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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Why] [그 작품 그 도시] 괴로워도 포기할 수 없는 그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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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단순한 열정'―파리

조선일보

에펠탑이 바라다보이는 파리 센강에 배들이 떠다니고 있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에 나오는 연하의 남자와 연상의 여자는 파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블룸버그


10년 전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을 읽었다. 짧은 소설이라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한 권을 읽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10년 전 한 줄도 긋지 않았던 책에 밑줄을 여러 번 그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지난 10년 동안 내가 '관능' 또는 '질투'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단 뜻이다.

사랑만큼 '운명'이란 말과 근접한 명사는 없다. '너는 내 운명' 같은 제목의 영화가 허투루 나온 건 아닐 거다. 하지만 '사랑'에서 낭만성을 제거하면 사랑은 욕망의 지도 최전선에 서 있는 가장 난폭한 감정에 가깝다. 알다시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과관계가 명확한 권선징악의 세계가 아니다. 더구나 사랑에 대해서라면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 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의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해 가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어진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서 사라져갔다."

'단순한 열정'의 주인공은 연하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소설로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단순한 열정' 역시 실제 체험에서 비롯된 소설임을 밝힌다.

이야기는 파리에 사는 한 여자가 외국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아내가 있는 남자다. 알다시피 금기와 금지는 침대 위 욕망을 증폭시키는 가장 매혹적인 향신료다. 그들은 살을 섞고, 서로가 서로의 맛있는 음식이 되어 준다. 그렇게 여자의 삶의 형식이 바뀌어 버린다. 오로지 그의 전화를 기다리는 일밖에,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삶으로 재편되는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집중하기 위해 활동을 포기한다. 그리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신파적 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가요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갖지 않았을 감상적인 곡조와 가사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런 노래들은 솔직하고 거리감 없이 열정의 절대성과 보편성을 말해주었다. 실비 바르탕이 노래한 '사람아 그건 운명이야'를 들으면서 사랑의 열정은 나만 겪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중가요는 그 당시 내 생활의 일부였고, 내가 사는 방식을 정당화해 주었다."

이 구절에서 중년 여자와 스무 살 청년의 불륜을 그린 한 드라마를 떠올리다가, 나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피아니스트라는 좌절된 꿈을 안고 사는 드라마의 그 주인공 여자가 어느 날, 골목을 걷다가 흘러나온 이소라의 노래에 속절없이 울어버리는 것, 그것이 김광석이나 백지영의 어떤 노래라도 말이다.

고상한 부르주아가 통속과 신파의 세계에 접속하는 순간 약자의 감정은 자연스레 배가된다. 물론 그것은 그녀가 클래식 관계자라는 사실과 하등 관계없다.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남자가 자신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 역시 사랑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건 자신보다 어린 남자와 별 수 없이 사랑에 빠졌던 여자의 끝에 무엇이 서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남자는 여자의 젊음을 경배한다. 18세기 프랑스 낭만파 시인들의 경탄에 찬 시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나이 든 여자는 어린 남자의 젊음을 시기한다. 그들의 찬란한 젊음을 시기한 나머지 자신의 남자를 빠르게 늙게 한다. 그렇게 조로한 남자를 나는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어떤 결론에 이르진 못했지만 나는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그중 한 가지는, 젊음에 대한 시기가 여자만이 겪는 상황, 즉 임신이나 출산을 할 수 있는 '생물학적 나이'와 관련 있을 것이란 짐작이다.

소설 '단순한 열정'은 남자와 헤어진 여자의 전언으로 끝을 맺는다. 더는 그를 기다리지도, 질투하지도 않는다는 작가의 말 속엔 고통의 시간이 만든 굳은살이 박여 있다. 하지만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점에서, 고통은 행복이나 사랑과 다르다. 고통이야말로 철저히 내 안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열정이란, 고통과 근접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민낯을 바라보는 건 힘겹다. 자신으로 사는 건 더 어렵다. 동성과 사랑에 빠지거나, 도덕을 뛰어넘는 사랑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한결 더 가혹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사랑의 본질이 '고통'에 더 가깝다는 건, 인간의 끝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제대로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불면의 밤을 떠올리며 수긍할 만하다.

조선일보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한 남자를 사랑하면 60장짜리 단편을 쓰게 된다는 야마다 에이미의 말을 떠올리다가,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열정이라든가 사치라는 말의 정의가 계속 바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경우, 선택이란 말의 뜻은 40대를 전후로 뒤바뀌었다. 선택이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감당해내는 일이라는 새로운 정의로 말이다. 문득 파리가 사랑의 도시라면, 또한 이별의 도시이기도 하겠구나란 생각도 든다.

●단순한 열정―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 소설

[백영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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