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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힘빠진 미국과 멀어지는 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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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외교관 사건, 브라질은 도청 파문 후 주변국 협력 도모

지난 2월 인도에서는 우파 야당인 국민당(BJP) 지도자 나렌드라 모디의 연설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TV로 시청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돌았다. 모디의 지지자들이 만든 합성사진이었다.

사진에는 “오바마도 모디의 말에 귀기울인다”는 설명이 붙어 있지만 현실은 사뭇 다르다. 미국과 맹방이던 인도는 워싱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있고, 두 나라 관계는 지난해부터 급격히 악화됐다. 외교관 체포 사건으로 시작된 두 나라 간 외교전은 인도 주재 미국 대사의 사임까지 불렀다. 다음달까지 치러지는 인도 총선에서 힌두극우주의자인 모디가 승리하면 관계가 더 나빠질 것은 뻔하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모디는 “유엔 회의 때문에 뉴욕에 가는 일을 빼면 따로 미국에 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도뿐 아니라 브라질·러시아·중국 등 브릭스(BRICs) 국가들과 미국의 사이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재집권 이래 줄곧 사이가 나빴던 러시아나 잠재적 경쟁상대인 중국은 논외로 하더라도, 인도·브라질과도 눈에 띄게 틈이 벌어졌다. 미국과 브라질의 관계에는 지난해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금이 갔다. 미 국가안보국(NSA)이 브라질 국영석유회사를 상대로 스파이짓을 하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 남미 정상들 간 통화까지 도청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올 들어 베네수엘라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해졌는데, 미국이 미주기구를 통해 개입하려 하고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을 뒤흔들려 한 것도 역내 중심축인 브라질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원인이 됐다.

이런 흐름 밑에는 국제정세의 구조적인 변화가 깔려 있다. 시리아 내전과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이 유일강국으로서의 역할을 계속할 의지도 돈도 힘도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브릭스 국가들은 이제 미국 눈치를 보기보다는 각자 주변 지역에서 영향권을 넓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인도 전문가인 파이낸셜타임스의 에드워드 루스는 21일자 칼럼에서 “미국이 재정난 속에서 점점 더 국내 문제에 집중하는 한, 브릭스는 미국 대신 자기들끼리의 협력을 강화하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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