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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외국인이 반한 한국 (43) 일본인 무로야 마도카씨의 파란만장 울릉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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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끊겨봐야 안다, 원시 섬 울릉도의 보석같은 인심

한국 어학연수 중이던 2002년(왼쪽 사진)과 한국에서 취직하고 첫 휴가를 받은 2011년(오른쪽), 두 번에 걸쳐 울릉도에 갔다. 섬은 때 묻지 않은 예전 모습 그대로 나를 반겨 주었다.


한겨울은 온통 은세계 … 강렬한 석양에 압도

한국에 머문 지 어언 3년 반. 취미가 여행이라고 밝히면 항상 똑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그때마다 내 대답은 초지일관 “울릉도!”였다.

 울릉도는 한국에서 여덟 번째로 큰 섬이다. 경북 포항에서 배로 약 3시간 거리다. 왕복이 만만찮아서일까. 높은 명성에 비해서는 실제로 가본 사람이 적은 편이다.

 내가 처음 울릉도를 알게 된 건 2002년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다. 한국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나는 대학 게시판에서 ‘울릉도 캠프’의 안내문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곧바로 참가 신청을 했다. 대학생 참가자 60명 중에서 외국인은 내가 유일했다.

 한밤중에 서울에서 출발해 버스와 배를 갈아타고 반나절 만에 섬에 도착했다. 비틀거리며 선착장에 내렸을 때는 정말이지 힘들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자 온몸의 피로를 날려 버릴 만한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와.” 온천지가 눈으로 뒤덮인 울릉도는 말 그대로 은세계였다. 먼 옛날 자연의 시계가 멈춰버리기라도 한 듯이 때묻지 않은 원시적인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백설을 머금은 성인봉에 올라 해돋이를 봤고, 해안선을 따라 거닐며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석양을 감상했다. 특히 울릉도의 석양은 압권이었다. 강렬한 색감과 규모에 우리는 완전히 압도됐다.


알싸한 호박막걸리 … 친절한 배려는 덤

8년 뒤 나는 한국에서 취직을 했다. 그동안 울릉도를 잊은 적이 없던 터라, 휴가를 받자마자 울릉도로 향했다. 이번에는 며칠 여유를 갖고 일본인 여자 친구와 둘이서 느긋하게 돌아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찾아간 울릉도는 좀 더 활기차 보였다. 섬 중심부에는 가게가 여럿 들어서 있었다. 관광지를 오가는 교통편도 훨씬 좋아졌다. 그러나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천혜의 자연은 예전 그대로였다. 산골짜기에는 알록달록 곱게 옷을 갈아입은 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단풍을 감상하며 상쾌한 공기를 실컷 들이마셨다.

 끼니때가 되어 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 불쑥 들어갔다.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손님은 대부분 섬 주민인 것 같았다. 섭섭한 얼굴로 돌아서려 했더니 손님들이 갑자기 부산하게 움직였다. 앉은 자리를 좁히더니 “여기 앉으라”고 권했다. 거침없는 친절에 우리도 사양 않고 끼어 앉았다.

 어깨를 맞대고 가족과 식사를 하듯이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등 뒤에서 누군가가 잔을 건넸다. “아가씨들도 한 잔 하지!” 잔 속에는 울릉도에서 알아주는 호박 막걸리가 황금빛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주민들과 다 같이 웃으며 “건배”를 외쳤다. 목구멍에서부터 알싸한 취기가 느껴졌다. 덕분에 식당의 훈훈한 분위기에 허물없이 녹아들 수 있었다.

 울릉도는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명승지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중·장년층으로 이뤄진 단체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큰 소리로 웃고 쾌활하게 이야기하고 있어 존재감이 대단했다. 여럿이 함께 친분을 나누며 여흥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조금은 방해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울릉도를 떠나기 위해 정해진 배 시간에 선착장에 나간 친구와 나는 갑자기 배가 못 뜬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청난 좌절감에 빠졌다. 기상 상태가 악화돼 영원히 섬을 못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그때까지의 인생을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밤 여관에 돌아간 우리는 주인 아저씨의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숙박 연장 비용을 깎을 수 있었다. 같은 여관에 묵은 아주머니들과 밤새 연애 상담을 하며 이야기꽃도 피웠다. 새삼 한국인의 깊은 정을 느꼈다. 이 정 때문에라도 나는 울릉도, 그리고 한국을 다시 여행하게 되겠구나. 깊어가는 울릉도의 차가운 밤, 나는 그렇게 확신에 가까운 예감을 했다.

 정리=나원정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무로야 마도카(室谷まどか)

1981년 일본 출생. 대학에서 국제개발을 전공하며 한국의 지역문화를 연구했다. 2002년 처음 한국에 와서 6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했다. 한국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격차에 충격을 받고 일본으로 귀국했지만, 한·일 문화교류에 대해 뜻한 바가 있어 2008년 다시 한국에 왔다. 부산국제영화제·한일축제한마당 등에서 스태프로 참여했고, 현재 한국관광공사 해외스마트관광팀에서 일본어 홈페이지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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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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