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동 감독은 고(故) 이광종 감독을 보좌하며 한국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이바지했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건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이후 처음이었다.
김기동 감독은 2016 리우 올림픽에선 신태용 감독을 보좌하며 한국의 8강 진출에 힘을 보탰다. 김기동 감독은 이후 포항 스틸러스 수석코치를 거쳐 지휘봉을 잡았다.
FC 서울 김기동 감독. 서울 감독실 작전판엔 ‘2025 K리그에서 FC 서울이 우승하는 방법’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김기동 감독이 “그거 숫자만 2024에서 2025로 바꾼 겁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이근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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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잔=이근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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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감독은 2023시즌 코리아컵 정상에 올랐다.
포항이 우승컵을 들어 올린 건 2013시즌 이후 처음이었다. 김기동 감독은 한동안 우승과 멀어졌던 포항의 자존심을 되찾는데 앞장섰다.
김기동 감독은 2023시즌을 마친 뒤 포항을 떠나 서울 사령탑에 올랐다.
서울이 파이널 A에 속한 건 2019시즌 이후 처음이었다. 서울은 2024시즌 K리그1 4위를 기록하며 2025-26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진출도 유력한 상태다.
선수 시절에 이어 지도자로도 승승장구(乘勝長驅) 중인 김기동 감독의 이야기다.
FC 서울 김기동 감독의 한국 U-23 축구 대표팀 코치 시절. 사진=대한축구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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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U-23 축구 대표팀 코치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이바지했습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선 신태용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코치로 한국의 8강 진출에 힘을 보탰습니다. U-23 대표팀 코치 시절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까.
제일 어려웠던 건 ‘코칭스태프가 구성한 훈련을 선수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선수들이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습니다. 생각처럼 쉽지 않았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
Q. 고 이광종 감독, 현재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은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완전히 다르죠. 정반대예요. 고 이광종 감독님은 현실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승리 가능성을 최대한 높인 축구를 하셨죠. 보수적으로 팀을 운영하면서 조금이라도 높은 승리 확률을 택하신 분이었습니다. 보시는 분들은 ‘재미없는 축구’라고 느끼셨을 수도 있지만, 단단한 팀을 만들어서 결과를 냈잖아요.
Q. 그 경기 기억납니다.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2-0으로 앞서다가 2-3으로 역전패했던 경기였죠.
축구가 참 쉽지 않다는 걸 그 경기로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우리가 권창훈, 진성욱의 연속골로 2-0으로 앞서갔어요. 후반전 10분까지만 해도 완전히 우리 분위기였다고. 우리가 여기서 골을 더 넣기 위해 일본을 몰아붙였습니다. 그런데 추격골을 허용하고 나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어요. 곧바로 동점골까지 헌납하면서 흐름이 완전히 일본 쪽으로 넘어갔죠.
경기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전술 변화, 교체 카드 등을 빠르게 활용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U-23 대표팀에서 국가대표팀에 뽑혀도 이상할 게 없는 선수들을 지도했어요. 스타일이 정반대인 두 지도자를 보좌하면서 많은 걸 배웠고요. U-23 대표팀에서의 경험은 감독으로 성장하는 데 큰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김기동 감독(사진 맨 오른쪽)은 포항 스틸러스 수석코치로 최순호 감독을 보좌했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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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후 포항 수석코치를 맡다가 잠시 감독대행을 거쳐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처음 포항 지휘봉을 잡았을 때 팀 분위기가 안 좋았잖아요.
왜 다들 내가 감독대행을 거친 거로 알고 있는 거야(웃음). 저는 감독대행을 해본 적이 없어요. 관례가 그리돼 있어서인지 많은 분이 감독대행을 거쳐서 정식 감독이 된 것으로 아시는 듯합니다. 저는 2019년 4월 23일 수석코치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어요. 여기에도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감독 선임 발표 전날이었죠. 22일에 제가 구단으로 들어갔어요. 구단에선 제게 감독대행을 맡기고 조금 지켜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지휘봉을 잡고 치러야 하는 첫 경기가 수원 삼성, 그다음이 울산 현대(울산 HD의 전신)였거든. 특히나 당시 포항은 홈에서 치른 수원전에서 5년 동안 한 번도 못 이긴 상태였습니다. 울산은 그때도 멤버가 상당히 좋을 때였고요.
