회사 티비더블유에이(TBWA)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한 그는 퇴근하고 녹초가 된 몸으로 밤이면 ‘루나’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 일기를 써내려갔다.

월요일이 두려운 ‘먼데이 포비아’이자 “고기 녹이고 있다”는 엄마의 문자에 광속으로 퇴근하는 ‘어른아이’ 같은 그의 진솔한 고백에 20대 여성 독자들은 깊이 공감하며 환호했다. 홈페이지(lunapark.co.kr) 이름인 ‘루나 파크’는 그들만의 안식처였다.

어느덧 루나는 서른두살.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20대 중반을 넘어서며 “나이의 압박, 경기의 압박, 스케줄의 압박”을 느끼며 ‘회피 뉴이어’ 하는 나이가 됐다고 푸념(<루나파크 사춘기 직장인>)하더니 20대 후반에는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수많은 여성들이 ‘공부할까 일할까 여행갈까 결혼할까’를 고민한다는 바로 그 시점에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 루나에게 팬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다.

최근 <루나 파크 옷걸이 통신>을 펴낸 홍 작가를 만난 곳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어느 카페였다. 지난 17일,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습한 날.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생머리를 뒤로 넘기는 모습에서 그가 아이 테를 벗어버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만화 속 루나의 외모는 그대로인데 저만 나이 들어가니 이젠 사진 찍기도 쑥스러워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1년 동안 영국, 스페인 등 여러 곳을 여행한 뒤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앞으로 매일매일이 새삼스러운 여행자처럼 살아가겠다고 결심했어요. 운좋게 다니던 광고회사에 재입사하게돼 하는 일은 같지만 그 외에는 모든 면이 달라졌습니다.” 만화에 자주 등장해 루나파크 팬들에게 너무도 친숙한 ‘엄마’로부터도 독립했다. 시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운동도 열심이다. “불가사의한 의욕이 뻗쳐서” 시작한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패션 관련 연재는 이렇게 책이 됐다.

패션 만화를 그리며 그는 “매일 아침 첫 고민이 ‘오늘 뭐 입지?’인 우리 모두가 패션 피플”이라 정의했다. 비록 스키니진이 뜬다고 할 땐 비웃다가 유행이 끝날 즈음에 예뻐 보여 결국 사고 마는 ‘트렌드 하수도, 유행의 수쳇구멍’이고 택배 포장을 가위로 자르다가 옷까지 자르고는 눈물짓지만 말이다. “매일 시간을 들여 자신을 꾸밀 수 있는 이 일상이 참 고맙고 뿌듯하다고 생각”한다니 ‘언니’의 여유가 느껴진다.

“네이버 연재를 하면서는 혹시 내가 나이 들어가면서 10대, 20대 젊은 독자에게는 공감을 받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돼 주제 선정에도 신경을 썼다”고 한다. 덕분에 루나파크를 안식처 삼는 팬 층이 두꺼워졌다. 예전 ‘20대 팬’들은 같이 나이 들어 30대가 됐고, 같은 30대로서 이제는 ‘회사에선 차장님, 집에서는 결혼 압박’이 일상이 된 작가의 만화를 보며 또 깊이 공감한다. 힙합 스타일이 유행했던 90년대, 커다란 교복 치마가 유행했던 추억에 함께 젖어들고 내 패션에 대한 ‘최대 독설가’였던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는 대목에선 울컥하기도 한다. 10~20대 팬들도 루나의 ‘다이어트 말아먹기’ 패턴 분석, 옷장에 늘 입을 옷이 없는 원인 분석 등 다양한 ‘자학 개그’에 킥킥거린다.

“루나가 독자들과 함께 ‘아, 내가 그랬지’ 혹은 ‘아,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란 즐거운 깨달음을 주고받는 친구 같은 존재로 영원하길” 바란다고 루나, 아니 홍인혜씨는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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