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X파일] 리더가 먼저 도망가는 역사, 반복되어야 하나

[헤럴드경제 =원호연 기자]자신이 몰던 배의 승객과 승무원을 버리고 저 혼자 살겠다며 맨 처음 구명헬기를 탄 청해진 해운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역사를 돌아보면 배의 안위를 책임지는 선장으로서 어찌 그럴수 있냐는 비판은 나라 전체를 버린 위정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사법당국의 조사를 종합해 보면 이 씨는 세월호의 침몰 과정과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한 수백명이 생사도 알 수 없는 채 바닷물 속에 가라앉은 과정 전체에 책임이 있다. 조류가 빠른 구역에서 3등 항해사에게 항해를 맡긴 채 조타실을 벗어났고 이미 배가 충격을 받았음에도 늑장을 부리다 구조신호를 늦게 보냈다. 배가 60도 이상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승객들에게 자리를 지키라는 안내방송을 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배에서 탈출하라는 명령은 온데간데 없이 구명헬기를 타고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와 책임으로부터 도피했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선실을 두들기며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탈출을 알렸던 것은 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직원과 사무장, 그리고 승객들 자신이었다.

배의 승객과 화물을 모두 구조하고 나서야 배를 떠날 수 있다는 재선(在船) 의무를 저버린 이 씨와 그의 빈 자리를 꾸역꾸역 메우며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모습이 더 슬픈 것은 우리 역사 속 위기마다 매번 반복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고려 말 원의 침입을 받은 무인 정권은 몽고족이 수전(水戰)에 약하다는 핑계로 수도 개경을 버리고 강화도로 건너갔다. 관군의 어떤 저항도 받지 않은 몽고군이 국토를 짓밟을 때 이들을 격퇴한 것은 처인성의 김윤후가 이끄는 승병과 백성들이었다. 강화도의 조정은 이들을 돕기는 커녕 수시로 관리들을 보내 세금만 뜯어갔다.

이 같은 행태는 조선시대에도 반복됐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병자호란 때 인조는 일본군과 후금군이 쳐들어오자마자 한양의 수비는 세자에게 맡기고 의주와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떠났고 적군을 맞아 조국을 구한 것은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들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을 지킬 수 있다”고 호언 장담했지만 수도 서울을 사흘만에 적에게 내줘야 했다. 비록 적의 추격 속도를 늦추고 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판단이었지만 자신의 말을 믿다 뒤늦게 피난에 나선 국민들이 지나는 한강 철교를 폭파시킨 것은 두고두고 역사적 논란 거리가 되고 있다.

2010년 천안함 침몰은 세월호 사고의 예고편에 가깝다. 함장을 포함한 장교 7명은 모두 구조된 데 반해 부사관과 사병은 절반 가량만 살았다. 군인인 함장에게 사병을 먼저 대피시키는 것은 병력을 보존한다는 군사적 책무기도 했다.

경계소홀과 지휘책임을 지고 무거운 처벌을 받았어야 할 군 지휘라인은 대부분 가벼운 징계만 받거나 진급을 했다. 군의 사기를 고려했다는 것이 국방부의 해명이다. 그러나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강한 질책이 아니라 부당한 상벌 기준과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허탈감이다.

민초들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버림받는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그것이 ‘한민족의 특성’이라거나 ‘숙명’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때마다 도망간 리더들은 죗값을 치르지 않고, 처벌을 받지 않고 그 권력을 지켰기 때문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단순히 있는 자가 돈을 쾌척해 자선을 베푼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에 가장 앞장서서 혹은 가장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다하는 모범을 보이는 모습이다.

이번에도 꽃다운 학생들의 희생앞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사진이나 찍으며 ’위선적‘인 말로 유가족들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을 정치 지도자들이 보인다면 수많은 국민들이 이 나라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이민 가방을 쌀지도 모를 일이다.

why37@heraldcorp.com

- 헤럴드 생생뉴스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