당시 구단 대표께서 제게 “우선 이 2경기를 해보고 잘 되면 감독으로 승격시켜 줄게”라고 했습니다. 구단으로선 그게 당연하잖아요. 감독으로 빠르게 승격시켰는데 시작부터 꼬여버리면 곤란할 수 있으니까. 대표님 이야기를 듣고 나와서 단장께 면담을 요청했어요. 단장께 “저 감독대행은 안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Q. 이유가 있었습니까.
단장님이랑 막역한 사이였거든요. 솔직하게 얘기했죠. 제가 단장님에게 “저 지금 들어가서 최순호 감독님 봬야 한다. 최순호 감독께 ‘구단에서 저보고 감독대행하라는 데 도전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했어요. 단장님이 “최순호 감독도 너를 추천했다. 그래서 감독대행으로 몇 경기 보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랬죠. 제가 단장께 “저 감독대행은 안 합니다. 예의가 아니잖아요. 저 이동하는 데 40분 걸릴 겁니다. 그 안에 결정해 주세요. 만약 정식 감독으로 선임해 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하고 나왔어요.
Q. 언제 연락이 왔습니까.
딱 40분 뒤에 연락이 왔어요. 단장님이 “그래, 그럼 한 번 해보자”라고 하시더라고. 최순호 감독님 찾아뵙고 말씀드렸죠. 최순호 감독께 “감독님, 구단에 저를 추천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최순호 감독님은 격려를 해주셨죠. 그렇게 감독대행이 아닌 정식 감독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거예요.
FC 서울 김기동 감독의 포항 스틸러스 감독 시절.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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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포항이 극심한 골 가뭄에 시달리며 공식전 4경기에서 1무 3패의 부진에 빠졌을 때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FA컵(코리아컵의 전신)에선 4년 연속 조기 탈락한 상태였죠. 김기동은 팀을 맡자마자 능력을 발휘합니다. 홈 수원전에서 5년 만의 승리를 이끈 데 이어 울산까지 잡아냈습니다. 끝이 아니었죠. 인천 유나이티드, 경남 FC도 연달아 잡아내며 감독 부임 후 4연승을 내달렸습니다. 김기동 감독은 그해 팀을 K리그1 4위에 올려놨고요. 김기동 감독은 지도자 첫해부터 잘나갔습니다.
에이(웃음). 사람들이 좋은 것만 기억해서 그래요. 그때 나도 힘들었어. 감독 부임 후 4연승을 내달린 뒤 만난 상대가 서울이었습니다. 홈에서 치러진 경기였는데 우리가 점유율에서 8:2 정도로 앞섰죠. 결과는 0-0이었습니다. 4승 1무면 좋은 출발이었죠. 문제는 이후였습니다. 서울전 무승부 후 깊은 부진에 빠졌어요. 4연패를 경험했죠. 내용도 안 좋았습니다. 그 경기 아시죠? 강원 원정에서 4-0으로 앞서다가 4-5로 뒤집힌 경기.
Q. K리그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경기 아닙니까.
저도 못 잊어요(웃음). 정말 어려웠습니다. 서울전 무승부를 시작으로 11경기에서 1승 4무 6패를 기록했습니다. 순위가 다시 10위까지 떨어졌죠.
Q. 결국엔 K리그1 4위로 시즌을 마쳤잖아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겁니까.
변화가 있었죠. 저는 당시 ‘이런 축구를 하면 안 된다’는 걸 느꼈어요. 처음 지휘봉을 잡고 4연승을 질주할 땐 대구 FC와 비슷한 축구를 했습니다. 수비에 힘을 실었어요. 공을 빼앗으면 전방에 김승대, 완델손의 빠른 발과 결정력을 활용했죠. 금세 한계점이 왔습니다. 상대에 우리 전략을 분석 당하면서 힘을 쓰지 못했어요. 수비 부담이 크다 보니 체력 저하도 눈에 띄었죠.
