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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맹렬한 싹쓸이, IT씨앗 짓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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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기자] 콘텐트 시장은 게임으로 쏠렸고, 유통 채널은 카카오가 장악했다. 안드로이드는 국내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독점했다. IT강국인 대한민국이 애용하는 플랫폼이 특정 서비스나 기업에 치우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다양한 서비스가 자유롭게 경쟁해야 형성하는 생태계에 쥐약이다. IT강국의 씁쓸한 현주소를 살펴봤다.

CBSi-더스쿠프

IT강국인 대한민국의 생태계에 쏠림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생태계를 이루는 근간인 플랫폼이 특정 서비스나 분야에 치우쳐서다. 특히 콘텐트ㆍ유통채널ㆍ운영체제(OS)는 일부 서비스가 독점한 상태다. 대한민국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모바일 콘텐트는 단연 '게임'이다. 앱마켓 분석사이트 앱애니에 따르면 전체 디지털 콘텐트 지출의 92.1%는 게임에서 발생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게임이 전체의 5.27%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2위인 만화(웹툰)가 1.98%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모바일 시장에서 게임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문제는 국내 시장의 경우 게임의 비중이 지나치다는 거다.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게임 의존도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국내 모바일 앱 게임의 비중은 21.6%로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인구 대비를 고려한다면 한국의 게임 의존도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게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된 이유는 뭘까. 업계에서는 '돈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으면서 결제가 꾸준히 이뤄지는 콘텐트가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투자나 지원도 게임에 쏠린다.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가 올 3월 투자한 5개의 업체 중 4곳이 게임업체였다. NHN엔터테인먼트와 네오위즈게임즈는 각각 2000억원, 500억원을 투자해 모바일 게임업체를 키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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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게임시장으로 자본이 집중되면서 다른 카테고리의 앱이나 콘텐트의 환경은 상대적으로 투자가 소홀하다. 특히 장기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플랫폼이나 기술을 갖고 있는 벤처기업은 소외받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 이득을 취하면 누군가는 잃는 시장의 논리가 모바일 시장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사실이 있다. 모바일 앱 게임이 콘텐트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사용자 충성도는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바일 앱 시장조사기관 서브에 따르면 무료게임을 설치한 사용자의 45.5%는 4회 이하만 콘텐트를 실행했다. 설치된 모바일 앱 게임의 19.3%는 단 한번만 실행되고 사용자들에게 잊혔다. 이런 현상은 앱 설치 후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하게 나타난다. 앱 설치 후 지속률은 1일 후 33.9%, 7일 후 16.4%, 30일 후 5.5%에 불과했다. 전체 66.1%의 사용자는 모바일 앱 게임을 설치한 후 24시간 이내에 실행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시장경쟁이 치열한 카테고리일수록 이런 현상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시장조사기관 로컬리틱스의 자료를 살펴보면 앱 시간차와 사용자의 앱 유지율 간의 상관관계가 카테고리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전체의 84.3%가 평균적으로 앱 설치 후 7일이 지나면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 그중 엔터테인먼트 73.6%, 게임 71.2%로 경쟁이 치열한 카테고리의 콘텐트일수록 수치가 높았다. 반면 뉴스, 건강 관련 생활 모바일 앱은 각각 58.9%, 61.4%로 조사됐다.

건강한 생태계 형성하는 데 치명적

이는 일부 특정 모바일 게임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부 모바일 게임을 유통하는 채널이 '카카오 게임하기'로 획일화됐기 때문이다. 국내 모바일 앱을 유통하는 채널도 특정 기업에 종속된 것이다. 모바일메신저 카카오는 카카오 게임하기 론칭 후 모바일 게임시장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올 5월 기준으로 구글의 플레이스토어 랭킹에서 누적 다운로드 1000만건 이상을 기록한 무료게임 중 상위 10위에 한번이라도 등재된 게임 비중은 66%에 달한다. 모두 카카오 게임하기를 통해 유통됐다. 덕분에 애니팡, 다함께 차차차, 윈드러너, 몬스터 길들이기, 쿠키런 등이 국민 게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93%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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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서비스가 시장을 독점하면 부작용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카카오 게임하기도 예외가 아니다. 우수한 콘텐트일지라도 카카오톡 게임하기에 입점하지 못하면 사용자들이 접할 수가 없다. 입점 기준의 공정성까지 논란이 일면서 비슷한 종류의 캐주얼 게임만 살아남은 것도 카카오 게임하기 론칭 후 나타난 현상이다. 카카오 게임하기가 모바일 게임의 흥행카드가 돼버린 탓에 한정된 환경에서 경쟁하고, 콘텐트의 생명주기가 지나치게 짧아졌다. 서비스가 시장을 독점했다고 해서 수익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카카오 게임하기는 카카오톡의 영향력에 비해 수익창출력이 크지 않은 편이다. 현재 국내 시장은 유료 앱의 매출 비중이 40.8%로 가장 크다.

반면 앱 내 결제는 20.4%를 기록했다. 카카오 게임하기의 영향으로 아이템을 구입하는 행태를 고려하면 앱 내 결제가 성장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앱 내 결제 비율은 2011년 20.8%에서 지난해 20.4%로 감소했다. 게임이 국내 콘텐트 시장을, 카카오가 국내 유통채널을 독점했다면 안드로이드는 국내 스마트폰 OS 시장을 장악해버렸다. 이 역시 다른 나라보다 국내 시장의 정도가 심하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국가별로 안드로이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 56.0%, 일본 59.0%인데 비해 한국은 93.5%에 이른다. 앱개발사 개발자는 "일부 앱의 경우 아예 iOS용으로 출시하지 않을 정도로 안드로이드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현상은 iOS 우선 정책을 펴는 해외 개발자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해외의 개발자 중 안드로이드 우선 정책을 펴는 개발자는 27%에 불과하다. 반면 iOS를 우선 개발하는 개발자는 35.0%에 이른다. 이유가 있다. 모바일 앱 수익 비중이 안드로이드(30.07%)보다 iOS(52.1%)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알짜배기는 iOS라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앱마켓 매출을 살펴보면 구글 플레이스토의 비중이 49.1%로 가장 높지만, 수익은 분산돼 있다. 그중 12.4%가 이동통신사, 제조사, 대형포털사 등에서 운영하는 독립 스토어에서 발생한다. 이러니 iOS의 수익보다 낮을 수밖에 없는 거다.

서비스와 생태계 동반성장 이뤄야

공교롭게도 특정 서비스나 분야에 치우친 현상은 국내 시장에서만 볼 수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디지털 콘텐트 소비 파워를 보유한 한국의 이면인 셈이다. 콘텐트 지출이 적극적인 소비자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특정 서비스와 카테고리를 제외하면 생존하기 어려운 게 IT강국인 대한민국의 현실이 것이다. 이는 건강한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치명적이다. 생태계를 이루는 근간은 다양한 플랫폼과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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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생태계를 이루기 위해선 어떤 요소를 갖춰야 할까. 전문가들은 세가지를 꼽는다. 첫째 다양성이다. 생태계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공정하고 자유롭게 경쟁해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상호작용이다. 카카오 게임하기와 같이 유통채널이 획일화되면 생태계는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서비스는 하나의 특성을 보일 것이고 상호작용은 저하되게 마련이다. 지속 성장성도 생태계를 이루는 핵심 지표다.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개선돼야 생태계도 건강하다. 생태계가 취약한 IT강국인 대한민국이 새겨들어야 할 점이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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