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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해외에 있는 문화재 무조건 환수, 능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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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준 국외문화재재단 이사장

일부는 세계 유명 박물관에 전시

한국 알리는 데 활용 바람직

돌려받을 때도 서두르지 말아야

요란 떨면 나머지는 숨어버려

중앙일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안휘준 이사장. “한국문화를 알리는데 효과적이라면 문화재를 해외에 두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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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차례로 반환 협상 20년 만인 2011년 프랑스로부터 되찾은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 정부가 2008년 재미교포로부터 사들인 대한제국 황제어새. 지난해 초 절도범으로부터 압수한 금동관음보살좌상(서산 부석사 불상·오른쪽). [김성룡 기자], [중앙포토]


지난 14일 미국이 대한제국 국새(國璽) 등 국보급 문화재 9점을 반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에 따른 선물이다.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착잡하다.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 는 15만 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국새는 불법 유출 문화재이기 때문에 반환이 수월했다. 대부분의 경우 반환이 훨씬 까다롭다. 외교 행사 때 선물 받는 식으로 과연 15만 점 중 몇 점을 더 돌려받을 수 있을까.

2012년 출범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정부의 해외 문화재 반환 공식창구다. 낭보가 전해진 다음날인 15일 재단은 두툼한 문화재 도록 세 권을 공개했다. 지난해 미국·네덜란드 등 현지 조사를 통해 해외의 우리 문화재 2000여 점을 집계한 결과물이다.

재단 안휘준(74) 이사장을 만났다. 16일 서울 통일로 사무실에서다. 그는 대뜸 “모든 문화재의 환수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문화재 환수를 위해 만들어진 정부 기관이 환수에 반대하다니….

-무슨 뜻인가. 설명이 필요하다.

“환수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외국의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봐라. 중국이나 일본에 비교하면 한국은 공간이나 소장품 규모에서 말할 수 없이 초라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걸 가슴 아파하면서도 정작 그 공간을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로 채워 한국 문화를 알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내로 들여오는 것보다 외국 현지에 두는 게 더 효과적인 활용방법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합법적으로 유출된 경우 찾아올 마땅한 방법이 없기도 하다. 프랑스가 가져간 외규장각 도서를 보자. 불법 유출이 명백한데도 찾아오는 데 애먹지 않았나.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도 생각하자는 얘기다.”

-그럼 어떤 문화재를 찾아와야 하나.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나 미술사 연구를 위해 꼭 필요한 경우는 환수해야 한다.”

-그런 해외 문화재는 얼마나 되나.

“전체 15만6000점으로 추산되는 해외 소재 문화재 중 지금까지 약 20%(3만3800점)에 대한 현지 조사를 마쳤다. 대부분 합법 유출 문화재이기도 하다. 문제는 공식 추산된 것보다 훨씬 많은 해외 문화재가 존재하리라는 점이다. 특히 중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가 엄청날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 기록을 보면 막대한 숫자가 건너갔다. 한데 중국은 실태 조사 자체가 어려운 나라다. 결론적으로 해외 문화재의 실태 파악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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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반환에 있어서 원칙이 있다면.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문화재와 관련된 불법행위는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가령 지난해 처리 문제를 두고 시끄러웠던 서산 부석사 불상의 경우 일본에 돌려주는 게 맞다고 본다. 문화재청은 불법은 안 된다는 원칙을 지켜야 했다. 원칙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다 한국 사법부가 일본 측이 불상을 합법 유출한 사실을 증명할 때까지 일본 반환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리자 더는 손을 쓸 수 없게 됐다. 그 판결로 인한 문화재 분야의 피해는 막심하다. 일본 문화재계 전체가 반한(反韓) 분위기로 돌아섰다. 반환과 관련 없는 교류 행사에도 일본 전문가들이 오려 하지 않는다. 꼭 가져와야 하는 문화재가 앞으로 일본에서 발견될 경우 한국 정부는 할 말이 궁하게 됐다.”

-서산 시민들의 문화재 사랑이 잘못된 것인가.

“물론 문화적 애국주의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불법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앞으로 재단 활동 방향은.

“문화재 환수는 하루 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재단의 현재 인력·예산 규모로는 한해에 6000점을 현지 조사할 수 있다. 남아 있는 공식 해외 문화재 12만 점을 다 조사하려 해도 20년이 걸린다. 서두르지도, 요란을 떨지도 말아야 한다. 요란하게 찾아오면 문화재는 숨게 돼 있다. 상식적으로 누가 한국 문화재 소장 사실을 밝히려고 하겠나. 장기적이고 창의적으로, 그리고 성실하게 추진해야 한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신준봉.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김성룡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xdrago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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