내가 원하는 축구가 결과보다 우선이란 확신이 들었어요. ‘색깔 있는 축구가 오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시간이 필요했죠. 단장님을 만났습니다. 단장께 “변화를 주겠습니다. 좀 기다려주세요”라고 했어요. 그리고 “(김)승대를 (여름 이적 시장에서) 전북 현대로 보내면 최영준을 꼭 받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전북에서 승대를 원했거든요.
Q. 김승대는 당시 포항의 핵심 공격수였잖아요. 시즌 중이기도 했고요. 구단에 잡아달라고는 안 했습니까.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비즈니스잖아요. 김승대를 보낸다면 무조건 최영준을 받아와야 했습니다. 외국인 선수도 요청했어요. 그때 일류첸코, 팔로세비치를 품은 겁니다. 새로운 선수들이 합류했습니다. 변화를 주기 시작했죠. 제가 원하는 색을 조금씩 입혀갔습니다. 여름 이후 상승세를 타면서 K리그1 4위로 감독 데뷔 시즌을 마쳤어요.
Q. 서울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올해와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올 시즌 초반 홈 5연패에 빠지는 등 뜻대로 안 풀리다가 여름을 기점으로 올라서기 시작했잖아요. 서울이 2019시즌 이후 처음 파이널 A에 진입했고, 아시아 무대 복귀도 유력해졌습니다. 앞서서 김기동 감독도 이야기했지만 변화를 주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김기동 감독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도 성과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코치진이 잘 도와주고, 선수들이 잘 따라준 덕분이죠(웃음). 감독 데뷔 시즌과 서울에서의 첫 시즌을 돌아보면 비슷한 점이 있어요. 처음엔 제가 원하는 선수 구성이 안 되어 있었습니다. 똑같이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서 약간의 변화를 준 거예요. 그게 통한 거지. 올해도 (강)현무, 야잔이 오면서 수비 안정을 꾀했잖아요. 루카스가 오면서 공격에도 힘을 더했고.
올여름부터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더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도 선수 구성을 하고 있잖아요. 제가 원하는 선수 구성을 해서 동계 훈련에 돌입한다면 내년엔 확실히 더 좋은 성과를 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FC 서울 김기동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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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김기동 감독은 성과로 이야기하는 지도자입니다. 김기동 감독이 선수를 볼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건 무엇입니까.
태도요. 선수는 자기 기분에 따라서 태도가 바뀌면 안 됩니다. 선수들에게 늘 강조해요. 선수들에게 “네 기분에 따라서 태도가 바뀌면 절대 안 된다”고.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프로선수라면 얼굴에 기분이 드러나면 안 됩니다. 자기 기분을 얼굴에 다 드러내면 저와의 관계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어요. 제 앞에서만 그런다면 면담을 통해서 고쳐나가면 됩니다. 하지만, 팀 동료들이나 팬들 앞에서 그러는 건 용납할 수 없는 거죠.
윌리안이 한 예에요. 제가 올 시즌 윌리안에게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잘못된 부분을 고치려고 했죠. 올 시즌 후반기 윌리안 보셨죠. 전방 압박, 수비 가담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서울 지휘봉을 처음 잡았을 때 윌리안은 자기 기분에 따라서 태도가 바뀌는 대표적인 선수였어요. 윌리안은 자유를 중시하고, 자기주장이 상당히 강한 선수였습니다.
Q. 그런 선수들을 컨트롤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김기동 감독은 그런 선수들의 변화를 끌어냅니다. 비결이 있습니까.
선수라면 누구든지 자기주장이 강해요. 생각해 보세요. 돈 받고 축구하는 프로선수인데 승리욕 없는 선수가 어딨습니까. 다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건 성품이라고 봐요. 인격이란 겁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한들 참을 줄도 알아야 해요. 축구는 팀 스포츠잖습니까. 코칭스태프, 선수들, 프런트 모두 서울의 발전을 위해 땀 흘리잖아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죠.
저도 성질 있어요(웃음). 저도 사람인데 화가 날 때 있죠. 감정이 오르면 말을 강하게 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참는 거예요. 꾹 참고 선수들에게 정리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지도자가 감정 조절 하나 못하면 선수들이 따르겠어요? 안 따르죠.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고 선수들과 대화합니다.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보일 수 있도록 힘쓰는 게 제 역할이에요.
