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끊겨봐야 안다, 원시 섬 울릉도의 보석같은 인심
한국 어학연수 중이던 2002년(왼쪽 사진)과 한국에서 취직하고 첫 휴가를 받은 2011년(오른쪽), 두 번에 걸쳐 울릉도에 갔다. 섬은 때 묻지 않은 예전 모습 그대로 나를 반겨 주었다. |
한겨울은 온통 은세계 … 강렬한 석양에 압도
한국에 머문 지 어언 3년 반. 취미가 여행이라고 밝히면 항상 똑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그때마다 내 대답은 초지일관 “울릉도!”였다.
내가 처음 울릉도를 알게 된 건 2002년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다. 한국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나는 대학 게시판에서 ‘울릉도 캠프’의 안내문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곧바로 참가 신청을 했다. 대학생 참가자 60명 중에서 외국인은 내가 유일했다.
“와.” 온천지가 눈으로 뒤덮인 울릉도는 말 그대로 은세계였다. 먼 옛날 자연의 시계가 멈춰버리기라도 한 듯이 때묻지 않은 원시적인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백설을 머금은 성인봉에 올라 해돋이를 봤고, 해안선을 따라 거닐며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석양을 감상했다. 특히 울릉도의 석양은 압권이었다. 강렬한 색감과 규모에 우리는 완전히 압도됐다.
알싸한 호박막걸리 … 친절한 배려는 덤
8년 뒤 나는 한국에서 취직을 했다. 그동안 울릉도를 잊은 적이 없던 터라, 휴가를 받자마자 울릉도로 향했다. 이번에는 며칠 여유를 갖고 일본인 여자 친구와 둘이서 느긋하게 돌아보기로 했다.
끼니때가 되어 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 불쑥 들어갔다.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손님은 대부분 섬 주민인 것 같았다. 섭섭한 얼굴로 돌아서려 했더니 손님들이 갑자기 부산하게 움직였다. 앉은 자리를 좁히더니 “여기 앉으라”고 권했다. 거침없는 친절에 우리도 사양 않고 끼어 앉았다.
어깨를 맞대고 가족과 식사를 하듯이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등 뒤에서 누군가가 잔을 건넸다. “아가씨들도 한 잔 하지!” 잔 속에는 울릉도에서 알아주는 호박 막걸리가 황금빛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주민들과 다 같이 웃으며 “건배”를 외쳤다. 목구멍에서부터 알싸한 취기가 느껴졌다. 덕분에 식당의 훈훈한 분위기에 허물없이 녹아들 수 있었다.
울릉도는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명승지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중·장년층으로 이뤄진 단체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큰 소리로 웃고 쾌활하게 이야기하고 있어 존재감이 대단했다. 여럿이 함께 친분을 나누며 여흥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조금은 방해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 밤 여관에 돌아간 우리는 주인 아저씨의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숙박 연장 비용을 깎을 수 있었다. 같은 여관에 묵은 아주머니들과 밤새 연애 상담을 하며 이야기꽃도 피웠다. 새삼 한국인의 깊은 정을 느꼈다. 이 정 때문에라도 나는 울릉도, 그리고 한국을 다시 여행하게 되겠구나. 깊어가는 울릉도의 차가운 밤, 나는 그렇게 확신에 가까운 예감을 했다.
정리=나원정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무로야 마도카(室谷まど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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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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