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스티븐 보트 감독.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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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감독이 되고 싶다.”
선수 은퇴 때 밝힌 그의 소원이었다. 그런데 은퇴 397일 만에 그의 꿈은 이뤄졌고, 거기에 더해 가을야구까지 했다. 그리고, 마흔 살의 나이에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으로 뽑혔다.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스티븐 보트 감독의 이야기다.
1984년생인 보트는 200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탬파베이 레이스의 12라운드(365번째) 지명을 받았다.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빅리그 데뷔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2012년 4월6일에 했다. 이후 밀워키 브루어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에서 뛰었다. 말년(2022년)에는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와 프로 경력을 마무리 지었다. 10시즌 동안 794경기를 뛰면서 6개 구단을 전전했으니 ‘저니맨’이었다고 하겠다. 오클랜드 시절인 2015, 2016년을 제외하고 주로 백업 포수로 뛰면서 통산 성적은 타율 0.239, 82홈런 313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독특한 기록도 갖고 있는데 메이저리그 데뷔 첫 안타(2013년 6월28일)와 마지막 커리어 안타(2022년 10월5일)를 모두 홈런으로 장식했다. 빅리그 통산 10번째 기록이다.
2022년 10월 은퇴 뒤 그는 시애틀 매리너스 불펜 코치 겸 퀄리티 컨트롤 코치로 고용됐다. 그리고, 2023년 말 테리 프랑코나 감독의 뒤를 이어 클리블랜드 45대 감독으로 선임됐다. 은퇴 뒤 1년여 만에 빅리그 감독이 된 것인데, 이는 198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크리스 안토네티 클리블랜드 야구 운영 사장은 당시 “보트는 선수 시절 최고의 팀 동료 중 한 명으로 명성을 얻었다. 타인을 향한 깊은 관심이 있고, 주변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으며, 개방적인 사고방식과 호기심도 있다. 우리 구단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라고 사령탑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마이크 체르노프 클리블랜드 단장은 “보트와 첫 줌 통화를 한 지 5분 만에 그가 훌륭한 감독이 될 것이라는 압도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는 1년밖에 코치를 안 했으나 이미 감독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202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뛰던 스티븐 보트 현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감독 모습.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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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그는 클럽하우스 분위기 메이커였다. 2009년과 2010년, 탬파베이 자체 탤런트 쇼에서 우승했고 이후에는 쇼의 진행자도 됐다. 2019년 3월에는 선수단 투표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가장 재밌는 팀 동료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빅리그 10시즌 동안 6개 팀을 오갔으나 친화력은 으뜸이었다. 그만큼 소통 능력이 탁월했다. 팬 서비스 또한 좋았다. 물론 야구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그의 전 팀 동료는 보트에 대해 “집착적으로 관찰력이 뛰어나다”라고 했다. 또다른 팀 동료는 “야구의 신들은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선수들을 골라낸다. 그리고 그들은 보트를 택했다. 우리 모두 그가 훌륭한 감독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엘에이(LA) 다저스 3루수 맥스 먼치는 그가 감독 데뷔 첫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그는 명예의 전당 감독이 될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까지 밝혔다.
하지만 전임 프랑코나 감독의 명성은 지도자로 첫 발을 떼는 보트 감독에게는 엄청난 짐이었다. 프랑코나 감독은 클리블랜드에서 11시즌을 함께하면서 921승757패(승률 0.549)의 성적으로 팀을 6차례 포스트시즌에 올려놨다. 2023시즌 성적은 76승86패(승률 0.469), 중부지구 3위였다. 보트 감독은 “내가 프랑코나 감독을 대체하거나 그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때문에 오롯이 나 자신이 되고 싶었고,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것이 첫날부터의 목표였다”고 했다.
올 시즌 클리블랜드 개막 로스터에 든 28명 선수 중 7명은 생애 처음 이름을 올린 이들이었다. 평균 연령은 27.16살이었는데 이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최연소였다. 클리블랜드는 개막 2주차에 에이스인 셰인 비버를 잃고 또 다른 선발 트리스턴 매켄지 또한 부상을 당하면서 불펜 투수로 시즌을 버텼다. 그런데도 클리블랜드의 올 시즌 불펜 평균 자책점은 2.57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좋았다. 그만큼 상대 타자 분석이 잘 됐다는 얘기다.
시즌 내내 부상자 명단을 총 21차례 사용하고 14명의 선발 투수와 총 50명의 선수를 돌아가며 기용한 클리블랜드는 마지막 169일 연속을 포함해 177일 동안 1위를 지켰다. 그리고, 2023년보다 16경기를 더 이겼다. 보트 감독은 사령탑 데뷔 해에 90승 이상(92승69패·승률 0.568)을 거둔 5번째 클리블랜드 감독도 됐다. 보트 감독은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했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선수 은퇴 2년 만에 ‘올해의 감독상’을 받은 이는 보트 감독이 처음이다.
보트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리더십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그는 “내가 4살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는 나의 야구 코치였다”면서 “아버지는 항상 내 팀원을 나보다 앞세우라고 가르치셨다. 내 인생과 커리어 내내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실패의 의미도 되새겼다. 보트 감독은 “우리는 실패로부터 배운다. 아무도 성공으로부터 배우지 못한다. 나는 충분히 실패했었다”고 했다.
그는 매일 밤, 선수들의 경기 활약상을 보는 게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라면서 “감독은 나가서 타격할 수도, 투구할 수도 없다. 다만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선수들을 성공할 수 있는 위치에 두는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가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이것이 ‘감독’ 역할의 아름다움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시즌이 치러지는 6개월 동안 긴장감이 정말 고조되는 때가 있다. 팀으로서 힘들어지는 때도 있다. 그래도 선수들은 웃게 해야 한다. 야구장에서 웃지 않으면 최선을 다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야구장에 있는 3시간 동안 우리는 다시 (야구 하는게 그저 좋은) 12살짜리 아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감독은 분위기와 팀원을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셔널리그 ‘올해의 감독’으로 뽑힌 65살의 초보 사령탑 팻 머피 밀워키 브루어스 감독은 “우리 모두가 보트가 야구에서 특별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는 팀에 대한 판단력이나 경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선수 관리를 잘한다. 이런 사실에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보트 감독은 많은 질문을 가진 사령탑이기도 하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그가 선수 시절 나에게 한 질문들은 다른 선수들에게서 들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면서 “그는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호기심이 아주 많았다”고 했다.
보트 감독은 야구 외적으로도 선행을 베풀기로 유명하다. 자폐증 등 발달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여러 차례 방문해 자원봉사를 했다. 타인을 향한 관심이 이렇게 확장되는 셈이다.
어쩌면 클리블랜드 구단 시스템의 도움을 받았는지도, 어쩌면 치열한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순위 경쟁 속에서 운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리더는 이름값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아닐까.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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