FC 서울 김기동 감독의 포항 스틸러스 시절. 김기동 감독이 외국인 스트라이커 일류첸코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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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김기동 감독의 강점 중 하나는 외국인 선수들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낸다는 겁니다. 포항 시절인 2020시즌엔 K리그1 최다득점(27경기 56득점)을 기록하면서 3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포항 공격을 책임진 일류첸코, 팔로세비치의 활약이 대단했죠. 2023시즌 포항 전방을 책임진 제카는 직전 시즌 대구에서보다 훨씬 더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올해는 잉글랜드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제시 린가드를 완벽하게 부활시켰습니다. 외국인 선수를 다루는 김기동 감독만의 비법도 있습니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것 같아요. 믿음이 강할수록 좋은 경기력이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일류첸코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였어요. 저는 일류첸코를 경기에 안 내보냈습니다. 팔로세비치도 선발보단 교체로 썼습니다. 후반전 20분 내·외로 뛰게 했을 겁니다. 당시 그 선수들은 팀을 우선하지 않았거든요. 팀을 존중하지 않았어요. 내국인 선수들은 죽자 살자 뛰면서 수비하는 데 자기들은 안 하는 겁니다.
일류첸코, 팔로세비치에게 제가 원하는 걸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말했죠. “팀을 위해 변화하지 않으면 네 출전 시간도 바뀌지 않는다”고. 바뀌더라고요. 전방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이고 압박, 수비 가담도 철저히 하는 겁니다. 얘기하다 보니까 하나 또 떠오르는 게 있네.
Q.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류첸코가 교체로 20분 정도 뛴 경기였어요. 2골을 넣은 거예요. 일류첸코가 골을 넣고 내 앞으로 와서 세리머니를 하는거야. 나 보라고 하는 거잖아(웃음). 다음날 일류첸코를 제 방으로 불렀어요. 터놓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일류첸코에게 “어제 경기에서 아주 좋았다. 네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 선수라면 그 정도 성격은 있어야지. 그런데 일류첸코야, 여긴 한국이야. 그런 행동은 한국 정서와 맞지 않아. 네가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방으로 찾아와. 내가 다 들어줄게. 약속한다. 대신 또 한 번 그런 일이 있으면 나도 널 용서할 수 없어”라고 했어요.
그 일이 있고 나서 더 끈끈해졌던 것 같아요. 서로를 믿고 온 힘을 다하는 관계가 됐죠. 경기력, 결과 모두 좋았습니다.
FC 서울 김기동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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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올해 서울 유니폼을 입은 최 준을 인터뷰했을 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최 준이 올 시즌 개막전 광주 FC 원정 엔트리에서 빠졌잖습니까. 최 준이 “김기동 감독님에게 전화가 왔다. ‘엔트리에서 빠질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왜 빠졌는지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내 축구 인생에서 이런 감독님은 처음이었다. 내가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감독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최) 준이가 그래요? 준이가 사회생활 좀 할 줄 아네(웃음). 제가 어린 나이에 프로 생활을 시작했잖아요. 저는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열심히 하려고 했죠. 하지만, 성과가 나올 때까진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때의 경험들이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게 해주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선수 경험이 많잖아요. 중심에서 팀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베테랑 선수들의 고민도 누구보다 잘 알고요. 선수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아파하고 있는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랄까. 그래서 (기)성용이나 (임)상협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죠.
제가 41살까지 선수 생활을 했잖아요. 37살 때부터 41살 때까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아세요? 하루하루 낭떠러지에서 동아줄 하나 잡은 느낌이었습니다. 제 의지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는 순간 저는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뭐라도 하려고 죽을힘을 다했습니다. 베테랑 선수들이 힘든 게 이런 거거든요.
베테랑 선수들은 1경기 못하면 편견에 따른 평가를 받아요. ‘저 선수는 나이가 많으니까 이제 안 된다’는 겁니다. 20대 선수들은 1경기 못하면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라든가 ‘경험 부족’이란 평가를 받잖아요. 저의 37살 때를 돌아보면 1경기만 못해도 ‘이제 끝’이란 얘길 들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베테랑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큰 도움이 되지 않나 싶어요.
