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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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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침통, 별을 잃었다… “역사상 최고 리드오프” 리키 핸더슨, 향년 65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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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근래 들어 야구를 조금 더 역동적으로 만들기 위한 여러 노력을 다하고 있다. 피치클락을 도입한 것은 물론, 견제 제한도 둬 주자들의 뛰는 야구를 적극 장려했다. 에너지 넘치는 도루와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가 메이저리그 팬들의 흥미를 붙잡고, 야구 본연의 재미를 더 살릴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롭 만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가 22일(한국시간) 전해진 리키 헨더슨의 사망 소식에 큰 애도를 표하면서 그의 플레이스타일을 거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22일 공식 성명을 통해 “리키 헨더슨은 속도·파워·엔터테인먼트의 요소를 라인업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데 있어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고인의 플레이를 떠올리면서 “최근 몇 년간의 우리의 경기 규칙 또한 리키 헨더슨의 시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전형적이고 뛰어난 리드오프로 평가받았던 선수이자, ‘대도’하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었던 이름인 리키 헨더슨이 22일 별세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자 도루, 리드오프 홈런, 그리고 득점 부문에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리드오프로 뽑히는 리키 헨더슨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는 65세”라고 발표했다. 사망 원인인 폐렴으로, 갑작스러운 소식에 메이저리그가 ‘멘붕’에 빠졌다.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즉각 성명을 내고 “여러 세대의 야구 팬들에게 리키 헨더슨은 도루와 리드오프 타격의 위대한 표본이었다. 리키는 역대 가장 뛰어난 업적을 세운 사랑 받는 운동 선수 중 하나였다”면서 “리키는 스포츠 팬들로부터 보편적인 존중과 존경, 경외심을 불러 일으켰던 선수였다. 메이저리그 야구를 대표하여 리키의 가족, 그의 친구들과 팀원들, 오클랜드의 팬들과 전 세계 야구 팬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성명을 마무리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각 분야 최고수들을 언급할 때 반드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이름인 헨더슨은 1979년 오클랜드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 뉴욕 양키스, 샌디에이고, 뉴욕 메츠, 시애틀, 보스턴, 토론토, 애너하임, LA 다저스에서 뛰며 메이저리그 통산 25시즌을 보낸 거목이다. 헨더슨은 데뷔 2년 차였던 1980년 100도루를 성공시킬 정도로 빼어난 운동 능력과 도루 기술, 그리고 센스를 자랑했다. 헨더슨은 1982년 130도루를 기록하며 불멸의 역사를 남겼으며, 1983년에도 108도루를 기록하며 2년 연속 100도루 고지를 밟는 등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

헨더슨은 전형적으로 잘 치고, 잘 나가고, 잘 뛰는 리드오프의 전형으로 각광을 받았고,1985년부터 1989년까지 뉴욕 양키스에서 뛴 뒤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와 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했다. 헨더슨은 오클랜드 소속이었던 1990년 136경기에서 타율 0.325, 출루율 0.439(1위), 장타율 0.577, OPS(출루율+장타율) 1.016(1위), 28홈런, 61타점, 65도루(1위), 119득점(1위)를 기록하면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MVP에 올랐다.

헨더슨은 이후 여러 팀을 옮기며 저니맨 이미지가 남기도 했으나 여전히 많은 팬들에게 사랑 받는 선수였고, 특히 오클랜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헨더슨은 2003년을 끝으로 메이저리그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5년 메이저리그 경력 동안 3081경기에서 타율 0.279, 출루율 0.401, 장타율 0.419, OPS 0.820, 2295득점, 1406도루, 297홈런, 1115타점, 2190볼넷을 기록했다. 지금도 도루와 득점 부문에서 메이저리그 역대 1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 1406개의 도루는 2위 루 브록 스와이프보다 467개나 더 많아 불멸의 기록이 될 가능성이 크고, 2295득점 또한 역대 2위인 타이 콥보다 50개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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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빨리 뛰면서 도루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3할을 칠 수 있는 콘택트와 통산 4할 출루율에 달하는 뛰어난 출루 능력, 그리고 언제든지 장타를 칠 수 있는 방망이로 무장한 특급 스타였다. 그는 10번이나 올스타에 선정됐으며 세 차례의 실버슬러거, 한 차례의 골드글러브를 수상했고 월드시리즈 우승 또한 두 번이나 경험했으며 은퇴 후에는 명예의 전당에도 큰 이견 없이 입성했다. 2009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헨더슨은 94.8%라는 높은 득표율과 함께 한 번에 명예의 전당 문턱을 넘은 많지 않은 선수 중 하나가 됐다.

특히 오클랜드 팬들의 충격이 크다. 헨더슨은 메이저리그 경력에서 여러 팀을 소화했지만 25년 중 절반이 넘는 14년 동안 오클랜드에서 활약했다. 여전히 오클랜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샌디 앨더슨 전 오클랜드 단장 및 야구 부문 사장도 헨더슨의 사망 이후 즉각 성명을 내고 “리키 핸더슨을 두 번 트레이드하고, 그보다 더 많이 데려왔다. 그는 내가 본 선수 중 최고의 선수였다. 그는 치고, 강하게 치고, 도루를 하고, 또 수비를 하는 등 모든 것을 해냈다. 팬들을 열광시키고 상대를 물리치는 감각을 보여줬다. 모두가 그의 성격, 플레이스타일, 자신에 대한 3인칭 언급에 즐거워했다. 그는 여러 면에서 독특한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고인은 어린 시절부터 야구는 물론 미식축구와 농구에서도 두각을 드러냈고, 결과적으로 야구를 선택하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 대열에 올라섰다. 또한 헨더슨은 은퇴 후에도 친정팀 오클랜드와 가깝게 지낸 팬들의 자부심이었다. 헨더슨은 오클랜드의 단장 특별 보좌로도 일하며 스프링트레이닝 때 자주 모습을 내비쳤다.

연고지 이전을 앞둔 오클랜드는 2017년 홈구장인 콜로세움을 ‘리키 헨더슨 필드’로 명명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기렸다. 그리고 2024년 콜로세움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치르기 전 시구자로 리키 헨더슨과 데이브 스튜어트라는 구단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들을 초청했다. 당시 헨더슨은 콜로세움을 찾은 오클랜드 팬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았고, 많은 팬들은 연고지 이전 후에도 팀과 헨더슨의 인연은 계속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9월에 있었던 시구가 헨더슨과 팬들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현역 시절 헨더슨의 팀메이트이자, 이후 오클랜드 구단 수뇌부를 두루 거치며 팀을 이끈 빌리 빈은 헨더슨을 두고 “야구 역사상 최고의 리드오프”라고 극찬했다. 빌리 빈의 ‘새로운’ 야구 철학에서도, 또 이제는 주류가 된 세이버매트릭스에서도 출루율이 높고 잘 뛰며, 또한 장타까지 생산할 수 있는 헨더슨의 능력은 매력적이었다. 빈은 그렇다면 헨더슨과 겨룰 만한 리드오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적잖이 받곤 했는데 그의 대답은 “그와 겨룰 만한 2인자조차도 잘 보이지 않는다”였다.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별이 하나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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