Q. 축구인 김기동의 삶을 보면 ‘자기 관리가 대단한 사람’이란 게 느껴집니다.
제가 선수로 뛸 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지금은 스포츠 과학이 몰라보게 발전하면서 선수들의 몸 관리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지금은 피지컬 코치가 흔하지만 우리 땐 없었습니다. 제 선수 시절 막바지에 피지컬 코치를 처음 봤어요. 지금 선수들은 ‘어떻게 잘 쉬느냐’가 관건입니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정말 중요해요. 몸에 좋은 것만 하고, ‘안 좋다’는 건 안 하면 되는 그런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FC 서울 김기동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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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전 기사들을 쭉 찾아봤습니다. 감독님이 사모님과 연애하실 때 ‘몸 관리를 위해 항상 오후 10시 전엔 숙소로 복귀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저는 지금도 여자를 잘 모르겠어요(웃음). 아내에게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제 장점 중 하나는 아내가 무슨 말을 하면 ‘절대 까먹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내가 무언가를 가르쳐주면 바로 이해하고 실행에 옮기는 타입이죠.
연애할 땐 몰랐어요. 제가 밤 10시 전엔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숙소 골목이 엄청 어두웠어요. 콜택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지. 좀 걸어 나가서 택시를 잡아야 하는 그런 곳이었어요. 제가 ‘잘 가’란 말만 하고 아내를 혼자 집에 가도록 한 거예요. 아내 혼자 골목을 걸어 나가서 택시를 잡고 집에 간 거야.
Q. 아...
아내가 결혼하고 나서 그 얘길 하더라고. 아내가 “어떻게 여자 친구를 골목에 혼자 두고 가버릴 수 있느냐. 얼마나 무서웠는데. ‘잘 가’란 말 한마디하고 들어간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럴 땐 여자 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왔어야지”라고 했습니다. 그때 알았죠. ‘아, 내가 잘못했었구나(웃음).’
Q. 몸 관리를 위해서 그랬던 거니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라고 봐야 하는 걸까요.
그게 무슨 자기 관리야. 바보지, 바보. 여자의 마음을 하나도 모르는 바보였지. 아내에게 참 미안하고 고맙죠. 어쨌든 몸 관리를 물어보셨으니까... 좀 얘기하자면 저는 항상 오후 10시엔 잠자리에 들려고 했어요. 저는 자취 생활을 할 때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밥을 꼭 챙겨 먹었습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몸 관리를 했던 것 같아요.
FC 서울 김기동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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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생을 축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김기동이란 사람의 모든 열정을 축구에 쏟아붓고 있죠. 지금도 축구가 재밌습니까.
하는 건 별로(웃음). 저는 선수 생활을 후회 없이 했잖아요. 베테랑 선수들에게 늘 얘기합니다. “후회 없이 뛴 뒤에 은퇴하라”고. 은퇴하는 날 아쉬움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조기축구회 나가는 겁니다. 저는 은퇴하고 단 한 번도 ‘다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훈련할 때도 선수들과 공 차고 싶은 마음 전혀 없습니다. 질량보존의 법칙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선수 할 때 다 썼나 봅니다.
축구하는 건 재미 없지만, 지도자 생활은 대단히 흥미로워요.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고민하는 자체가 재밌습니다. 팬들에게 더 좋은 축구를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도 크고요. 그걸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재밌는 것 같아요.
Q. 선수 생활을 후회 없이 하셨잖아요. 베테랑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요. 올 시즌이 기성용에겐 힘든 한 해였을 듯한데요. 기성용과 따로 나눈 이야기가 있습니까.
(기)성용이는 알아서 잘하는 선수라서 크게 이야기한 건 없어요. 성용이에게 시즌 초에 “네가 주장이니 팀 중심을 잘 잡아줘야 한다”는 얘기 정도 했죠. 성용이가 올 시즌 중반 부상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성용이는 책임감이 큰 선수거든요. 팀에 도움을 주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힘들어하더라고요.
성용이에게 고마운 건 그런 상황에서도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려고 했다는 거예요. 선수들이 훈련을 마치고 경기장으로 향할 때마다 성용이가 나와서 “잘 다녀오라”며 후배들을 격려해 주곤 했어요. 보통 재활 중인 선수들은 그렇게 안 하거든. 자기 몸 관리에만 신경 쓰지. 성용이는 항상 나와서 후배들을 격려했어요. 그런 게 팀에 큰 도움이 되는 거죠.
제시 린가드. 사진=이근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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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가드. 사진=이근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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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린가드, 최 준. 사진=이근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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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성용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린가드가 주장 완장을 찼잖아요. ‘주장 린가드’는 어떤 선수였습니까.
어색함이 없었어요. 성용이가 빠지고 린가드가 주장 역할을 하는 게 대단히 자연스러웠습니다. 린가드는 (김)승대와 비슷한 스타일이에요. 질책보단 ‘잘한다’고 칭찬해 줘야 신이 나서 더 잘하는 선수죠. 린가드에게 단점을 지적하면 자존감이 크게 떨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칭찬을 최대한 많이 해주면서 책임을 쥐여준 거죠. 린가드에게 주장 완장을 채우면 더 잘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애초엔 부주장인 (조)영욱이에게 주장을 맡길까 고민했습니다. 영욱이에게 설명했죠. 린가드에게 ‘주장을 맡기면 좋을 것 같다’고. 영욱이가 흔쾌히 받아들여 주더라고요. 린가드가 주장 완장을 차더니 말도 많아지고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효과가 있었죠. 솔직히 시즌 초반엔 훈련장에서의 태도에서부터 제 성향에 맞진 않았어요.
Q. 린가드에게 따로 해준 얘기가 있었습니까.
불렀죠. 린가드에게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짜증 내지 마라. 훈련하다가 짜증 내면 너한테도 좋지 않다. 행동으로 보여줘라. 그러면 선수들이 알아서 따른다”고 했습니다. 주장 완장을 채운 뒤엔 “리더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포커페이스를 해야 한다. 선수들이 네 말을 따르길 바란다면, 훈련장에서부터 달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뀌더라고요. 마지막엔 정말 좋아졌죠. 시즌 중 시술도 받았잖아요. 그것도 린가드는 안 하려고 했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수술이나 시술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무섭다’는 거예요. 린가드에게 그랬죠. 린가드에게 “네가 지금 이렇게 쉬는 것보다 완벽하게 회복해서 뛰는 게 훨씬 좋을 것”이라고.
린가드가 시술받고 나서부터 확 달라졌어요. 기분이 항상 좋더라고(웃음). 돌아보면 린가드는 서울에 처음 합류했을 때부터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1월부터 어딘가 불편했어. 슈팅을 마음대로 시도하지 못하더라고. 통증이 있으니까 계속 신경 쓰면서 축구한 겁니다. 그게 사라지니까 경기력이 확 올라온 거지.
Q. 서울의 올 시즌을 돌아보면 마음고생이 정말 심했을 것 같은 선수가 있습니다. 백종범인데요. 백종범에겐 따로 해준 이야기가 있었습니까.
(백)종범이에겐 “괜찮다. 항상 자신 있게 하라”고 했어요. 종범이에게 “네가 이겨내야 한다. 강하게 마음먹어야 성장할 수 있다. 항상 응원해 줄게”란 말만 했습니다. 저는 사실 골키퍼들에겐 별말 안 합니다. 골키퍼 코치에게 전적으로 맡겨요. 골키퍼 코치에게 “골키퍼는 네 몫이다. 네가 다 컨트롤 하라”고 합니다.
FC 서울 김기동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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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울이 올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축구계 기대엔 미치지 못했잖아요. 터닝 포인트가 된 경기가 있습니까.
6월 16일 울산 원정이요. 우리가 전반전을 0-2로 마쳤죠. 후반전에 2-2로 따라붙었습니다. 그 경기를 보면서 ‘이젠 쉽게 안 지겠구나’란 느낌을 받았어요. 힘이 생긴 겁니다.
Q. 서울의 올 시즌 성과 중 하나는 ‘전북 징크스’도 깼다는 겁니다. 서울이 6월 29일 전북 원정에서 5-1로 대승했잖아요. 서울은 이 경기 전까지 전북과의 21차례 맞대결에서 5무 16패를 기록했습니다. 6월 전북전이 2017년 7월 이후 첫 승리였어요.
결정력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축구란 게 객관적인 전력에서 밀리는 팀이라도 기회는 오거든요. 그걸 살리느냐 마느냐가 승부를 결정짓습니다. 올해 ‘울산 징크스’도 깰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조금 아쉽죠. 기회가 있었거든요. 마지막 홈경기 후반전엔 정말 강하게 몰아붙였는데 골대만 두 번 때리는 등 골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것도 실력이죠.
방법은 하나에요.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할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오랫동안 이기지 못했으니 심리적인 압박도 있을 거예요.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가 상대를 월등하게 앞서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해요. 징크스는 핑계일 뿐입니다. 그냥 우리 실력이 그 팀보다 부족한 거예요. 그걸 받아들이고 더 노력해야죠.
김천상무 미드필더 김준호. 김준호는 FC 서울 김기동 감독의 아들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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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1월 23일 서울의 올 시즌 최종전이었죠. 김천 원정에서 부자(父子) 맞대결이 펼쳐졌습니다. 김준호가 후반 35분 교체 투입되면서 10분간 아버지가 이끄는 서울의 골문을 노렸습니다. 김기동 감독, 김준호 부자의 첫 맞대결이었잖아요. 어떤 기억으로 남았습니까.
우리가 2-0으로 앞서다가 추격골을 허용한 상황이었어요. 분위기가 약간 이상하게 흐르더라고. 그러던 중 ‘(김)준호가 들어가는구나’ 했죠. 경기에 집중하다 보니 크게 신경 쓰진 않았어요. 그런데 준호가 후반 막판 슈팅을 때리는 겁니다. 그 슈팅이 정말 위협적이었어요. 가랑이 사이에 딱 걸리지 않았다면 동점골이 될 수도 있는 슈팅이었죠.
준호의 슈팅 이후 우리가 빠르게 역습으로 나아가서 추가골을 넣었습니다. 준호랑 경기 끝나고 잠깐 얘기했는데 마지막 슈팅을 골로 연결하지 못한 걸 자책하더라고요. 준호가 저한테 “슈팅을 시도하지 말고 옆으로 내줬으면 어땠을까”라고 했습니다. 자기 때문에 추가골을 허용한 것처럼 생각해서 힘들어하더라고요.
Q. 아들의 자책에 위로를 해주셨나요.
있는 그대로 얘기했죠. 제가 준호에게 “그걸 실수라고 생각하면 축구 못한다. 공간이 충분히 열려 있었고, 옆으로 내줘봐야 수비가 있었기에 슈팅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불확실했다. 슈팅을 시도한 게 가장 좋은 판단이었다”고 했죠. 추가 실점을 내준 것도 김천이 따라붙어야 하는 상황이었잖아요. 공격에 힘을 실은 상태였기 때문에 뒤가 상당히 엷었습니다. 준호에게 “너 때문에 실점한 거 아니니깐 자책하지 말라”고 했어요.
Q. 포항에 있을 땐 아들을 지도하기도 했었잖아요. 그때와 감정이 달랐을 듯합니다.
좀 다른 느낌이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준호의 데뷔전이었어요. 걱정이 엄청나게 컸습니다. 기대에 못 미치거나 문제가 생기면 내 책임이니까. 준호가 포항에 입단했을 때부터 말이 많았잖아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준호는 내 아들이니까. 문제가 생겼을 땐 감독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엄청난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준호가 잘 해줘서 큰 문제 없이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젠 다른 팀이잖아요. 준호가 더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위에서 김천전을 앞두고 준호가 나온다니까 ‘기대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제가 그랬죠. 제가 “승리는 우리가 가져가야 한다. 아들과 대결이지만 우리가 2골 넣고 준호가 추격골 하나 넣어서 2-1로 이겼으면 좋겠다”고요.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거 아닙니까. 아내가 제게 “아들을 밟고 ACL 나가니깐 좋으냐. 비정한 아빠”라고 하더라고요(웃음).
Q. 김준호에게 자주 피드백을 해주는 편입니까.
저나 준호나 축구 얘긴 잘 안 합니다. 같은 팀에 있으면 모르겠는데 이젠 아니잖아요. 준호를 지도하고 계신 감독님이 계시잖습니까. 제가 무언가를 얘기하면 혼란만 불러올 수 있거든요. 준호에게 “정정용 감독님 말씀 잘 듣고 배우라”는 말만 했죠. 저는 종종 준호에게 ‘볼 처리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정도만 가볍게 얘기하는 것 같아요. 순간순간 볼 처리에 대해서만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등에 관한 건 소속팀 감독님에게 배우는 게 맞죠.
FC 서울 김기동 감독. 사진=이근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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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울에서 첫 시즌을 마쳤습니다. 서울은 K리그를 넘어 한국 프로스포츠 최고의 인기구단입니다. 서울은 2024시즌 19차례 홈경기에서 50만 1천91명의 관중을 불러 모았습니다. 홈 평균 관중이 무려 2만 7천838명이었어요. 지도자로서 수많은 관중 앞에 서는 건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관중이 많아서 긴장되는 건 전혀 없었습니다. 재밌었어요. 영광스러웠습니다. 팬들에게 죄송한 건 5만 명 이상 찾아주신 경기에서 더 재미난 경기력과 결과를 냈어야 하는 데 그러지 못했다는 거예요. 제가 더 노력해야죠. 한국에서 홈경기 때마다 2만 7천 명 이상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할 수 있는 건 국가대표팀 빼고 없잖아요. 5만 관중 앞에서 경기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더 서울이란 팀을 위해 헌신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홈경기 때마다 5만 명 이상이 찾아주실 수 있도록 모든 걸 바쳐야죠.
Q. 축구계는 ‘서울의 2024년을 성공적이었던 한 해’로 평가합니다. 첫 시즌부터 이런 평가를 받을 걸 예상했습니까.
믿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 없었으면 서울에 안 왔어요. 그것도 못하면 서울에 올 이유가 없죠. 전반기 땐 제 생각 이상으로 안 좋아서 당황했던 건 사실입니다. ‘이 정도까진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죠. 연속해서 자책골이 나오는 등 우리 실수로 놓치는 경기가 많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초반부터 좋을 거란 기대는 안 했어요. 차근차근 변화를 주면서 팀의 체질을 조금씩 개선해 나간다면, 후반기 땐 확실히 좋아질 것으로 봤습니다. 선수들에게도 매일 얘기했어요. 선수들에게 “열심히 따라와 달라. 후회하지 않도록 해주겠다. 우린 분명 더 좋아질 것”이라고.
김기동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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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감독은 스트레스가 상당히 심하고 외로운 직업이잖아요. 김기동 감독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풉니까.
여러 사람이 물어보더라고요. ‘스트레스 어떻게 푸느냐’고.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딱히 없어요(웃음). 그냥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에서 이겨야 스트레스가 풀려요. 지면 스트레스 계속 받아야죠. 그게 내 일인데. 골프를 즐기지만 경기에서 지고 필드로 나가면 그게 재밌겠습니까. 골프도 잘 안되죠. 골프 치는 내내 ‘다음 경기 누구 쓸까’, ‘어떤 전략으로 임할까’ 이런 생각밖에 안 들어요. 감독은 운동장에서의 결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직업입니다.
Q. 김기동 감독의 축구를 향한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합니다. 김기동 감독을 계속해서 땀 흘리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저 자신이죠. 지도자도 선수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요. 저도 어느덧 중고참 지도자가 됐습니다. 어린 지도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재미도 없을 거고요.
포항 사장을 역임하셨던 김태만 선생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나이가 70이든 80이든 목표가 있어야 한다. 목표가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매일 우리의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김태만 선생께선 그런 게 ‘사람의 삶’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매일 저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목표를 이루느냐 마느냐는 제게 달린 겁니다. 저는 지금도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끝’이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요.
[구리=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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